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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키워도 소용없다는 말이 사실인 순간

· 댓글개 · 라라윈

라라윈 일상생활 이야기 : 아들 키워도 소용없다는 말이 사실인 순간

지난 주는 짧아서 쉬지는 못하고 정신은 더 없던 추석을 마치고, 보는 이웃마다 추석인사를 나누곤 했습니다. 아직 이번주까지도 추석 잘 보내셨는지 여쭤보는 인사는 유용한데, 어른들도 아이들을 보면 추석인사와 덕담(이라 쓰고 압박이라 읽는 말들...)을 해주십니다. ^^;; 엄마와 쇼핑을 가는데, 길에서 동네 아주머니의 아들을 만나자,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추석 잘 보냈니~? 엄마 힘드셨겠다."

"아니에요. 이제는 엄마 하나도 힘 안드세요."
"응?"
"이제 저도 결혼해서 집사람도 있고, 저희가 다 같이 도와드려요."
"뭐? 그래도..."
"정말 이번 추석에도 다 같이 준비했는데요. 저희가 송편도 만들고, 다 했어요!
 그래서 이제 엄마 힘 별로 안드세요.ㅎㅎㅎ"

물론 추석인사 하시는데,

"네 엄마 힘들어 뒈지실 지경이에요."

라고 답하기는 곤란하니, 좋게 좋게 대답을 했던 것 같습니다.


송편


그런데... 동네 아주머니 아들래미의 말을 듣는 순간, 저희 엄마는 일 혼자 도맡아 하는 맏며느리 설움이 화~~~악 복받쳐 오르셨던 것 같습니다.
그 아이가 지나치고, 저를 붙잡고...

"엄마는 힘 하나도 안들었댄다.
 저래서 아들 키워도 다 소용없다니까.
 지 마누라랑 지가 송편 만들었으니까 힘이 안들었다고? 그 쌀 빻아서 송편만들 준비 해 놓은게 누군데.
 전화해보니까 추석 때 일 많이해서 허리 아파 죽겠다고 신경통도 도진것 같다고 누워있더라."


제사상

엄마는 나머지 이걸 다 했단 말이다..

그 아주머니가 안 들으셨기에 망정이지.. 서운할 말이긴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저는 또 다른 인물이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갔습니다. 저희 아빠였어요.
엄마가 그 아이의 예의상 대답일 수도 있는 말에 그토록 울컥하셨던 이유는, 다름 아닌 늘상 제사도 많고 차례도 혼자 준비하시는데 엄마가 수고하신 것을 잘 몰라주는 아빠 때문에 쌓였던 것들이 밀어올라오는 것이었을 겁니다.
작은 아빠들이 아빠와 나이차이도 많이 나고, 늦게 결혼을 하셔서, 엄마는 20년 넘게 혼자 맏 며느리로 그 일들을 다 하셨습니다. 체력도 약하신분이 혼자 다 해내려니, 매번 제사 - 엄마 몸살 - 집안 초토화의 사이클이 반복됐었죠.
작은엄마들이 생기셔서 예전보다 수월해지셨지만, 지금도 작은 엄마들 오시기 전에 엄마 혼자 먼저 일을 많이 해 두십니다. 그러면 작은엄마들이 오셔서 나머지 거들어 주시며 마무리를 짓곤 합니다.
그럴 때면, 아빠가

"제수씨, 힘들어서 어떻게 해요? 이리 와서 좀 쉬어요."

라면서 챙기시는데, 엄마는 그 말이 그렇게 서운하신가 봅니다.
결혼한 아들래미가 지 마누라만 챙기면서 지 마누라가 송편 몇 개 빚었다고 일 다했다면서 호들갑 떨고, 엄마가 나머지 더 많은 일을 다 하시는 것은 안중에 없어 보이는 것과 좀 비슷한 느낌이신가봐요.
그렇다고 아빠가 "제수씨들이 한게 뭐가 있어? 이제 일좀 해. 여보 이리와서 쉬어." 라고 해도 몹시 밉상이실 것 같은데, 힘든 엄마를 옆에두고 작은엄마들만 챙기면, 왜 그러는지 마음을 알지만, 귀는 매우 섭섭해져 버리나 봅니다.

추석이나 제사의 처세술은...
일을 잘 거드는 것도 있겠지만, 쓸데없이 일 안한 사람을 공치사해서
일한 사람을 열받게 만들지 않는 것도 중요한가 봅니다... ^^:;;
어쩌면 가만 있으면 중간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날이 추석명절인지도....
(가만있어서 중간갔던 라라윈의 경험담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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