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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 후기, 반성 깨달음 재미 종합선물세트였던 마국텔

· 댓글개 · 라라윈

라라윈 특별한날 기록: 필리버스터 후기, 반성 깨달음 재미 종합선물세트였던 마국텔

지난 일주일은 짬이 날 때 게임 한 판 하는 것보다 필리버스터 소식을 보는 것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아직도 하나? 이제 누구지?" 하는 궁금증에 기웃거렸습니다. 처음에 김광진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필리버스터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뭐 또 하나보다 했습니다. 국회도 문은 닫아야 할테니, 9시에 시작해서 6시에 끝내는건가 했는데, 밤을 새가면서 계속 했습니다. 자고 일어나도 계속하고, 점심을 먹고 와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은수미 의원 필리버스터, 울컥..


은수미, 필리버스터,


▶︎ 은수미 의원 마지막 발언 기사


은수미 의원 필리버스터 기사를 보면서, 그 분의 태도에 감동했습니다. 테러방지법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 속에서 무언가 울컥했습니다... 이 분 덕분에 이후 필리버스터를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계기도 되었고요.



고품격 정치 경제 역사 강좌


계속 실시간으로 감상하지는 못했고, 정리 능력자님들이 상큼하게 요약해준 요약본을 보았습니다. 보면서 저는 정말 한국 현대사에 무지했고, 정치 경제 역사에 대해 몰랐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고품격 교양 강좌를 듣는 기분이었어요.


김용익, 필리버스터,


김용익 의원의 필리버스터를 잠깐 듣는 가운데, 당시 수많은 학생들이 감시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누군가 나를 따라다니고,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아 불안증세를 겪는 학생들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 입니다. 문득 옛날에 즉결재판소에 대학생들 잡혀오던 생각이 나서 섬찟하기도 했습니다...


즉결재판소,


▶︎ 필리버스터를 보다가 떠오른, 공포의 응암동 즉결재판소 괴담


뻔뻔한 변명이나 현대사를 싫어하는 이유가, 현대사를 공부하면 가슴이 답답해서 입니다. 조선왕조 500년사나 고려사 등은 재미가 있는데, 근현대사는 너무나 저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쳐서 그런지 갑갑합니다. 답답하고 재미없다고 현대사를 등한시한 저 같은 사람때문에, 옛날의 안 좋았던 과거가 재현되고 있나 싶어 죄책감도 느껴졌습니다. 어쨌거나 당사자들이 직접 이야기를 해주니, 그 시절 상황이 답답하기는 하지만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마리텔은 본 적 없어도 마국텔은 즐감


계속해서 반성, 죄책감, 깨달음 같은 묵직한 것들만 있었다면 힘들어서 계속 보지 못했을 겁니다. 대신 일갈을 질러주어 대리만족도 있고, 채팅창에 사람들이 의견을 말하는 것이 너무 빨라서 읽기 힘든 재미도 있었고, 특히 마국텔 2차 창작물 보는 재미가 정말 쏠쏠했습니다. 강기정 의원이 나왔을 때, 홀리버스터, 강목사님, 아멘, 이런 반응이 나오길래 궁금해서 방송을 보니, 정말 톤과 말투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홀리버스터, 강기정,


홀리버스터에 엄청난 2차 창작물들이 쏟아져서 그 짤 보는 재미에 키득거리며 잠들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강기정 의원이 마지막으로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왔습니다. 아침부터 울컥했습니다.



몇 년 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관한 연구에 잠시 발가락을 담근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그깟 노래가 뭐라고 못 부르게 하고, 또 그걸 꼭 불러야겠다고 난리인가 했습니다. (연이은 무식함 고백.. ㅠㅠ) 필리버스터를 통해 현대사에 대해 쪼오금 알게 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으니 먹먹했습니다. 홀리버스터, 강목사님이라며 키득거리다가 절절한 노래에 눈물이 핑 돌았다가, 이석현 부의장님 나오면 힐러리라고 하는 별명에 또 빵터져서 키득댔습니다. <서민적 글쓰기>의 베댓되는법(링크) 읽고 연습해봐도 저는 그런 센스가 없는데, 센스 폭발하는 분들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힐러리, 마국텔,


필리버스터 끝나면 산뜻하게 요약정리해줘서 몇 시간짜리를 본 듯한 지식을 전해주는 분들, 빵 터지게 하는 센스를 가진 분들, 시각적으로 표현해주는 금손 분들... 덕분에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마국텔 힐러리, 필리버스터,



저도 역사의 순간에 함께했다고...


필리버스터 중단 소식이 월요일 밤에 새어 나와버려서, 삼일절날은 저도 덩달아 마음이 무겁기도 했습니다. 애초에 필리버스터라는 것이 마지막 저항 정도이고, 보통은 개가 7일을 짖어도 사람이 들은 척 할텐데... 이건 뭐... 7일간 밤낮으로 외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에 답답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영화보면 연설 한 번에 감동하면서 상황이 바뀌잖아요.... 그런데 현실은.....


필리버스터 중단에 화가 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노라니, 부정정서가 전이되어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그 덕분에 생각 정리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각 단계를 2단계로 구분하는 이론들이 많은데, 긍정정서일때는 심각하게 생각을 하지 않으나, 부정정서를 느낄 때 이성적 프로세스가 시작된다고 보는 이론이 있습니다. 기분이 좋고 신이 나면 "내가 왜 기분이 좋지? 왜 재미있는거지?"를 골몰히 생각하지 않고 대충 인지적으로 처리하지만, 기분이 더럽거나 화가 나면 "대체 뭐가 문제인지?"를 꼼꼼히 세세히 처리하기 시작합니다. 저에게도 아쉬운 필리버스터 마무리 과정은 재미있어서 별 생각없던 며칠을 곰곰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필리버스터 중단 소식에 실망했던 것은 한참 재미있게 보던 연재를 결론도 없이 중단한다고 했을 때의 황망함과 분노였던 것 같습니다.

"아, 왜? 한참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이렇게 끝내면 어떻게 해!!!!"

이런 기분이었어요. 애초에 필리버스터가 7일 넘게, 전세계에도 유래가 없을 정도로 오래 지속된다는 것이 이상한 상황이었는데... 저에게는 그냥 재미있었던 거지요. 고품격 교양강좌 듣는 기분도 들고, 다음 사람은 뭘 이야기할까 기대도 되고요.


어쨌거나 일주일 간 재미나게, 눈물 지었다가, 웃었다가, 깨달았다가, 반성했다가, 분노했다가... 하면서 보던 필리버스터가 끝났습니다. 보는 동안 계속 연탄재 시가 떠올랐습니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알고보니 이 구절은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의 첫 구절이었다고 합니다. (이 부분이 시의 전부인 줄 알았던... 연이은 무식함 고백...;;)

저는 그동안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하는 것 없이 세금으로 월급만 많이 받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대통령은 옷만 새로 사고 해외여행이나 다니는 사람이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아빠의 집을 되찾고 아빠의 업적을 되살리기에 인생을 걸었고 성공해낸 사람이었습니다. 이상한 법안을 발의하여 제가 욕했던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욕을 했어도 그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 하고자 하는 것을 달성한 사람입니다. 아직 못 이룬 사람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계속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었고요. 뜨거운 사람이었고, 현재도 뜨거운 사람입니다. 저와 방향이 일치하거나 일치하지 않음으로 인해 불편한 점이 있을지라도, 분명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밀고 나가는 면에서는 모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리버스터는 야당 국회의원들이 했지만, 덤으로 여당 국회의원과 대통령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저야 말로.... 단 한 번이라도.. 뭘 위해 뜨거워 본 적이 있기는 했을까요....


덧. 김정운 교수님의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 보면, 40대가 정치 뉴스를 보며 흥분하고 몰입하는 이유가 '삶이 무료해서' '뭔가 터졌으면 좋겠어서..' 그런다던데.... 저도 자꾸 정치에 관심이 가는 것이 나이 먹어서 그런가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아직 마흔이 되려면 좀 남았는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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