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세월호 분향소, 온라인에서 보는 것과 너무 다른 유가족

라라윈 하루하루 사는 이야기 :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 온라인에서 보는 것과는 너무 다른 유가족

최근 친구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남자친구는 연애하고 사귀다 헤어질 수도 있지만, 친구와의 우정은 비교적 영원할거라고 순진하게 믿었는데.... 아니라는 현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제가 변했고 변하고 있는데, 친구도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변하기에... 관계가 달라집니다.

또 다른 면은,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을 보는 다른 눈이 떠진 탓 입니다. 어떤 친구는 예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제가 알던 것보다 더 훌륭하고 대단한 친구도 있고, 어떤 친구는 예전에는 몰랐는데 그냥 저를 이용해 먹기만 했던 사람도 있습니다. 친구들의 대단한 면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떠진 것은 기쁜 일이나, 저를 이용해 먹는 부분에 눈이 더 떠진 것은 괴로운 부분이었습니다.


주말 오전,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어서, 다른 이야기를 하다 말고 이야기는 친구 문제로 돌아갔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작은 깨달음을 하나 얻었습니다. 친구 관계도 결국 박수치는 것과 같아서, 어느 한쪽만 일방적인 경우는 없다는 단순한 사실 입니다.

만약 제가 바보같이 이용 당한 것 같았더라도 실제로는 저 역시 그 친구에게서 어떤 기쁨이나 즐거움을 얻었기에 그 친구와 붙어 있었을 겁니다. 만약 마음이 불편한데도 함께 있었다면, 최소한 혼자되는 외로움에서는 벗어날 수 있어서 붙어있었을 겁니다. 반대로 보자면 친구도 마찬가지 입니다. 친구 혼자 저를 챙기고 위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만한 무언가를 제가 했기에 관계라는 것이 유지가 되었을 겁니다. 소위 말하는 '둘이 똑같으니까 친구다.' 라는 단순한 사실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선생님과 헤어지고 나서, 복잡한 마음에 무작정 걷고 싶었습니다.

종각에서 광화문은 그리 멀지 않으니, 광화문에 들러 노란 리본 뱃지나 몇 개 구입할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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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광화문 광장을 지나며 보고 있는데, 이곳은 현수막의 글귀가 약간 달라진 것 외에 변함이 없습니다.

작년 10월에 이 곳을 찾았을 때도 이 모습이었는데.....


2014/10/11 - 세월호 사고 지겹다 vs 진상규명 해야 한다는 근본적 심리적 이유는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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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가 세월호에 자꾸 감정이입하게 되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었습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 엄마가 단양에 놀러가 유람선을 타셨다고 했을 때 가슴이 철렁했거든요. 그 배는 누구든 탈 수 있었다는 것이 더 무섭습니다.


현수막이 붙어있는 천막은 <노란리본공작소>였습니다.

슬쩍 안을 기웃거리니 많은 분들이 앉아서 노란리본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붙임성있게 들어가지도 못하고, 주변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쭈볏거리며 지갑을 꺼내 리본 구입처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용히 기도하듯 리본을 만들고 있는 사람에게 뭘 묻기도 미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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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다 보니 공작소 앞에 무료 리본이 눈에 띄었습니다.

뭔가 성금이라도 내고 싶은데, 노란 리본을 무료로 집어오기 미안해서 지나가는 봉사자 분을 붙잡고 노란 리본 판매처를 물었습니다. 따로 파는 것은 없으니, 마음 편히 가져가라고 하십니다. 거저 가져가는 것이 부끄럽지만, 가방에 달 노란리본 몇 개를 집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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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하고 싶어서, 분향소 앞에서 국화는 얼마냐고 여쭈어 보니 그냥 헌화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국화 한 송이를 뽑아들고 분향소로 갔습니다.


아.....................


그동안 너무 무심히, 반복적으로 '세월호' '세월호' '세월호' 라고 하다보니, 저는 이 분들이 한 명 한 명의 고인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광화문 분향소에 있는 수많은 사진들이 모두 영정사진이라고 느껴지는 순간, 눈물이 울컥 솟았습니다. 사진 속에 웃고 있는 어린아이, 어떤 아빠, 어떤 엄마, 누군가의 부모, 누군가의 자녀들을 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정이 하루 아침에 풍비박산이 났는지 실감이 났습니다.... 이곳은 제가 가본 그 어떤 장례식장 못지 않은 슬픈 장례식장 입니다.


햇살 좋은 날, 광화문 한복판에서 울고 있는 것이 창피해서 슥슥 콧물을 닦고는 나오려는데, 한켠에 서 계시던 분이 상주처럼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아.... 이 분들은 상주(喪主)였습니다.



온라인에서 유가족의 이미지는 다소 투쟁하는 사람 같이 느껴졌습니다.

아무래도 유가족의 기사는 영정을 들고 행진할 때, 삭발할 때, 청와대 앞에서 농성할 때... 같이 극적인 대립 장면의 기사가 많이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뵌 유가족은 그저 1년째 상중인 힘없는 아버지, 어머니 일 뿐이었습니다. 마르고, 헬쓱하고, 볕에 타서 얼룩덜룩 거무튀튀하고, 멍해 보이고....


반년 전 쯤 광화문 광장에서 뵈었던 유가족 분도 비슷했습니다.

10월인데도 한여름에나 입을 법한 하얀 내의같은 반팔 티셔츠 하나를 입고, 푸석푸석 헬쓱한 얼굴에, 계속 볕에 그을린 듯 얼룩덜룩한 피부색이었습니다. 무엇을 여쭤봐도 멍하니 대답도 바로 못하시고, 영혼은 다른 곳에 있는 분 같았습니다. 이 날 광화문 분향소에 서 계시는 유가족도 비슷했습니다. 신문에서, 뉴스에서 보이던 투사같은 모습은 오간데 없고, 그냥 기운없고 계속 슬픈 사람일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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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저는 통계 돌릴 때처럼 사람을 숫자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숫자 9명, 10명으로 온라인에서 접했을 때는, 이제 그만해도 될거라는 생각도 솔직히 했습니다.


그러나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보는 순간, 숫자는 다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 하나 하나가 그냥 숫자 하나 둘, 아홉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족이고, 삶이 있던 사람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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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ore funerals

얼마 전에 봤던 영화 <분노의 질주 세븐>에 나온 대사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제 생애도 두 번 다시 이런 슬픈 장례식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기적이라해도 좋습니다. 정말 보고 싶지 않습니다.....


친구, 사람관계에 대한 고민에 마음이 무거워서 휘적휘적 광화문 광장까지 걸어왔던 것인데....

세월호 분향소에서 사진을 보며, 숫자로 여기던 희생자들이 1명, 9명, 200명의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었고, 희생자 보다 더 많은 숫자의 가족들이 아직 울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자,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제가 어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미안하고 화가 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눈물만 울컥 났습니다.


다행히 햇살이 뜨거워 선글라스를 끼고 울면 되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길을 더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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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앞에는 더운 날씨에도 수문장 교대식이 진행되고, 늘 그랬듯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든 이들이 유가족과 함께 울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켠에서는 비쩍 마르고 꺼멓게 탄 얼굴로 1년째 빈소를 지키고 있는 유가족이 있고,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는 관광객들이 가족들의 손을 잡고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채 사진찍는 모습을 보니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제 스스로 느끼는 죄책감 같은 것 입니다.

'우리 모두가 유가족처럼 지내야 하는건 아니잖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면 되는거지 뭐.'

라고 합리화를 해봐도 손톱 옆에 찢어진 가시처럼 콕콕 찔리고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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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이 보였습니다.

이 와중에 커플은 참 예뻤습니다.

그냥 저 같은 사람은 세상 돌아가는 일이 어찌되거나 말거나 연애질에 대해 탐구하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덧 효자 청운동사무소 언저리까지 다다랐습니다.

이 쯤 오니, 분향소와는 완전히 다르게 결혼식에 가는 사람들, 등산 다녀온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이 때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집에 올 때 햄버거 좀 사오라고 합니다.

현실로 돌아옵니다. 저는 집에서 배고프다며 햄버거 사오라고 귀찮게 해주는 가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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