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 지겹다 vs 진상규명 해야 한다는 근본적 심리적 이유는 똑같다?

라라윈 사는 이야기 : 세월호 사고를 두고 입장이 충돌하는 심리, 사실 똑같다?

드디어(?) 광화문을 찾았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 위한 1일 동조단식을 하면서 광화문을 한 번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수없이 이 근처를 지나면서도 막상 이 천막에 들러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곳의 상황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광화문 세월호 유가족 천막을 찾아가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세월호 특별법이 흐지부지 통과되는 과정에서 첫 마음은 어느 정도 사라진 채, 궁금한 구경꾼의 마음만 남아 있었습니다. 마침 광화문 근처에 약속이 있어 걸어갈 겸 광화문의 세월호 유가족 천막에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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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의 뜻이나 세월호 특별법의 취지와는 거리가 먼 합의 때문일까요..

아직도 "세월호 유가족 천막에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실입니다." 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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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가 보니, 여러 천막이 있습니다. 평일 낮 시간 이라서인지... 남의 일이라며 관심이 시들해져서인지 천막 안에는 몇몇 분들만 자리를 지키고 계셨습니다. 저와 비슷한 관광객인지 추모객인지 헷갈리게 휘휘 둘러보며 구경하는 사람 몇몇도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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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켠에 노란 국화와 누군가 바친 꽃다발이 놓여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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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벌써 175일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국회 본청 앞 농성이 88일이 지났다고 합니다.

광화문 광장 농성은 86일째

청와대 앞 농성은 47일째 입니다.


이렇게 많은 날이 지난 줄 몰랐습니다.

마음은 아프지만 직접적인 제 일은 아니기에 구경꾼처럼 지켜보니 이리도 시간이 훌쩍 흐른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광화문의 시끄러운 도로 한복판의 차디찬 바닥에서 벌써 석달째 계시다니...


그리고 이 긴 시간 유가족들이 오직 "진상규명" 하나만 바라는데 왜 그것을 들어주지 않는지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유가족이 돈을 바라고 농성을 하는 것이라서 안 들어준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고, 오직 두 번 다시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명명백백한 진상규명을 해달라고 요구하는데, 그 요구가 석달을 길바닥에 버려두고 들어줄 수 없는 무모한 것인지, 대체 누가 비정상인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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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보드의 다른 한 켠에는 채증하는 경찰을 신고하는 방법에 대한 글과 세월호 개인 현수막 신청 안내문이 있었습니다. 저도 저 노란 현수막 걸고 싶었는데, 오천원이면 제 이름이 적힌 노란 현수막을 만들 수 있다기에 신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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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들의 빈소와는 별개로 이순신 장군상은 우리나라 관광 포인트이니 이 앞에서 사진을 찍고 무심히 가는 외국인들이 있었습니다. 종교는 따로 있지만,


"이순신 장군님, 장군님 발 아래 천막을 치고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내걸고 자녀가 왜 죽었는지 알고 싶어 하는 이들 가족을 지켜주세요.."


라는 기도 아닌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저 역시 광화문 세월호 유가족 천막 구경꾼 답게... 두리번 거리다 나오면서 책 한 권과 현수막 하나를 신청하려고 물어보았습니다. 이제는 자원봉사자가 많이 줄었는지 사람도 없고, 여쭤봐도 멍하니 계셨습니다.

금세 몹쓸 손님 습성이 튀어 나오면서 빨리 대답해 주시지 않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책값과 현수막 값을 지갑에서 꺼내들고 서 있는데도 우왕좌왕 하시더라고요. 제 표정이 불편해 보였는지... 그 분은 머쓱하게 머리를 긁으시며 한 마디 하셨습니다.


"죄송해요.. 제가 유가족이라 잘 몰라서요......"


그 순간, 아저씨 가슴에 매달려 있는 학생의 이름표가 보였습니다.

아버님은 아직도 하얀 면티에 얇은 봄 잠바를 하나 걸쳐 입고, 가슴에 아들의 이름표를 걸고 계셨습니다. 이제 가을 바람이 싸늘한데, 아버님 옷차림은 4월 16일에 멈춰있는 듯 했습니다. 광화문 천막에서 볕을 얼마나 쬐셨는지 얼굴은 까맣게 타 있으셨습니다. 

아버님 옷과 아들 이름표를 본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거스름돈도 그냥 보태주세요"


라고 말쓰드리고 황급히 종종걸음으로 나왔습니다.

이렇게 글로 적을 때는 제가 꽤나 감수성 풍부한 사람 같이 보이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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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에서 딱봐도 30대 중반같은 여자가 실연이라도 당한 듯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코가 뻘개져서 훌쩍이는 모습이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누가 볼까 신경쓰며 종종걸음을 치며 신문로의 약속 장소로 가려는데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신호는 그대로 바뀌지 않아 수십명이 신호등 앞에 서자, 행여 누가 볼까 부끄러워 훌쩍이던 얼굴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 때, 대통령이 탄 차가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횡단보도 신호를 한참동안 통제했나 봅니다.


대통령이 탄 차가 눈 앞에서 지나가는 모습은 처음 봤는데, 하필 세월호 유가족이 노숙하고 있는 광화문 돌바닥 옆에서 편히 에쿠스에 몸을 싣고 교통통제를 다 하고 지나시는 VIP를 보는 심정은 씁쓸했습니다.

저는 나라를 꾸리는 리더 입장이 되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큰 그림을 그리시는 분들의 깊은 속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뭣 모르는 국민 한 사람 입장에서는 두렵고 무섭고 속상합니다.

광화문과 신문로는 정말 가까운데, 광화문 천막에서 멀어질수록 훌쩍거리며 울고 있는 것이 창피했습니다.

재빨리 카페에 들어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짱박혀 약속시간이 되길 기다리며 책을 펼쳐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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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