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를 보다가 떠오른, 공포의 응암동 즉결재판소 괴담

라라윈 특별한날 기록: 2016 필리버스터를 보다가 떠오른 공포의 응암동 즉결재판소 괴담

어릴 적 저희 동네에는 실성한 아줌마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응암동 즉결재판소 옆에 살았는데, 매일같이 버스로 대학생 언니오빠들이 굴비엮이듯 묶여서 실려오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들을 찾아서 엄마들이 왔던 것 입니다. 혹시 우리 아이 본 적 없냐고... 학교 갔던 아이가 실종되었다고...

인터넷도 없고 컴퓨터도 없던 때이니 흐릿한 사진에 손글씨를 보고 알아볼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즉결재판소에 실려오는데, 동네사람들이 그 집 아이를 구별할 수 있을리가요......

엄마들은 즉결재판소 근처를 몇 번을 찾아오고, 아무나 붙잡고 우리 애 못 봤냐고 울부짖기도 하고, 생사라도 알려달라고 소리지르기도 하고, 실성한 사람들 같았습니다.
동네사람들 소문에 따르면, 돈 좀 있는 부자집이어도 아이가 안기부같은 곳에 잡혀가 사라지면 그 아이 찾다가 1~2년 내에 파산한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찾기 위해 있는 연줄 없는 연줄 다 대보고, 돈도 정신줄도 내던진다는 것 입니다. 애초에 그럴 돈이나 뺵이 전혀 없는 부모들은 완전히 실성을 했다고 합니다. 그 시절 없는 집에서 간신히 아이가 대학가서 이제는 나아지나 했는데 하루 아침에 아이가 실종되었으니...


아이가 실종되어서 정신줄 놓고 찾아 헤매다가, 응암동 즉결재판소까지 찾아와 우리 아이가 여기 붙잡혀 오지 않았느냐, 판결나서 어디로 간 지만 알려달라고 하는 부모들을 보면 딱하지만... 부모만 딱하다 생각했다고 합니다.

지금보다 언론이 철저히 통제되던 시절이라, 언론에 나오는 것을 곧이 곧대로 믿는 어르신들은 혀를 끌끌 차면서


"그러게 왜 데모들은 하고 지럴이여. 즈기 부모들이 뼈빠지게 벌어서 대학 보내줬으면 공부나 할 것이지. 공부해서 의사되고 판사되고 그래서 효도할 생각은 못할망정 저러니 잡혀오지. 저런 것들은 싹다 잡어다 삼청교육대에 집어 넣어서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야 혀."


같은 소리를 하셨다고 합니다.

(3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관성있게 이런 소리를 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도 참... 서글픈 일 입니다.)

그러나 여자아이가 성추행을 당하면 옷을 짧게 입었거나 밤 늦게 다녔으니까 그랬을거라고 쉽게 피해자 탓을 하는 사람도, 자기 집 아이, 자기 친척이 당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당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재수없게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알기에, 나쁜 놈에게 분노합니다.

그 때도 똑같았습니다.


"우리 친척 중에 부자집이 있거든. 아부지는 공장운영하는 사장이라 돈 잘 벌고, 그 집 엄마는 참하니 사람 좋아. 수더분하고 내조 잘하고. 그 집 애도 얼마나 착한데. 착하고 공부도 잘해서 걔가 이번에 연대 들어갔잖아.

그런데 걔가 아침에 학교 간다고 나갔다가 들어 오지를 않더래. 시험본다고 학교 가서 점심쯤 온다고 했는데 애가 안 오니까 처음에는 친구들하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나 했대. 그런데 저녁이 되도 통금이 되도 안 들어오는거지. 시험기간에 어디 갔을리도 없고. 원체 모범생인 애라 친구집가서 자고 온 적도 없는 애니까 엄마가 난리 난거지. 애 아부지도 퇴근하고 와서 애를 찾고. 친구들도 아무도 모른다더래. 학교에서 시험보고 집에 간다고 갔다는데 집엔 안 온거지.

처음에는 인신매매 당하거나 뭔 일 난 줄 알고 찾았대. 유괴 당했거나. 부자집이니까. 그런데 암만 기다려도 연락도 없고, 애 아부지 아는 고향 후배가 경찰서장이라 걸로 알아봐도 모른다더래. 그 집 엄마는 맨날 여기저기 높은데 있는 아는 사람 찾아가서 알아봐 달라고 하고, 여기저기 빽을 썼는데도 아무도 모르더래. 서울에 있는 경찰서란 경찰서는 다 가보고, 즉결재판소도 가보고, 다 가봐도 아무도 모르더랴. 그렇게 두 달인가 석 달인가 애 찾아다니다가 공장도 문 닫고, 애 아부지는 포기하라고 하고 애 엄마는 병이 나서 쓰러졌는데 그 몸으로 매일같이 애를 찾아 다닌거지. 석 달인가 됐는데 그 아는 사람, 뭐 높은자리 있는 사람이 애 어디있는지 찾았다더랴.

학교 가는길에 안기부에 끌려가서 삼청교육대에 가 있더래. 갸는 운동권인가 뭔가 그런것도 아니고 그냥 정말로 학교가는데 잡혀간거지. 그런데 뭐 암만 아니라고 그래봐야 믿어주간디. 애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간거 아니까 어디있는지는 알아서 다행인데, 삼청교육대에 끌려가면 죽거나 병신되는 사람이 한 둘이여. 또 실성한거지. 정말로 착한 애인데 재수가 드럽게 없었던거지. ㅉㅉㅉ"


라는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전해졌습니다. 한 두 집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집 앞에 나갔다가, 학교 갔다가, 잡혀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고 합니다. 모르는 남의 일일 때는 잘못을 했으니 잡혀갔을거라고 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아무 죄없이 잡혀가서 사라지는 것은 진짜 공포 괴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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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암동 즉결재판소 근처에 살며, 죄 없어 보이는 언니 오빠들 평범한 아줌마 아저씨들이 잡혀오는 것을 보는 것만 봐도 무서웠습니다. 너무 많이 잡혀왔고, 실종된 가족을 찾느라 울부짖는 사람들도 많이 와서 더 무서웠습니다. 누구라도 쉽게 잡혀갈 수 있다는 것 같은 공포를 주었지요.

특히 아이 찾아 오는 실성한 엄마들의 모습은 동네의 아이가진 엄마들에게도 공포심을 심어줬던 것 같습니다. 우선은 아이에게 나중에 대학가면 데모하지 말라고...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만, 학교에서 소리소문없이 재수없이 잡혀갈 수도 있는것이니까요....


생각해보니, 이런 공포스러운 상황은 꽤나 오래 지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최루탄을 맞아서 눈물 콧물 쏫으며 학원 갔던 적도 있고, 교복을 입고 있는데도 신분증 검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교복입고 똑단발에 여드름 더덕더덕나고, 살쪄서 교복은 터져나갈 것 같은, 누가봐도 딱 입시 스트레스 만땅인 여고생인데도 연대 앞 버스정류장 가는 길에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학교 입학했을 때, 동네 어른들이 데모하지 말라고, 대학로에서 데모하면 근처의 과학관에 있는 망원경으로 얼굴 다 찍어서 잡아간다고, 절대로 데모하지 말라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대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학생회장 언니는 도망다니느라 신입생 공식 환영회에 못 나오기도 했고요. 시위하다가 유급했다는 아득한 88학번 아저씨 선배가 막 출소한 사람같이 까까머리에 허름한 군복같은 것을 입고 학교에서 어슬렁거리는 진귀한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쁘락찌 라는 사람들 (그것도 동기나 선후배 중에) 있으니 대통령이나 정치에 대해 욕할 때는 조심하라는 이야기도 들으며 다녔습니다.

저는 그 때나 지금이나 일신의 영달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사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냥 어떻게 하면 학점 잘받고 취업 잘할지 돈 많이 벌 수 있을지만 관심있어 그냥 저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 뒤로 세상이 편해져서 개그콘서트에서 대통령을 희화화하기도 하고, 대통령 욕한다고 잡혀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옛날 응암동 즉결재판소 괴담은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이 막 잡혀가는 시대가 아니어서 그런지, 즉결재판소도 사라지고 그 자리가 서대문세무서 별관으로 바뀌어 사람들이 잡혀왔다는 것은 정말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이번 필리버스터를 보니, 제가 꼬꼬마시절 버스에 실려서 끌려왔던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바로 지금의 국회의원들이셨던 것 같았습니다. 

포박당한 채 줄줄이 즉결재판소로 걸어들어가고 걸어나오는 모습만 봐도 무서웠는데, 본인들의 입으로 말하는 갑자기 납치당해서 고문당하고 얻어터지던 경험은 듣기 힘들 정도로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의아했습니다. 왜 테러방지법을 막아야 한다고 하는데, 자신들이 국정원 (옛날 안기부) 끌려가서 고문 당한 이야기를 하며 우는지 말입니다. 테러방지법이 국정원 고문과 무슨 상관이 있길래....

테러방지법 요약과 전문을 보니, 이름은 테러방지법인데 테러방지를 하는 방법이 국정원장에게 모든 힘을 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국정원장이 테러의심 가는 대상은 자유롭게 (다른 법안을 무시하고, 그에 우선하여) 털어보고 괴롭힐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의심'이라는 기준이 너무나 애매모호한데,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냥 '의심스러우면' 털어보고, 해외여행도 못가게 할 수 있고,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 테러방지법 전문 {링크)


막연하게 옛날에 억울하게 잡혀오던 사람들도 비슷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이제서야 제가 꼬꼬마 시절에 그 사람들이 왜 잡혀왔는지 찾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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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하자면, 그냥. 재수없게, 잡혀 온 사람들이 태반이었나 봅니다. 마치 학생주임 선생님이 그 날 그 날 기분에 따라 어제는 괜찮았던 구두가 오늘은 불량하다고 때리고, 양말을 3번 접었다고 때리고, 리본이 삐뚤어졌다고 때렸던 것처럼.... 명확한 원칙이 없어 그냥 걸리면 재수없는 것이었나 봅니다.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를 보며, 3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서야 왜 응암동 즉결재판소가 유명했는지 알게 되었고, 그 때 수없이 잡혀오던 사람들이 왜 잡혀왔는지 알게 되었고, 억울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고작 마흔도 안 된 지금, 꼬꼬마 시절의 공포스럽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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