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알못의 소원성취, 자치동갑 국악원 가야금 연주회 참여 후기

라라윈 특별한 경험 : 음알못의 소원성취, 자치동갑 국악원 가야금 연주회 참여 후기

저의 엄청 근사한 취미 중 하나는 가야금 배우기 입니다.

가야금을 배우고 있다고 하면, 특이하다고도 하고, 돈이 많은가보다 하기도 하고, 음악에 조예가 깊을 것 같다고 하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가야금이라는 악기가 주는 이미지가 참 근사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는 저는 돈이 많지도, 음악을 잘 알지도 못합니다.



# 음알못 甲 오브 甲


저는 소위 음알못, 음악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 대결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먼저, 가사를 외울 수 있는 노래가 한 곡도 없습니다. 후후훗. 벌써 제가 음알못 갑 오브 갑으로 이긴건가요? ;;;

18번이니 애창곡이니 하는 것이 없습니다. 음치에 박치라 노래 부르는 것을 싫어하고, 노래방도 싫어합니다. 어릴때는 짬이 안 되니까 윗분들이 노래방가시면 따라갔지만 짬이 좀 되고 부터는 노래방 간다고 하면 집에 옵니다.

다음으로 노래만 기억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 기억력도 꽝 입니다. 

옆에서 "이거 그 드라마에 나왔던 곡이잖아. 이거 그 영화에 나왔던 유명한 OST잖아." 라는 말을 해도 전-----혀 기억 못합니다. 100번 넘게 본 영화나 애니 드라마 음악은 드물게 기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수 백번을 들은 명탐정 코난 주제가도 구분 못 합니다.

다룰 수 있는 악기는.. 리코더도 못 불고, 피아노도 못 칩니다.

피아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각서쓰고 그만두었습니다. 피아노가 너무너무너무 치기 싫어서 그만 다니겠다고 했더니, 엄마 아빠가 그러면 "제 스스로 그만두었으므로 추후 피아노를 못 치는 것에 대해 아빠 엄마를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각서를 쓰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각서를 써놓고 피아노 학원을 끊었습니다. 커 보니, 피아노를 배우다 말아서 반주 한 곡도 못하고, 제대로 칠 줄 아는 곡이 없다는 것이 후회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저는 진정한 음알못으로, 진정 음악에 대한 능력은 단 한 조각도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가야금은 너무나 막연한 '꿈'이었을 뿐 입니다. 



# 가야금 배우기 도전


처음에는 가야금 배울 수 있는 곳도 적은 것 같고, 레슨비와 악기비 때문에 엄두를 못 냈습니다.

어느 해 였던가, 악기 하나는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가야금 배우기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찾아보니 문화센터에서 월 7만원에 배울 수 있는 곳도 있고, 버스 타려고 기다리다 보니 버스 정류장 위층 피아노 학원에서 가야금도 가르친다고 쓰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레슨비는 10만원 조금 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악기는 학원에 있는 것을 쓰면 되어서 바로 구입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막연히 생각할 때는 엄청 비쌀 것 같고, 엄두가 안 나더니 검색하고 상담을 받아보니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했지요.  해보다가 가야금을 중고로 하나 구입했습니다. 가야금 가격은 천차 만별인데 연습용 가야금은 3~40만원 짜리도 있고, 연주용 가야금은 80~150만원 이런 식으로 가격대가 다양했습니다. 비싼 악기여도 중고로 나오면 싸길래 중고로 구입해 집에서도 뚱땅거렸습니다.

가야금의 장점은 구입 이후 유지비가 안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율비나 부품 교체비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다녔던 학원에 가야금 수강생은 저 하나였습니다. 성인도 저 한 명이고 전부 초등학생들만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전공생처럼 독려(?)해주시며 연습 좀 열심히 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전공생도 아니고, 게다가 음악에 재능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음알못이라 이내 흥미를 잃었습니다. 이미 평생을 음악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가야금 배우러와서 박자 못 맞춘다고 혼나고, 연습 못 따라 온다고 혼나니 하기 싫었습니다.


그러다가 아현동 아씨님 덕분에 북촌에 자치동갑국악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 가는 길에 있어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게다가 한옥이라 한옥 툇마루에 앉아 가야금을 뜯는다는 자체가 꿈을 이룬 기분이었습니다.

가야금 뿐 아니라 인생에 대해서도 많이 가르쳐주시는 원장님, 솜사탕같이 상냥한 선생님, 제 또래 취미생도 많아서 일주일에 한 번 가야금 배우러 가는 날은 아주 신났습니다. 가야금을 잘 타지는 못하지만 그냥 한옥 툇마루에 앉아 정원의 대나무를 바라보며 뚱땅거리는 자체가 너무나 좋았습니다.



# 꿈 꿔보지 못한 꿈, 연주회 참여


꿈도 못 꾸던 일도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연주회에 참여하게 된 것 입니다.


저는 음치 박치에 진정한 음악맹 수준이기 때문에, 성당에서 합창을 해 본 적도 제대로 없습니다. 제 인생의 연주회는 초등학교 2학년 때 피아노 학원 재롱잔치에서 <소녀의 기도>를 쳤던 것이 마지막일거라 생각했습니다.

수 많은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지만, 그 상상 중에 제가 연주회에 참여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건 정말 꿈 꿔보지도 못한 꿈이었어요.




# 시간예술이 알려주는 '찰나'의 소중함


저는 학부 미대생 출신이라, 전시회는 몇 번 해 봤습니다. 연주회를 준비하려니 전시회 준비하던 생각도 나고, 미학강좌 들으면서 음악과 미술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던 생각도 났습니다.


그 때, 가장 큰 차이점으로 꼽았던 것이 '시간'이었습니다. 미술 작품은 회화, 조각 등은 반복해서 전시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음악회는 그 순간에만 감상할 수 있는 예술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을 지금도 볼 수 있지만, 그 시대 거장 음악가의 음악은 지금 그 누구도 들을 수 없습니다.

미대생 시절이고, 음알못이라서 '역시 미술이 좋다, 음악은 죽도록 연습해서 한 순간에 끝나버리니 조금 아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주회 참여를 위해 연습을 해보니, 정말로 3분, 6분을 위해 30시간, 60시간 이상을 연습해야 했습니다. 딱 3분, 딱 6분을 위해서요.

아깝다면 아까운 일인데, 그래서 그 '순간'이 엄청나게 소중했습니다. 연습하는 순간도 소중하고, 연주하는 그 찰나의 순간도 정말 소중했습니다. 

그리고 연주는 딱 그 시간, 몇 분 안에 끝난다는 것 외에 두 번 다시 똑같은 음악을 연주할 수 없다라는 특징도 있었습니다.


2년 전에도 연주회 프로그램에 '성금연류 가야금 산조'가 있었고, 올해 연주회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곡을 연주함에도 다릅니다. 누구와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많이 달랐습니다. 시간예술이라 허무하고 아깝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너무나 소중하고 잊을 수 없는 3분, 6분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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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제일 돋보이고 싶어'가 아닌 '묻어가자'


처음에는 무대에 선다고 생각하니, 제가 제일 주목받고 싶었습니다. 혼자 주목받을 수 있게 독주를 하고 싶기도 했고요.

합주를 위해 맞추는 과정이 힘들었거든요. 독주라면 그냥 혼자 막 치면 되는데, 합주를 하려고 하니, 합주하는 사람들끼리 박자를 똑같이 맞추고, 누르는 음정도 똑같이 맞추어야 했습니다. 저는 안 틀리는데 상대방이 자꾸 틀리면 짜증나고, 상대방은 잘 하는데 저만 자꾸 틀리면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둘 다 유쾌한 감정은 아니니, 그냥 속 편하게 독주를 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처음 작은 연주회에서 기회가 왔습니다. 3일간 이어지는 연주회 중에서 2일을 참여하게 되었는데, 한 번은 합주, 한 번은 독주를 하게 된 것 입니다. 합주를 그럭저럭 끝내고, 독주 할 때는 진짜 잘 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독주를 해보니, 진땀이 났습니다.

합주할 때는 제가 좀 틀려도 다른 멤버가 보완해주며 넘어가기도 했는데, 혼자 연주하니 틀린 것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저의 부족함이 훤히 보였습니다. 쓸쓸하기도 했습니다. 합주할 때는 같이 연주할 사람들끼리 어울려 챙겨주기도 하고, 수다도 떨었는데, 혼자 연주하니 준비할 때도 혼자, 끝나도 혼자였습니다. 망했을 때의 부끄러움도 오롯이 제 몫이었습니다.. ㅠㅠㅠㅠ

그 뒤로는 혼자 주목받고 싶은 욕심은 사라지고, 잘 묻어가자는 협동심이 생겨났습니다.



# 다른 사람과 맞추었을 때의 희열


정식 연주회를 앞두고 5명이 합주 준비를 하자, 새로운 희열을 알게 되었습니다.

5명이 박자, 음정을 정확히 맞추어 마치 한 사람처럼 연주했을 때의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습니다.

아마추어 5명이 회사 다니며 짬내서 시간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고, 초보들끼리 한 음을 내는 것은 더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연습하다가 딱 맞을 때는 속이 뻥 뚫히는 통쾌함과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듯한 희열이 느껴졌습니다.


또 가야금 합주를 해보니, 하향평준화 되는 특성이 있었습니다.

저는 가야금 산조를 최선을 다해서 빨리 연주해도 6분 20초 정도 걸립니다. 동일한 곡을 원장님은 여유있게 3분 정도에 연주하시고, 전공생 친구는 5분 남짓 걸리는 것 같았습니다. 못하는 사람이 급 잘하게 되지는 않기 때문에, 연주 속도가 못하는 사람 쪽으로 맞춰졌습니다. 제일 못하는 제가 조금이라도 연습을 더 하면, 전체가 조금 더 빠르고 멋지게 연주를 할 수 있는 것이고, 뒤쳐지면 음... 잘하는 분들이 커버해주면서 나가지만 전체의 완성도가 약간 떨어집니다. 즉, 제가 잘 못하면 굉장한 민폐가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민폐가 되지 말자' 하는 협동심이 생겼습니다.

제가 타는 척만 하고 소리를 못 내면 그 역시 소리가 빵빵 터져나오지 않아 민폐이니, '잘 못해도 한 사람 구실을 하자'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동안 순위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며 살아왔지, 못하거나 잘하거나 같은 소리를 내기 위해 애써 본 경험이 없어... 이런 상황이 특이하다 싶기까지 했습니다.

원래 잘하는 사람은 더 잘하는 티를 내고, 못하는 사람은 헉헉대며 따라가는게 세상이라 생각했는데... 합주에서는 모두 같은 소리를 내기 위해 잘하는 사람은 더 잘 할 수 있어도 못하는 사람에게 맞춰주고, 못하는 사람은 못하는대로 폐가 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처음 느껴보는 독특한 협동심이라... 이렇게 연습하다가 딱 맞았을 때의 기쁨도 어마어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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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마지막까지 대기실에서 한 번이라도 더 맞춰보는 것도 좋았습니다.

연주회 당일에는 제 연습하느라 몰랐는데, 선생님들도 분장실 한 켠에서 마지막까지 한 번 더 맞춰보시고 무대에 오르셨다고 합니다.



다만, 이 모든 소회는 오롯이 제 감정상태일 뿐 입니다..

2년 전, 자치동갑국악원 10주년 기념 연주회 때, <전설> 연주팀은 틀려도 같이 틀리고, 어떻게든 맞춰보자며 으싸으쌰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본 공연에서 정말 (연습보다 괜찮게) 잘 맞은  연주를 했습니다. 무대를 빠져나오며, 모두 몹시 기뻐했습니다. 제일 신났던 연주팀이라고도 합니다.

2년 후.. 이제는 말할 수 있으셨던지 원장님이 말씀해주시길,

"실은 그 때 전설팀 연주할 때 관객들은 좀 졸았어요.... 그래도 연주자들은 제일 행복해했지....."

라고 하셨습니다.


연주자는 뿌듯하고.. 관객은 힘드셨다는 그 곡... <전설> 가야금 연주 동영상 입니다....



힘드셨을 분들을 위해.. 귀가 정화되는 25현 가야금 오봉산 타령 동영상과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동영상도 올립니다.




이상 소원성취를 해서 너무 신난 음알못의 가야금 연주회 참여 후기였습니다.



- 자치동갑 국악원 10주년 기념 연주회에서 저도 가야금 연주를 히게 되었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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