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윈 생각거리, 버튼 하나만 안 눌려도 화가 나는 분노 왕국
편의점 택배를 보내러 갔습니다. 먼저 온 손님이 있습니다. 처음인지 헤맵니다. 편의점 택배를 보내러 갈때는 꼭! 컴퓨터에서 예약 접수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같은 시대에 이렇게 불편하고 오래 걸리게 해 놨을까 싶어 그냥 가기 쉽지만, 정말 불편합니다. 하나 하나 입력하다가 오류나면 처음부터 다시해야 되는데 정말 성질 납니다.
제 앞에 온 손님은 나이드신 아주머니와 아드님인 듯 했습니다. 아드님도 헤매고,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예약하고 가서 1분 남짓이면 끝날 일이었는데, 앞의 분들 때문에 5분 넘게 기다리니 슬슬 화가 났습니다. (참고: 편의점 택배 보내는법, 헛걸음하지않게 포장해서 비회원 택배예약 접수 하고가세요)
문득, 이게 정말 화가 날 일인가? 하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고작 5분 남짓 앞사람이 처음 편의점 택배 보내느라 헤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그렇게 화가 날 일은 아니었습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능숙하게 입력하고 출력 버튼을 눌렀는데 용지에 걸려 안 나옵니다. 이런. 택배 접수하면 싫은 티 팍팍내는 초짜 사장님을 불러 살펴봐 달라고 했더니, 대충 보고 다시 해보라고 합니다. 다시 해 봤으나 또 출력이 안 됩니다. 또 부른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아 다른 편의점으로 갔습니다.
뭣하러 여기서 20분 남짓 보낸건지...
또 화가 납니다.
이게 그렇게 화가 날 일이었을까요....
옆 편의점에 가니 바로 됩니다. 그런데 앞 편의점 오류로 인해 제 마일리지 포인트가 사용된 것으로 나옵니다. 고작 몇 백원인데 또 살짝 짜증이 납니다. 앞 편의점에서 시간 버리고, 마일리지 몇 백원 날리고, 괜히 두 번 걸음하고... 화가 납니다.
잠깐, 또 묻습니다.
이게 그렇게 화가 날 일일까요?
누구도 고의적으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계 오작동이나 사람이 서툰 것이 이렇게 못 견디게 화가 날 일인건지...
편의점 택배 보낼 때만 화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인터넷 하다가도 수시로 화가 납니다. 액티브 엑스 하나에 화가 나고, 결제창 오류떠도 화가 나고....
어찌 이놈의 화는 이렇게 쉽게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걸까요.
찾는 것이 안 나올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타이레놀 여기 어디 넣어뒀는데 안 보이면 짜증이 납니다. 가뜩이나 머리 아픈데 약이 안 보인다며 더 성질이 납니다. 머리 아픈데 성질내고 짜증내니 머리가 더 아파집니다.
급기야 스마트폰에서 버튼이 한 번만 안 눌려도 화가 납니다. 한 번 쓱 밀면 이전 화면 또는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야 되는데 안 넘어가거나, 다음 장으로 넘겼는데 이전 장으로 넘어가는 지극히 사소한 것에도 너무 쉽게 화가 납니다.
왜 이렇게 사나 싶습니다.
어쩌다 제가 이렇게 살고 있나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대체 왜 이리 사소한 것에 짜증이 나고 화가 날까요?
곰곰히 생각해 보니, 원인 중에는 스마트폰도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카톡 보냈는데 당장 답장이 안 오면 왜 답장 안 보내는지 짜증이 나고, 특히 급한 일이 있어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으면 순식간에 화가 나 버립니다. 앞서 기술한 짜증나는 것들의 상당 부분은 스마트폰, 인터넷, 노트북 등과 관련이 있습니다. 클릭 한 번만 안 먹혀도 화가 나니까요.....
문제는 이것이 저 개인의 성격장애가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라는 점입니다. ㅠㅠ
분노사회라 할만큼 (아직 이 책은 못 읽어 봤습니다) 바르르르 분노하는 일이 잦고, 건드리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아주아주 사소하고 작은 자극에도 짜증이나 화를 뿜어낼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다른 반응신경은 무디되, 어찌 이리 분노와 짜증 반응속도는 우사인 볼트 싸대기 휘갈기듯 빠른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쉽게 분노 체인으로 이어집니다. 혼자 있어도 스마트폰 버튼 한 번만 안 눌려도 짜증이 나고, 카톡 답장 조금만 늦어도 짜증이 나고, 문서에서 알수없는 오류로 창 한번만 닫혀도 화가 나는 사람이다 보니 그보다 큰 자극에는 바로 폭발합니다. 짜증이 짜증을 낳고, 또 짜증을 전하고...
사회학자, 사회심리학자들은 이와 같은 분노왕국이 사회적 원인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서로 날이 서 있고, 화가 나 있으니 더더더더 극화가 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 쌓인 불만을 사소한 것에 짜증을 내며 풀고 있는 것이라고요...
어찌할 수 없는 개개인들은 억지스럽게 감사 체인을 만들며, 감사함을 전하자는 운동도 종종 벌어지지만 말 그대로 자연스럽기 보다 강제적으로 뭔가를 해야 되는 일 입니다. 또 다른 미봉책으로 이민을 꿈꾸는 사람도 많습니다. 미친듯이 경쟁하고, 늘 날이 서 있고, 그렇다고 이처럼 날이 서서 미친듯이 달린다고 대단한 성과나 부가 담보되지도 않는 이런 상황이 싫다는 것 입니다. 이민을 가면 제 아무리 외국어를 잘해도 그 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처럼 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50% 표현하기도 어렵고, 한국에 있을 때는 말주변이 좋은 사람이었더라도 그곳에 가면 표현을 못하기 때문에 생각이 짧거나 없는 사람, 아동 취급 받기 쉬워 답답하다고 합니다. 한국에 있을 때 만큼의 자존감을 갖고 사는 것이 쉽지 않다고요. 그러한 이민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사소한 것에 화 내지 않고 느긋하고, 점점 그들을 닮아가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우리는 인터넷 설치 신청해서 다음 날 안 오면 불같이 화를 내는데, 보통 한 달 남짓 기다려야 하고, 뭔가 신청해도 느리고, 대신 나도 좀 느릴 수 있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물론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을 가나 1분도 쪼개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숨쉴 틈도 없이 바쁘게 일하고, 바삐 사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감사 체인을 이어가자거나 이민을 가거나 우리도 언젠가 여유로워지면 좋겠다는 것들도 하나의 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마트폰 버튼이 안 눌려서 울컥 하다가....
문득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이게 정말 화 낼 일인지... 저는 왜 이리 쉽게, 너무나 사소한 것들에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있는지....
'여유'라는 단어가 참 멀고 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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