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윈 결혼에 관한 고찰 : 40대 노처녀는 불쌍한가? 40대 노처녀에게 오지랖 떠는 심리
서른 무렵에는 서른살의 노처녀라고 걱정을 해주시더니, 이제는 미리 앞당겨서 40 먹은 노처녀라고 걱정을 해주는 분들이 계십니다. 비단 저만 걱정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30대 중반, 후반, 40대 미혼들, 특히 40대 노총각보다도 40대 노처녀의 앞날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걱정을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생면부지의 남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40대 노처녀를 불쌍히 여기시는 이유는 뭘까요?
1. 40대 노처녀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으니까
40대 노처녀는 사랑받은 적도 없고, 앞으로도 사랑받을 수 없을 것 같거든요.
"만약 정말로 예쁘고 착하고 능력있는 여자였다면 누가 채가도 벌써 채갔겠지, 40먹은 노처녀로 늙었겠느냐?"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결혼을 했겠지. 없으니까 아직 혼자겠지" 라는 것 입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누가 40대 여자를 만나냐? 젊고 예쁜 여자들이 널렸는데. 게다가 임신도 못할텐데" 라고 합니다.
40대 노처녀는 지금까지도 사랑받지 못했고, 앞으로도 사랑받을 수 없을 거라서 불쌍한 겁니다.
이토록 불쌍한 40대 노처녀 걱정을 하노라면, 많은 이들이 행복해집니다.
주부 커뮤니티에서는 40대 노처녀 걱정을 하면 '최소한 나는 한 명에게는 사랑받았으니까' 라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습니다. 설령 남편과 사이가 소원하더라도 40대 노처녀보다는 낫다 싶은 거지요.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40대 노처녀 걱정을 하면 '최소한 나는 선택할 수 있으니까' 라며 위안 삼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여자가 궁해도 40대 노처녀를 만나겠냐? ㅋㅋㅋㅋ" "40대 여자는 여자가 아니지. 줘도 안 먹어." 라며 자신의 선택에 의해 (40대) '여자'를 거절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남자는 나이를 먹더라도 어린 여자를 사귈 가능성이 있으니까, 40대 노처녀 보다는 처지가 낫다 싶은 겁니다.
사실 이것은 자신의 사랑받고 싶은 욕구,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불만을 애꿎은 40대 노처녀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어릴 떄는 부모에게, 자라면서는 친구에게, 이성에게 사랑받고 싶어합니다. 연예인을 꿈꾸는 이유도 쉽게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직업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받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가끔 누구도 날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죽고 싶기도 합니다. 연애하고 있지만, 혹은 결혼했지만 옆사람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으면 정말로 외롭습니다. 그럴 때 가장 만만한 것이 40대 노처녀였던 겁니다.
2. 결혼한 것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어서
제가 20대 후반 때 자랑거리는 "대학 나온 것"과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들이 제 뜻대로 안 되고 우울한 상황에서, 남자친구조차 없는 솔로라고 생각하니 무척 끔찍했습니다. 그래서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워도, 잘 안 맞는다는 것을 알아도 꾸역꾸역 참으며 버텼습니다. 딱히 결혼하게 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결혼할 사이" 처럼 이야기하고, "적어도 나는 결혼할 남자친구가 있다" 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으스대고 싶었거든요.
그 때는 걸핏하면 대학 가지고도 으스댔습니다. 저는 무려 4년제 대학까지 나왔어도 별 볼일 없는데, 상고 나온 친구가 저보다 2배의 월급을 받는 것이 몹시 배가 아팠거든요. 그래서 괜히 "걔는 상고 나왔잖아.." 라며 학벌로라도 깔아 뭉개려고 들었습니다. 사실 4년제 대학 나오고 별 볼 일 없는 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니,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뭐라도 빌미를 만들어 저의 취약한 자존감을 보호하고자, 유치하게 굴었던 겁니다.
결혼 하나로 사람을 찍어 누르려고 드는 사람의 심리도 똑같습니다. 다른 내세울 것이 없어서 그럽니다.
결혼한 사람에게는 결혼했다는 것이 자랑거리나 찍어 누르며 무시할 거리가 못 되니, 만만한 대상이 40대 노처녀인 것이죠.
"ㅉㅉ 저러니까 40이 되도록 결혼을 못했지.. 글쎄. 뭐 난 좋은 사람 만나 결혼은 했으니까..."
라고 하면, 40대 노처녀는 제 아무리 잘났어도 결함있는 사람이 됩니다. '저러니까 결혼을 못했다'는 말로 평가를 하면, 40대 노처녀에 비해 결혼한 사람은 성격도 좋고, 여러 모로 매력적인 사람인 듯한 느낌이 듭니다. 어쩄거나 결혼은 했으니까요.
결혼한 것 말고는 한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우울할 때, 40대 노처녀를 찾으면 됩니다. 적어도 '저래서 결혼도 못한' 40대 노처녀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면, 집나간 자존감을 약간 회복할 수 있습니다.
3. 경주처럼 경쟁하는 인생이 힘들어서
한국은 빠른 것을 좋아합니다. 빨리 대학가고, 빨리 대학 졸업해야 하고, 빨리 입사하고, 빨리 결혼하고, 빨리 자리잡고, 빨리 애 낳아서, 빨리 애 다 키우고, 빨리 애 결혼 시키고, 빨리 노후를 즐기려 합니다. 더불어 '남보다' 빨리 차사고, 빨리 집사고, 빨리 돈 모으고, 빨리 해외여행 다니고, 빨리 좋은 것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남들보다 빨리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경주를 해보고, 대학에서 학점 잘 받으려고 경주하고, 좋은 곳에
취직하려고 경주를 해봐도 이 경주가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숨가쁜 뜀박질이 끝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더욱이
최근의 금수저, 흙수저 상황으로 비춰보면 나는 출발선에서 성실히 뛰어 왔지만 아직 절반도 못 왔는데, 금수저 놈들은 반칙으로
중간부터 뛰기 시작해서 저 앞에 달리고 있습니다. 정말 맥 빠지지요.
특히 같은 나이인데, 레이스에서 성큼 앞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우울합니다. 같은 나이인데 친구는 과장에 결혼해서 아이도 중학교 보내는데, 나는 이제 대리달고 아이가 세 살 밖에 안 되었다거나... 열심히 살았는데, 또래에 비해 쳐지는 것 같을 때 만만한 것이 40대 노처녀 입니다.
40대 노처녀면 결혼할 남자도 없겠지만, 설령 결혼을 한다고 해도 인생 레이스에 너무 늦게 진입하는 겁니다.
40대 노처녀가 결혼해서 임신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애를 낳는다 해도 아이 대학 갈 때 쯤이면 환갑이 넘습니다. 자녀도 그녀처럼 노혼을 한다면 자녀 결혼식에 혼주로 앉아있을 때가 80이 넘을 수도 있습니다. 어휴.... 남의 인생이지만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옵니다.
40먹은 노처녀의 앞날을 걱정하노라면, 그래도 내가 낫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설령 30대 후반에 결혼해서 이제 신생아가 있다해도 40대 노처녀 보다는 덜 갑갑한 상황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가설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미지 작업을 합니다.
40대 노처녀는 오크녀이며, 드세고, 독하고, 성격 이상하고, 속물이고, 늙어서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꾸며도 테도 안 나고, 임신도 못하고... 여자도 아니고... 등등의 이미지를 덧 입힙니다. 40대 노처녀가 한고은처럼 예쁘고 세련된 이미지이면 위의 모든 가설이 어그러지니까요. '40대 여자 임신 불가능'이 끼어 들어가는 이유는 40대 미혼남은 어린 여자와 결혼하면 2세를 남길 수 있지만, 40대 여자는 결혼을 해도 아이를 못 낳을거라서 진짜 불쌍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뭐 여자도 아니고, 못생긴 슈렉 전사쯤 된다고 해야 될까요...
이토록 불쌍한 40대 노처녀를 걱정하노라면, 자신은 적어도 그보다는 좀 낫다라는 값싼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만,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과 심리적 결핍을 엄한 곳에 투사하는 사람 중, 누가 더 불쌍한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30대 남자가 여자에게 적극적으로 매달리지 않는 이유
'연애심리 > 결혼에 관한 고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혼 생각만해도 심란해지는, 결혼식 걱정 3가지 (9) | 2016.03.29 |
---|---|
존버시대, 30대 싱글이 어쩌다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을까? (6) | 2015.12.17 |
퇴근후 게임만 하는 남편, 그 남자의 심리 (39) | 2015.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