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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주는 상실감

· 댓글개 · 라라윈
올 봄..이라고 하긴 아주 늦은, 초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식물들을 여러 개 샀습니다.
고추, 토마토 모종, 잘 안죽으면서 공기를 정화시켜준다는 화분들을 샀습니다. 화분이 많으면 건강에도 좋고, 직접 키워서 먹는 진정 유기농 채소를 먹을 수 있다는 설레임에서 였습니다.

아침은 못먹고 출근해도 매일같이 화분에 물은 주었고, 집을 비우더라도 화분에 물 만큼은 상당히 신경을 썼었습니다..
그렇게 애지중지 하던 식물들이 날이 추워져서 이렇게 말라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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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의 고추들은 벌써 잎이 말라 죽어버린 것에 비하면 오래 버틴 셈이지만, 그래도  쓸쓸한 기분이 듭니다. 1년밖에 못 가는 식물들이 시간이 다 되어 말라서 죽어가는 것을 보니, 사람의 인생사도 똑같다는 생각과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에 대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저 화단을 만들 때 생각이 나서 추억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장을 보러 갔다가 고추와 토마토 모종을 파는 것을 보고 덥썩 사왔습니다. 사오고 보니 심을 곳이 없기에 '화분 사서 심어야지' 하다가 며칠을 방치해 두었었습니다.
조그만 모종판에서 견디기가 어려웠던지 모종들이 시들시들해져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마트에 가보니 마땅히 큰 화분을 팔지 않아서 급한대로 스티로폼 박스에 심기로 했습니다.

때마침 집에 오는 길에 어떤 분이 사과박스를 버려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얼른 주워와 박박 닦고, 속에 스티로폼을 넣어 화분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는데, 아차! 흙이 없는 것이었습니다..ㅡㅡ;;
더 이상 방치하면 사온 모종이 시들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밤중에 흙을 구하러 나섰습니다. 집 근처에 동산 같은 것이 있었거든요..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흙을 파러 가야하니, 모자가 달린 트렌치 코트를 입고,  그 곳에 가서 열심히 땅을 팠습니다.. 열심히 땅을 파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절 보며 흠칫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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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생각해보니 제 꼴이 얼마나 우습고 무서웠을까 싶었습니다.
컴컴한 남색의 모자달린 코트를 입고, 비가오니 모자는 뒤집어 쓰고 쭈그리고 앉아 흙을 파고 있었으니.. 그것도 꽃삽이 없어 손으로 열심히 파고 있었습니다..
절 보시는 분들이 뭐라 생각했을지.. ㅜㅜ

아뭏든 험난하게 흙을 구해와서  저 화단을 만들었었습니다. 그 뒤로 사과박스가 나오지 않아 스티로폼에 심어진 아이들은 아직도 저 스티로폼 집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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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는 고추를 보며 상념에 젖어 있는데, 다행히 아직도 생생한 쑥갓이 저를 기쁘게 해 줍니다. 예전에 집 마당에 쑥갓을 키워보니, 눈을 맞고도 살아있고 자라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아주 생명력이 강한 종인 것 같습니다.

식물과 애완동물들. 기르고 잘 자라는 동안의 기쁨만큼이나 상실의 슬픔도 주는 것 같습니다.
내년 봄에 새로운 모종으로 저 자리를 채워주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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