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아침시간에 지하철을 탔습니다. 나름대로 아침일찍 부지런히 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지하철에는 승객들로 한가득이었습니다. 운좋게 자리가 나서 앉았는데, 맞은편에서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
한 여자분이 열심히 화장을 하고 있고, 옆에 있던 승객들은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 입니다.
보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고, 그 여자분은 베이스 메이크업부터 시작해서 눈을 뒤집어 까며 뷰러로 집어 올리고, 게슴츠레한 표정으로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를 바르고, 눈두덩에 섀도를 칠하고.... 한 과정도 빼먹지 않고 아주 꼼꼼하게 화장을 하였습니다. 그 모습에 고무되었는지 제 옆자리에 앉아계시던 여자분도 화장품을 주섬주섬 꺼냅니다. 우선 온 몸에 허옇게 자외선 차단제를 펴바르더니, 뒤이어 파운데이션과 베이스를 펴바르며 화장을 시작합니다. 인터넷에서 흔히 보이는 '화장 전 후'를 바로 앞에서 재현해주고 있었습니다.
왜 지하철에서 화장을 할까?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시는 분들은 왜 그럴까 혼자 궁리를 해 보았습니다.
1. 바빠서, 시간때문에
우선, 가장 큰 이유는 바빠서겠지요.
시간이 없어서, 또는 지하철에서의 버리는 출근시간이 아까워 나름의 시간분배인지도 모릅니다.
2. 지하철 속 군중들에게 보이는 이미지보다, 회사에서 이미지가 중요해서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는 분들에게는 지하철에서 만나게 되는 군중들은 이미지 관리가 필요없는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지하철에서 누굴 만날 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못할 듯...) 대신 출근하자마자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할 사람이라 여기는 것 같습니다.
화장을 하지 않고 출근을 하면 자기관리를 못하는 사람으로 본다거나, 예의없이 보는 분위기라거나.. 지하철 속 사람들의 눈치보다 회사의 눈치가 더 보여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출근하자마자 고객을 대해야 하는 업무라거나, 자신이 상사라서 부하직원들 앞에서 이미지 관리를 해야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3. 별 이유는 없이 습관이라서
무슨 일이든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습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화장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무척 부끄러웠을텐데, 제가 본 몇몇 분들은 이미 생활이자 습관이 되신 것 같았습니다.
한 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듯, 지하철 속에서도 졸업사진이나 결혼식에나 할 법한 풀 메이크업을 아주 여유롭게 하시는 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여유롭게 얼굴윤곽 다 정리하고, 속눈썹도 붙이고, 눈두덩이에 단계별 아이섀도로 색조화장을 하고..... 처음에는 정말 바빠서, 어쩔 수 없어서 지하철에서 화장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그것이 습관이 되어 버리신 것 같았습니다.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는 것의 장단점
■ 장점
시간관리와 배분의 측면에서 보면, 바쁜 아침 출근시간을 쪼개어 출근길에 밥을 먹고 화장을 하는 것은 아주 효율적입니다. 보통 화장을 하는데 5분~1시간 정도 걸리는데, 집에서 하려면 그만큼 빨리 일어나야 하지만, 지하철 안에서 하게 되면 그만큼 더 잘 수도 있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 단점
1.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으면 화장을 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운 나쁘게 자리에 앉지 못하거나, 사람이 너무 많이 낑겨있어 화장품을 꺼낼 여건이 안 될 경우 낭패일 수 있습니다. 화장품 파우치 꺼낼 공간조차 없는 콩나물 시루같은 지하철에 끼어있으면, 화장을 못 할 수도 있습니다.
2. 화장이 엉망이 될 수도 있다.
어지간한 고수가 아니면 화장의 결과물이 우울합니다. 급하게 화장을 하다보니 화장은 들떠서 잘 먹지 않고, 눈썹이나 섀도, 아이라인이 짝짝이가 되고 조금씩 떨려있기 쉽상입니다.
3. 화장을 하는 중간과정이 흉하다.
화장을 하는 과정은 그다지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얼굴에 초록색 메이크업 베이스를 찍어바르며 허옇게 얼굴이 둥둥 떠 있는 상태는 상당히 무섭습니다. 그 위에 눈썹이 생겨나고, 아이라인 그릴 때 보면 갑자기 작던 눈이 커지는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마스카라 바른다고 눈을 뒤집을 때는 흰자만 보이는 눈동자가 공포스럽습니다. (귀신 보는 듯한..ㅡㅡ;;)
4. 지하철에서 중요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지하철에서 누구를 만날 지 모릅니다.
만약 옆자리에서 한심한 듯이 쳐다보던 아저씨가 자신에게 큰 이득을 줄 손님으로 온다면...?
기억 못하시면 다행이겠지만, 아침에 지하철에서 본 한심한 그 여자라고 생각한다면 맡길 일도 안 맡길지도 모릅니다.
지하철에서 열심히 화장하는 모습을 상사가 봤다면? .....................
5. 자기관리를 못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바쁜 아침시간에 쫓기면 저럴 수도 있다고 이해를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그 모습이 멋져보이지는 않습니다. 지각한 사람이 차가 막혀서 어쩔 수 없이 10분 늦었다고 할 때,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차가 막힐 수도 있으니 10분 먼저 나왔으면 되잖아." 하는 심정이랄까요...
우연히 그 날 하루만 늦어서 지하철에서 화장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게으르고 허둥지둥대는 사람같다는 인상을 주는 것 같습니다.
선택은 개인의 자유이고, 상황이 어쩔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지하철에서의 화장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큰 것 같습니다. ㅜㅜ
- 치마입고 계단올라갈 때 가방으로 가리는 여자, 불쾌해?
- 남자가 싫어하는 여자 패션 1위로 매년 검정 쫄바지 레깅스가 꼽히는 이유
- 지하철에서 여자의 피해의식이 큰 이유는?
'생활철학 > 생각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쁘고 피곤한 것은 내 생각때문? (47) | 2009.09.07 |
---|---|
좋은일이라도, 기부 강요는 부담스러워 (59) | 2009.08.20 |
이사할 때면 늘 찾아오는 후유증 (62) | 2009.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