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 화분에 생긴 벌집
올해는 옥상에 텃밭을 만들었습니다. 옥상에 허브와 쌈채소를 키우면 엄청 잘 자란다는 소문을 듣고, 여름 내내 실컷 먹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면서 바질, 애플민트, 루꼴라, 겨자채, 청경채 등을 심었습니다. 옥상 텃밭에 씨를 뿌렸더니 며칠 만에 싹이 나고, 불과 한 달이 지나기 전에 멋지게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쑥쑥 자라난 저의 식용작물들은 꽃도 금세 피웠습니다.
옥상 텃밭이 꽃밭이 되었어요. 청경채꽃, 겨자채꽃, 바질꽃, 애플민트 꽃이 참 예쁘고 신기했으나, 식용작물로 먹으려고 키운 상황이라 당황스러웠습니다. 꽃대가 올라오고 꽃이 피기 시작하면 더 이상 풀을 뜯어먹기 힘들어지더라고요. 조금이라도 더 뜯어 먹을 생각에 꽃대가 올라오면 따 내기도 했는데, 제가 따는 속도보다 더 빨리 꽃대가 쭉쭉 올라와 꽃을 피웠습니다.
꽃이 너무 예쁘고, 어떻게든 꽃을 피우려는 생명력을 보니 따 내는 것도 미안해졌습니다. 식용작물 재배는 포기하고, 꽃 잘 피우게 물만 열심히 줬습니다. 그랬더니 옥상에 벌과 여러 벌레들이 날아들었습니다.
하루는 벌새로 추정되는 엄청나게 빠른 날개짓을 하는 (정말 날개가 안 보였어요) 작은 새도 날아와서 꽃에서 꿀을 빨고 있었습니다. 몇 달 전 꽃이 사라져 벌들이 꿀을 모을 곳이 없고, 벌이 사라지는 것은 지구에 좋지 않은 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옥상 꽃밭에서 꿀을 따는 벌들을 보니, 짠한 마음이 들어 계속 꿀을 따 가도록 꽃을 키웠습니다.
시들어가는 꽃밭에 생긴 벌집
무더위, 태풍 등을 지나며 옥상 꽃밭의 꽃들이 졌습니다. 꽃이 지고 잎이 떨어지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엄청난 것이 보였습니다.
가장 늦게까지 꽃이 많이 피어있던 바질 꽃대에 벌집이 생겨 있었습니다. 어쩐지 벌이 많더니....
현실 벌집을 처음 봐서 처음에는 신기하고 무서웠습니다. 왜 하필 제 텃밭에 생겼는지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오죽 꽃이 없으면 자그마한 옥상 텃밭에 벌집을 짓게 되었을지 짠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벌집을 키워 꿀을 따 먹어야겠다는 야심찬 생각도 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강제 양봉이 시작되었는데, 벌집에서 꿀 따먹겠다는 저의 야심찬 계획과 달리 벌집이 커지는 속도가 너무 느렸습니다. 주먹만한 벌집은 한 달이 지나도 주먹만한 상태였습니다.
올해는 가을에 태풍이 여러 차례 왔는데, 벌집이 성가셔 없애고 싶다가도 태풍이 오면 걱정이 되었습니다. 태풍 오는 날 벌들이 무사한지 나가보니, 벌들은 벌집 아래에서 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벌집 위에 촘촘히 붙어 자기들의 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쏟아지는 폭우를 고스란히 맞으면서요. 더 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태풍까지 몇 차례 지나가자, 그나마 몇 송이 남아있던 바질 꽃마저 떨어졌습니다. 꽃이 없어지니 멀리 찾으러 다니는지 벌집의 벌이 줄어 들었습니다.
저는 원래 벌레 공포가 심한데, 이 벌들을 지켜보노라니 공포가 좀 줄어들었습니다. 무섭지만 짠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요. 꽃이 다 진 뒤로는 걱정이 되길래 설탕물을 타다 주었습니다. 저는 벌들 먹으라고 가져다 주었는데 설탕물을 화분에 얹어주었더니 어디선가 나타난 개미 행렬이 열심히 먹고 있었습니다. 벌 키울 때 꽃 없는 계절에는 굶지 않게 설탕물 타준다던데, 이렇게 주는게 아닌가 봅니다. 설탕물을 타 주어봤지만, 벌들은 어디론가 멀리 꽃을 찾아다니는지 벌집이 비기 시작했습니다. 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을 때는 무섭더니, 막상 벌들이 떠나고 벌집이 비어도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벌들은 어디를 떠 돌고 있을까요. 오늘은 비도 많이 왔는데...
자매품. 위풍당당 사마귀
강제 입주한 벌들 덕분에 벌레 공포가 좀 줄자, 주변 벌레에도 약간의 관심이 생겼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빌라와 지하철이 있는 곳임에도 서울에 비해서는 벌레 종류가 참 다채롭습니다. 꽃 이름 못지않게 벌레 이름도 까막눈이라 저는 대충 씨꺼멓고 펄쩍 뛰어올라 저에게 달라붙어 비호감인 것은 메뚜기, 여리여리하면서 사람보면 무서워하면서 얼어붙는 연두색 벌레는 여치, 싸움 잘하게 생긴 등치 큰 애는 사마귀 등으로 구분해 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사마귀로 추정되는 등치 큰 녀석을 봤는데, 정말 싸움 잘하게 생겼습니다. 메뚜기, 여치, 사마귀가 비슷비슷한 것인줄 알았는데 사마귀로 추정되는 녀석이 등치가 월등했어요.
예전에는 벌레 사진을 보는 것도 무섭고, 제 사진첩에 벌레 사진이 있는 것도 싫었는데, 이제는 벌집 때문에 벌레 사진을 찍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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