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청와대 집회 시위 광경
청와대 사랑채를 구경하고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방면으로 나오는데, 전경들이 도열해 있었습니다. 원래 이러는 것인지 청와대 앞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궁금해 기웃거리는데 경찰 앞에는 택시등을 모자처럼 만들어 쓰신 분, 뭔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서 계시는 분들이 있고, 방송국 카메라들이 여러 대 있었습니다. 무슨 집회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침 집회 행렬이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까지 도착하는 때였나 봅니다.
집회 행렬을 보니, 촛불집회 때 청운효자동 주민센터까지 가보겠다며 형제슈퍼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촛불집회 한 주 한 주 지나면서 조금씩 폴리스라인이 뒤로 물러서며 청와대에 가까워지는 것이 큰 성과 중 하나였습니다. 그 때 집회로 청운효자동주민센터 근처까지 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는데....
촛불집회의 추억에 잠기며 보고 있노라니, 코 앞에 선두차량이 다가 왔습니다. 청와대 앞에 택시모자 쓰고 주위 분들과 유쾌하게 이야기 나누던 분이 계시더니, 타다 서비스 폐지하라는 택시업계 시위인 듯 했습니다. 택시업계 파업과 분신자살을 보면, 여러 감정이 교차합니다.
친구의 아버지가 택시 운전 하시고, 내 친구의 아버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가족인 사람인데 생계를 위해 일을 포기하고 집회를 하러 나왔다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승객 입장에서 보자면 기본요금이 올랐지만 택시 서비스도 요금만큼 좋아진 부분은 별로 없어서, 타다 서비스에 대적할만한 서비스 개선을 하려는 노력은 안하고 타다같은 신생 경쟁업체를 없애버리는 쉬운 방법만 찾는 것 같아 못마땅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간에 자신의 입장을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집회를 하지 않았다면 택시기사님들이 어떤 입장일지 관심도 없었을텐데, 집회를 보면서 한 번은 생각해보게 되니까요.
청와대 앞까지 경찰 에스코트?
청와대 앞에 도열하고 있던 전경들도 화기애애, 앞에 계시던 택시모자 쓴 아저씨와 일행도 화기애애 하더니, 이 행렬도 분위기가 묘했습니다.
경찰이 차도 쪽에서 몸빵을 하며 에스코트를 하고 있었어요. 앞에서 뒤에서 계속 경찰이 교통통제해서 안전하게 사람들이 집회할 수 있도록 도로를 막아주고 있었고요. 집회 옆에 줄지어 따라가는 경찰들이 쪼금 힘들어 보이긴 했으나, 대치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에스코트' 분위기 였습니다.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 도착했으니, 행렬이 여기서 멈출 줄 알았습니다. 촛불집회에서 가 보았던 청와대에서 제일 가까운 곳이 거기였거든요. 그런데 이 행렬은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청와대 앞으로 쑤욱 들어갔습니다.
자연스럽게 청와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응???? 청와대 바로 앞까지 시위 행렬이 진격해도 되는 거였나요?
게다가 사안은 심각하지만, 참여하는 분들과 경찰 분위기 뭐 이리 훈훈한가요? 경찰이 집회 에스코트를 해서 청와대 정문까지 함께 행진하는 장면은 문화충격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청와대 앞에서는 2층 관광버스가 나왔습니다. 저 버스도 청와대 앞에 지나다녀도 되나 봅니다.
과거에는 청운효자동 쪽에서 연무대 쪽은 아예 일반인 출입금지였는데, 관광버스가 다니고, 경찰이 에스코트해서 집회 행진을 하는 장면을 보자 나라가 달라졌다는 것이 실감이 났습니다.
학교 가는 지름길이 청와대 관통해서 가는 것이라 이 길을 10여년 넘게 지나다녔거든요. 촛불집회 때처럼 철옹성 모드가 아니었더라도 이 근처를 이렇게 막 다닐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놀랐어요.
청와대 앞 집회 못했던 이유는 집시법 때문?
촛불집회 때는 왜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할 수 없었던 걸까요? 궁금해서 찾아보니 집회및 시위에 관한 법률 (집시법) 11조와 12조에 근거한 것이라고 합니다. 집시법 조항을 찾아보니 국회의사당, 법원, 헌법재판소,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 국무총리 공관 주변 100m 이내에서는 집회 및 시위를 하면 안 되게 법에 정해져 있었대요. 교통 소통을 위한 제한으로 경찰서장이 교통질서 유지를 이유로 들어 집회를 못하게 할 수도 있었고요.
아래에 파란색 조항이 붙어 있는 것을 보니, 수 많은 분들이 헌법소원 내고 항의한 결과, 국회의사당, 법원, 국무총리 공관 앞 시위 금지는 없어진 듯 합니다. (법률조항 적혀 있는 것이 난해해,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네요)
이에 대해 박주민 의원 등 여러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합니다. (1) 국회, 국무총리공관 등 삭제(이건 헌법재판소 위헌 판결로 된거 같네요) (2) 청와대 등의 집회 금지 구역 100m 조항을 30m로 축소 (3) 청와대 앞이라도 해당기관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등 예외의 경우 집회 최대한 보장 (4)교통소통을 이유로 경찰이 집회 금지하는 근거 삭제 (5) 교통소통에 필요한 최소한도에서 집회 또는 시위 주최자와 협의해 질서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이는 것만 가능하게 하자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개정안이 '발의'되었다는 이야기만 있고, 통과되었다는 기사는 없는 것을 보니 여전히 언제든 예전처럼 "교통에 방해되니 집회 하지 마" 라고 하면 집회 못하고, "청와대 앞에 오지 마" 라고 하면 못 가는 것 같아 보입니다.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평화롭게 집회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는데, 이것이 법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관계자의 철학, 경찰서장의 철학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직 감탄하고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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