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MT 갔다오는 길에 만난 담임선생님

대학 입학할 때 참 MT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학교 차원에서 콘도에 전교생을 몰아넣어두던 대규모 행사도 있었던 것 같고, 단과대별 MT도 있고, 과 별 MT도 있고, 동아리별 MT도 있습니다. 모두 따라다니다 보면 멤버쉽도 돈독해지고, 두터워진 우정만큼 간과 위는 얇아져갑니다.
특히 과 친구들과 가는 엠티는 학교나 단과대 차원에서 지원도 되고, 행사도 있는 엠티와는 달리, 가난한 학생들이 돈을 걷어서 가다보니 빈곤의 극을 달렸습니다. 
장소도 콘도가 아닌 우이동의 가장 싼 방 (정말 방 한칸에 화장실만 하나 있던...)이었고, 먹을거라고는 소주 잔뜩에 레몬가루 한 통, 그리고 과자 부스러기가 전부였습니다.



술을 잘 못먹는 여자아이들이 태반이라서 기껏 배려하고 머리쓴 것이 레몬가루였습니다. 
술집에서 파는 레몬소주를 직접 조제하겠다는 취지였던 거죠. 물과 레몬가루를 적당히 섞어서 소주와 섞자, 맛이 제법 그럴 듯 했습니다. 술을 못 먹는 사람이 마셔도 새콤달콤 한 것이 입에 달라붙었습니다.
소주 한 병과 약간의 레몬가루, 물이면 금세 술 여러 병이 생산되었습니다.

"이래서 물 장사가 남는 장사인가봐.. 술집에서 레몬소주 엄청 비싼데 만드니까 완전 싸~"
하면서 알뜰함에 감탄하고,
"이거 레몬주스같아. 맛있다.."
하면서 맛에도 감탄하고....

그렇게 대동단결하여 우리가 만든 레몬소주에 자뻑하다보니 점점 취해갔습니다.
달콤한 술일수록 한 방에 훅 간다는 말을 실감하듯, 평소 소주를 못 먹던 아이들이 레몬가루를 덧 입힌 소주를 홀짝이다 보니 금세 취해버렸습니다. 게다가 저녁도 못 먹고, 변변찮은 안주도 없이 빈 속과 다름 없는 상태에서 마셨으니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술에 취하니 우는 아이도 있고, 한 말 또 하고 또 하는 아이도 있고, 토하기 시작하는 아이도 있고....
저도 뭘했나 기억도 안 납니다... ㅡㅡ;;;
그렇게 비몽사몽이던 밤이 가고, 아침이 되자 대부분 속이 미식거려서 잠을 못 자고 깼습니다.
그러나 역시 아침이라고 해서 컵라면 국물 한 모금이 없습니다. 살 길은 모두 집으로 빨리 가는 방법 뿐이라서 아침이슬을 맞으며 엠티장소에서 나와 집으로 갔습니다. 우이동이라서 다들 버스를 타고 갔는데, 우이동 종점 옆의 8번 버스를 타고 무슨 정신에서 왔는지 졸며 깨며 하다가 간신히 유진상가까지는 도착을 했습니다.
제 정신이 아니어서 버스정류장에 한참을 주저 앉아있다가  도와줄 사람도 없고, 그렇게 있다가 죽을 것 같아서 집으로 가기 위해 마지막 정신력을 짜냈습니다. 마침 집으로 가는 버스가 왔습니다. 유진상가에서 5정거장만 가면 집인데, 살 것 같았습니다. 안간힘을 다해 버스에 올라타서 내리는 문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 뒤로 다른 승객들이 타고 있었는데, 저는 그 사이에 또 정신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술이 원수..)
그런데 그 사이 누군가 오더니 제 손을 잡습니다.
취했다고 치한이라도 다가온 것은 아닌가 싶어 화들짝 놀라 쳐다보니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입니다. (지난 달에 제가 만나러 갔던 16년 뒤에 만나자고 약속했던 그 선생님) 너무 놀라고 취한 티가 확 나는 제 꼴이 부끄러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뭐라고 하십니다. (훈계는 싫은데...ㅜ)

"하느님 아버지, 이 불쌍한 어린양을 굽어 살피시어.... "

헉...ㅡㅡ;;;;;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선생님은 타락한(?) 첫 엠티에서 술 잔뜩 퍼먹고 정신 못차리고 있는 제자를 위해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을 만난 것도 창피했지만, 사람 많은 버스에서 제 손을 꼭 잡고 기도를 하시는 것은 더 창피했습니다. ㅜㅜ
게다가 중학교는 저희 집을 지나 올라가는 것이라서, 함께 내려서 선생님과 집까지 함께 가는 난감한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그 뒤로는 엠티가서 주량도 모른 채 정신못차리도록 술을 먹지 않게 되었고, 엠티갔다 아침에 올 때, 선생님들 출근시간과 맞딱드리지 않도록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ㅡㅡ;;

<그래도 잼있는 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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