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건국이 코앞으로 다가옴으로 인해 산고에 가까운 고통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조영의 중추인물들이 하나씩 죽고, 대의를 위해 죽어가는 그 마음들에 더욱 눈물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벌써 128회, 매주 2편씩 하였으니 2년이나 되는 긴 시간동안 한 드라마가 긴 호흡으로 하지만 탄탄한 이야기로 전달되고 있다.
처음 발해라는 나라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이라는 노래를 통해 '발해 대조영'을 알았고, 서태지의 '발해를 꿈꾸며' 를 통해 더욱 친숙해진 국가였다. 국사책에서도 그리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지 않고 넘어갔기에 발해의 건국이나 발해의 역사에 대해서는 상당히 무지하였다.
중국의 역사왜곡이나 여러 문제로 발해사가 부각되고 있고, 드라마의 인기로 역사적 진위문제가 거론되니 이 드라마가 어디까지가 실제인가가 상당히 궁금해 졌다.
실제 역사책을 찾아보니, 고구려가 망하고 대조영이 영주에 있다가 걸사비우와 힘을 합쳐 당에 대항하다가 천문령에서 당과의 싸움에 승리하고 동모산 자락에 건국을 한다고 되어 있었다.
668년 고구려가 망한 후, 고구려 유민들은 산산이 흩어지게 되었다. 당(唐)은 고구려 유민 2만 8000여 가호를 중국 땅으로 강제 이주시켰는데, 이때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大祚榮:뒤의 고왕)도 그의 아버지 대중상(걸걸중상(乞乞仲象))과 함께 요서지방의 영주(營州:조양)로 옮겼다.
당시 영주는 당이 북동방의 이민족을 제어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운영한 전략도시였다. 그러던 중 마침 거란족 출신 이진충(李盡忠)이 측천무후(則天武后)가 통치하던 당(唐)에 반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켰다(696). 결국 1년여 만에 진압이 되긴 하였으나, 당은 돌궐의 힘을 빌어 난을 진압하는 등 상당히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혼란기를 틈타 고구려 출신인 대조영(大祚榮)이 유민들을 규합하고 말갈 세력(걸사비우 乞四比羽)과 손을 잡고 당에 반기를 들었다. 당나라군의 추격으로 걸사비우가 죽자 말갈족까지 흡수하여 세를 불리면서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대조영은 공격해오는 이해고(李楷固)의 당군을 천문령(天門嶺)싸움에서 격파하고 당의 세력권에서 벗어나 남만주 지역에 위치한 동모산(東牟山, 지금의 육정산/六頂山, 길림성 돈화성 부근)에 정착하여 성을 쌓았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개국하고, 국호를 진(震), 연호를 천통(天統)이라 하였다.
대조영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두고 실존인물이나 허구냐 하는 많은 의견이 있고, 상당히 궁금했다. 확실히 확인되는 바는 설인귀, 이해고, 걸사비우등의 족장이나 군의 수장을 맡았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흑수돌, 계필사문 등은 확인이 어렵다. 일부에서는 허구의 인물이라는 설도 있고, 발해사가 자료가 부족하고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은 부분도 많은데다 중국사에서 기록하는 책들도 많이 있어 그들이 실존하였다고 하는 입장들도 있다.당시 영주는 당이 북동방의 이민족을 제어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운영한 전략도시였다. 그러던 중 마침 거란족 출신 이진충(李盡忠)이 측천무후(則天武后)가 통치하던 당(唐)에 반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켰다(696). 결국 1년여 만에 진압이 되긴 하였으나, 당은 돌궐의 힘을 빌어 난을 진압하는 등 상당히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혼란기를 틈타 고구려 출신인 대조영(大祚榮)이 유민들을 규합하고 말갈 세력(걸사비우 乞四比羽)과 손을 잡고 당에 반기를 들었다. 당나라군의 추격으로 걸사비우가 죽자 말갈족까지 흡수하여 세를 불리면서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대조영은 공격해오는 이해고(李楷固)의 당군을 천문령(天門嶺)싸움에서 격파하고 당의 세력권에서 벗어나 남만주 지역에 위치한 동모산(東牟山, 지금의 육정산/六頂山, 길림성 돈화성 부근)에 정착하여 성을 쌓았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개국하고, 국호를 진(震), 연호를 천통(天統)이라 하였다.
발해(진)는 대조영이 국가를 세웠으나, 만주지방에 혼거하던 말갈족도 함께 포용하여, 일반적으로 고구려 유족이 주로 상류 지배층을 형성하였고, 말갈족이 하류층을 형성하였다. 대조영은 북서쪽의 거란이나 돌궐족의 성장으로 요서지방이 막혀 당의 방해를 받지 않고 발해를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었다. 당도 결국 진국의 자립을 인정하고 외교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당은 713년에 발해에 사신을 파견하여 대조영을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호칭(봉)하여, 그 후부터 발해국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확인된 몇 몇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숙영은 조선상고사에서 보장왕의 조카로 분명히 밝히고 있고 발해의 첫 황후로 대문예의 어머니가 맞다고 한다.
미모사도 기록이 확실히 남아있다고 하며, 설계두도 실존임물로 여러 설이 있다고 한다. 극중에서는 이해고의 심복으로 나오는데, 할아버지가 신라인으로 후에 이해고가 설계두를 버리고 대조영이 설계두를 거두어들여 발해를 개국하고 세작들을 키우는 첩보전의 1인자 장군이 된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확실한 허구의 인물은 초린과 금란이라고 한다.
초린은 대조영과 이해고를 대립시키며 극 초반과 지금의 다양한 구도를 이끌어 가는 중심인물이다. 아마도 초린이 없었다면 대조영의 사랑과 인연에 대한 이야기는 절반으로 줄어들어 드라마의 극적인 재미는 상당히 떨어졌을 것 같다. 금란의 경우도 마찬가지. 실제 걸사비우에게는 여걸 아내가 있었다고 하니 조금은 걸사비우의 이상형(?)도 반영이 된 셈이다.
아마도 발해사에 대한 자료가 적은데다가 건국과정의 내용에 역사적인 내용에서는 여성에 대한 기록은 적기 때문에 이렇게 여성 인물들을 더 만들어 내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또는 영화 <궁녀>의 경우도 숙종시절의 장희빈에 대한 야사를 바탕으로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그와 같이 발해사의 야사와 같은 부분을 참작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전해지는 말로는 극이 136회 정도면 끝이 날 것이라 하니 이제 10여회를 남겨두고 있는 셈이다. 이해고와 초린이 동반 자살을 하고, 검이가 2대왕이 된다는 등, 다양한 추측들이 있는데, 극의 결말은 작가만이 알 일 인것 같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확실한 결말은 발해가 건국되고 대조영이 왕이 된다는 것 뿐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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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카르노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글달기
좋은 글 잘 봤어요^^ 결론은 정말 작가만 알겠죠^^ 대조영 방송이 10회 정도 남았다니 아쉽네요.
⎿ 라라윈 답글주소 수정/삭제답글달기
2년동안 열심히 보다보니.. 진짜 역사는 어떤지 궁금해서요. 사실 초린과 금란도 실제 역사에도 등장하는 줄 알고 보고 있었는데... 오히려 아쉽기도 합니다..:)
약간 연장된다는 말도 있던데.. 드라마가 전개도 빠르고, 한 시간 한 시간이 짦다 느끼며 보고 있는데 좀 더 했음 하는 바램입니다..:)
이훈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글달기
당나라 이 적(본명은 이 세적. 당나라 태종의 이름이 이 세민 이므로 <세 世>를 피해 이 적으로 불림)의 사촌으로 나오는 이 문이란 장수도 허구 입니다. 그리고 초린의 아들이 발해 2대 무왕으로 나오는데요...그러면 무왕의 피에 거란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겁니까? 이건 말도 안되는 설정 입니다. 또한,이 해고와 설 인귀는 그리 대단한 장수는 못됩니다. 드라마 한계상 이들이 뭐 대단한것 같은 인물로 나오는데 그런 인물들이 못됩니다. 또,이 문이 대 조영을 노예수용소로 보내 그곳에서 대 조영을 들들 볶는데 이것도 모두 허구이며, 인간사냥(유치해서...)이란것도 모두 허구 입니다. 그리고,측천무후가 당나라를 대신해 여황제로 제위에 오르는데요..드라마를 쓴 작가는 역사적인 지식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측천무후는 제위에 오르자 당(唐)에서 국호를 주(周,691~705. 705년에 측천무후가 죽자 당으로 복귀됨)로 바꿉니다. 그런데 보니까 우리 당나라..우리 당나라...라고 계속 그러더군요. 우리 주나라... 이렇게 해야죠. 그리고,683년에 죽은 설 인귀가 왜 나옵니까? 뭐,이 덕화씨의 배역이 만만치 않아서 이런 설정을 한것 같은데...조금 황당 하더군요. 그리고,동명천제단 이란것도 허구 입니다. 당시 안동도호부에는 2만명의 당나라 군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고작 세명만이 당나라 군사들을 물리치고 고구려 유민들을 빼돌렸다는 둥....안동도호부 담을 넘어 들어가 당나라 군사들을 죽였다는 둥...이렇게 나오더군요. 보장태왕이 요동도 조선군왕으로 파견돼 고구려 부흥을 꿈꿨다는것은 사실이나 동명천제단이란 조직을 이끌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또,묵철가한이 대 조영을 도운것은 사실이나,귀부산의 포로수용소(귀부산 포로수용소 자체가 원래 허구)에 있었다는것은 허구 입니다. 또,드라마를 보면 이 해고와 이 진충,손 만영이 설 인귀 옆에 찰싹 붙어 무슨 설 인귀의 부하마냥 나오는데,이 설정도 허구 입니다. 또,드라마를 보면 주인공 대 조영이 주도하고 있는데요. 역사기록에는 대 중상 장군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대 조영은 그 아버지 밑에서 일을 도왔다고 볼수있죠. 그리고, 또 걸사비우가 대 조영의 아우로 나오는데요(작가는 삼국지연의를 너무 많이 본것 같아요...). 사실,걸사비우는 대 중상과 거의 같은 연배 입니다. 이것도 허구지요. 발해 건국 직전에 흑수돌이 당군에 의해 죽는데,이것도 허구이며 사실은 걸사비우가 죽었습니다. 대 중상도 발해건국 직전에 죽었고요. 그리고 경천동지할 사실 하나!!! 이 해고가 고구려 사람으로 나오더군요(드라마를 보면 이 해고가 신홍과 얘기 하다가 자신의 뿌리가 무언지 궁금해 묻습니다. 이에 신홍이 주인님은 고구려 사람 이라고 하더군요. 무슨 얄궂은 운명이니 뭐니 하더라구요.... 아무리 드라마지만 내 참, 기가 막혀서...). 뭐,발해사에 대한 자료가 턱없이 부족해서 이런 설정을 한것은 이해가 가는데요. 이 해고가 고구려 사람 이라니!! 이건 좀 아니다 싶습니다. 이 해고는 순수한 거란인이며,당나라에 투항해 대 조영 토벌의 명령을 측천무후로부터 받습니다. 동모산에서 작살나 겨우 목숨만 건지고 빠져 나오지만....
드라마를 만들다 보면 픽션이 들어갈수는 있습니다. 그런데,검증된 역사적인 사실은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검증된 사실들을 건드리고 있으니 문제가 되는 겁니다. 과거,SBS의 <연개소문>도 그랬더군요. 665년에 죽은 연개소문이 668년에 버젓히 나오더군요. 그리고,한국의 사극들을 보면,시청자들에 대한 배려가 턱없이 부족 합니다. 더군다나 역사적인 사실들을 모르는 사람들은 제가 위에 열거한 허구들을 거의 그대로 믿을 공산이 큽니다. TV 화면에 자막이라도 천천히 내보내던가.....어떤 역사학자분은 우리 나라의 사극을 아예 보지 않는답니다. 왜냐? 보면 화가 나니까요. 택도없는 허구들을 갖다붙여 전국에 내보내고 있으니....그런데,가만히 보면 <대 조영>이란 드라마는 정말 잘 만든 드라마 입니다. 한마디로 다음회가 기다려지는 그런 드라마죠. 저는 최 수종씨가 그렇게 연기 잘할줄은 몰랐습니다. <태조 왕 건>에서는 조금 어색하게 나오더니만..... 그리고,저 위의 저 망할놈의 지도...저런 지도를 보면 저는 역사학도로써 모두 불태우고 싶은 심정 입니다. 발해의 영토는 저것보다 두배는 더 넓었습니다. 저 위의 지도는 일제시대때 쪽바리들의 사주를 받은 식민학자들이 조작해서 만든 지도 입니다. 저런것들을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으니 대 조영과 발해의 역대 황제들이 보면 지하에서 대성통곡 하겠네요.....
그리고,사극 대 조영을 보면,마마(碼碼)라는 용어를 쓰더군요. <마마>라는 용어는 고려왕조 후기 이전까지는 이러한 용어가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고려왕조가 원(元)의 속국이 되면서부터 중국으로부터 이 <마마>라는 용어가 들어왔으며,고려후기에 이 용어를 왕실(王室)에서 사용하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일반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겁니다. 사극을 만드려면 좀 더 치밀한 고증을 거쳐야죠....이상 끝.
⎿ 기열 답글주소 수정/삭제답글달기
제가 말하고자 하는것을 먼저 말씀하셧네요 제 생각도 님과 같습니다
훈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글달기
백성들이 발해의 태왕한테 불리는 칭호는 가독부라고 하고, 신하들은 왕을 성상 기하라고 불렀다고 압니다.
한마디로 장영철 작가는 발해 역사에 대한 고증이 참 부족하다라고 볼수 있죠.
이해고 짱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글달기
검이는 마지막에 궁을 나가는데.. 무슨 2대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