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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잊은 사람들

· 댓글개 · 라라윈
명절이면 투덜이스머프로 변신하는 라라윈입니다.
저희 집이 큰 집이다 보니, 명절때면 손오공의 분신술이 간절합니다. 머리카락 한 줌 뽑아서 주문을 외우면 한 명의 라라윈은 방을 치우고, 한 명은 전을 부치고, 한 명은 심부름을 하고, 한 명은 잡일을 돕고, 한 명은 밀려있는 일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분신술은 없고, 그저 혼자서 잠을 못자가며 할 일만 많을 뿐 입니다. 그래서 명절때면 불평불만이 가득하면서, 갑자기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 대한 비판의식이 하늘을 찌릅니다.



올해는 더욱이 토요일이 추석이다 보니, 일은 똑같이 많으면서 주말에 쉬지도 못해서 더 힘이 드는 명절이었습니다. 음식준비를 거의 마친 추석 전날 밤이었습니다.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아는 분께서 위독하시다고 합니다. 오늘을 넘기기 힘드시다고 했습니다. 추석 전날 온가족이 모여있는 것을 알면서도 전화한 것을 보니 정말 급한 상황같다면서 엄마아빠가 병원에 가시기에, 따라나서게 되었습니다.


응급실,중환자실,강북삼성

엄마 아빠는 먼저 급하게 뛰어들어 가시고, 제가 주차를 하고 따라가게 되었는데...
전화를 안 받으시기에 중환자실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이 곳에는 추석의 분위기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지친 발걸음으로 퇴근을 하시면서 "내일보자" (내일은 추석인데?) 라고 인사를 하며 헤어지시는 간호사분들과
초조한 표정으로 앞의 좌석을 지키고 있는 가족들만 있었습니다.
잠시 뒤에 다 큰 어른의 '엉엉'우는 곡소리가 들리고, 조금 뒤에 침대가 나오고 가족들은 오열을 했습니다.

그 때 였습니다. 엄마가 어디있냐며 전화를 하셨습니다. 중환자실이 아니라 응급실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응급실로 내려가 보니... 이 곳은 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리고, 찾아간 분의 가족들은 환자분을 붙들고 우느라 누가 왔는지 신경쓸 겨를도 없어 보였습니다. 뭐라 위로를 할 수도 없고, 제가 도울 부분이 없어서 그저 멍하니 밖에서 기다리다가 중간중간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간단한 심부름이나 도와드렸습니다.
그 곳에서 명절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대기실에 나와서 잠시 쉬고 계시는 환자분들의 대화 속 화제뿐이었습니다.
"내가 예전에 밖에 있을 땐 추석날이면 이렇게 했었지.."
"그래.. 이렇게 아파서 여기 와 있으니..."
그나마 추석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여유로운 수준이고, 다른 사람들은 응급환자때문에 추석따위는 잊은지 오래인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제가 찾아갔던 분은 운명하셨고, 장례절차가 진행되며 정신없는 추석전야가 되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오시기 한 시간 전에도 괜찮으셨다고...
추석인데 환자가 있어 추석을 즐기지도 못하는 가족들이 안쓰러워 음식을 하라고 하셨다고...
집에 추석지낼 준비하고 고인도 기분이 좋으셨다고...
고인의 이야기를 하면서 하염없이 울고있는 유족들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뭐라 해드릴 말도 없고, 크게 도울 일도 없어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 들었습니다.



고인의 일로 마음이 복잡했던 추석...
추석 마지막 날은 동생의 생일이기도 했습니다.
추석에 일요일인데 케잌은 어떻게 살지 걱정하면서 나갔는데, 추석과 일요일과 아무 상관없이 베스킨 라빈스와 제과점 모두 정상영업하고 있었습니다. 음식점을 알아보니, 대부분 음식점이 정상영업하고 있었습니다.
아무 문제없이 케잌을 살 수 있었고, 생일잔치를 할 수 있어 좋긴했지만, 오늘같은 날 정상근무하고 있다는 것이 안쓰러워졌습니다. 예전에 명절과 상관없이 일해야 했던 직장에서 명절날 정상근무할 때 왠지 더 힘들고 외롭게 느껴졌던 생각도 나면서 더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큰 집이라 일이 많아 힘들지언정..
별 일이 없어 식구들이 명절에 모두 모여 북적거릴 수 있음이 큰 행복으로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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