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윈 서른살에 읽은 책 : 박완서 유작 기나긴 하루, 울음이 복받치게 하는 무한 공감
그런데 무엇에 끌렸는지 저도 모르게 장바구니에 담고, 주문을 했습니다. 지난 달, 지지난 달에 산 책도 아직 책상 옆에 침대 머리맡에 한가득 쌓여있는데, 이 놈의 책 욕심...
큰 기대라기 보다, 박완서 선생님은 워낙 유명한 분이고, 박완서 유작으로 알려진 "기나긴 하루"가 그냥 읽어보고 싶어 책장을 뒤적였던 것 입니다.
그런데 왜 어느 순간에 뭐에 그토록 공감하고
가슴이 울컥했는지...
박완서 "기나긴 하루"의 첫번째 글을 읽다말고 감정이 복 받쳐서...
할아버지 할머니라도 돌아가신 날 서럽게 엉엉 퍼울던 것처럼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어찌보면 박완서 선생님의 생애와 저는 공감대라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시골에서 살아 본 적도 없고, 제가 태어날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도 서울에 사셨기 때문에 시골집 마당에서 뛰어놀고 개울가에서 개구리 잡던 추억 같은건 전혀. 전혀 없는데.
산길을 걸어 학교 다녀본 적도 없고.
전 아빠가 여전히 건강히 살아계시고. 어릴 적 죽은 오누이도 없고.
결혼도 안 했고.
그런데 뭣 때문일까요.
무엇때문에 그토록 서럽게 공감하며 울음이 터져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책에는 픽션인지 팩션인지 헷갈리는 자전적인 이야기와 함께, 제가 몹시도 싫어하는 아줌마 수다가 담겨있습니다. 집에 손님 오시는 것을 좋아하고, 엄마 따라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지라, 그러면 엄마 옆에 앉아 다른 어른들의 수다를 조용히 들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듣기에도 지치는 수다인데다가, 자신의 힘들었던 여자로서의 삶을 저에게까지 전가하며, "너는 그렇게 살면 안돼." 라거나, "남자 다 똑같다. 여자 팔잔 그런거야." 라는 식으로 제 삶도 자신들 못지않게 퍽퍽할거라는, 제가 듣기에는 일종의 저주같은 이야기로 들려 참 싫었습니다.
그런데 책에서 부잣집 아줌마, 사연있는 아줌마, 별 걱정 없어 보이는 아줌마 들의 이야기 속에서, 다른 시각으로 그 분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형편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든 간에 공감될 수 밖에 없는 뭔가가 있습니다. 문체가 격렬해서 "자, 이 대목은 네가 감동해서 울어야 할 대목이란다." 라면서 감정을 몰아붙이는 것도 아닙니다. 담담합니다. 과장되게 꾸민 것도 없고, 읽기에 숨차게 몰아붙이지도 느리지도 않습니다. 저에게 아무 것도 강요하는 것은 없습니다.
심지어. 공감을 원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 살아가는 것에 대해 너무나 공감이 되어 버려요.
기나긴 하루. 라는 제목과 우중충한 잿빛 커버에서 느껴지는 나른함 때문에 이 책은 참 더딜 줄 알았습니다. 또 박완서 선생님 1주기에 맞추어 출간된 마지막 소설집이기 때문에 너무 빨리 읽어버리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박완서 유작이기에 이 책을 후딱 읽어버리고 너무 좋아서 다음 작품을 기다려도 더 이상 박완서 선생님의 신간이라는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껴읽으려고 조금씩 읽고 분홍색 책 줄을 꽂아두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빠져들어 다 읽어버렸네요....
제목은 기나긴 하루지만, 아껴 읽으려고 애썼어도 어느 순간 빠져들게 만들어 다 읽는 데는 짧은 하루면 되었습니다.
특별한 반찬이 있는 것도 아닌데 된장찌개, 김치, 밑반찬들 뿐인데도 뭐가 그렇게 맛있는지도 모르겠어서 숟가락을 막 끌어당기고, 배 불리 먹고도 밥 한 공기 더 먹게 만들어 버리는 시골밥상처럼, 이유를 모른채 그립고 좋고 배부르고 행복해지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저에게는 아무 추억도 없는 일조차 공감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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