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윈 읽을거리 즐기기: 모방범, 2016년 서울과 오버랩되는 2001년 도쿄 묻지마 범죄 소설
도서관에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빌려 읽었다가, 소설책 읽는데 재미가 들렸습니다. 자치동갑국악원 원장님이 <라플라스의 마녀>를 빌려주셔서 읽고, 그 뒤에 <모방범>을 읽고 계시다고 하여, 원장님께 모방범 1부, 2부의 간략한 줄거리를 듣고 흥미가 생겨 저도 빌려왔습니다. 마침 학교 시험기간이라 소설책들은 고스란히 꽂혀 있었습니다. 금요일 저녁부터 읽기 시작해 잠들기까지 읽고, 눈 떠서 또 읽어도 5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 3권이라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다 읽었습니다. 며칠을 <모방범>만 읽었더니 엊그제까지 꿈에서 자꾸 사건을 정리하고 해결하는 후유증이 있었습니다.. ㅠㅠ (이후 강한 스포 있음)
모방범 줄거리(스포있음)
모방범 1부 줄거리 : 도쿄에서 토막살인 시체가 발견되고, 버려진 가방이 나오면서, 거대한 사건의 실마리가 던져집니다. 무언가가 나올때마다 실종자가 있는 가족들은 혹시나 내 딸, 내 손녀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경찰서를 들락이고, 아직 사건이 연속 범죄인지 아닌지 감을 못 잡고 있을 때, 범인이 도발을 합니다. 버려진 시체의 일부와 가방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라는 단서를 주는 것 입니다. 이어서 범인은 피해자 가족에게 전화를 해서 놀려먹기도 하고, 단서를 던져주되 피해자 가족과 경찰을 괴롭게 만들며 즐기는 인상을 줍니다. 언론은 이 와중에 특집을 편성해서 연신 이 이야기를 떠들어대고, 범인은 그런 언론을 이용해서 계속 특종을 던져줍니다. 경찰은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범인의 실마리를 잡아 나가지만 오리무중입니다. 범인이 매스컴을 이용해 주목받기를 좋아하는 덕에, 약간의 빈틈으로 간신히 범인이 2명이라는 것을 알아내는 순간, 남자 2명이 험한 고개길에서 추락해 죽습니다.
모방범 2부 줄거리 : 2부에서는 추락해 죽은 두 남자, 구리하시 히로미와 다카이 가즈아키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어떻게 두 사람이 친구가 되었고, 둘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어쩌다가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를 세밀히 그립니다. 이미 1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고 읽기 때문에 범인의 심리, 범인의 환경에 대해 조금은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읽을수록 구리하시 히로미는 범인이 맞는 것 같은데, 다카이 가즈아키도 범인이 맞는지 갸우뚱해집니다. 히로미는 학교에서 키크고 인기있고 공부 잘하지만 좀 못된 그런 남자애고, 가즈아키는 뚱뚱하고 둔하고 존재감없는 스타일이거든요. 히로미는 가즈아키에게 삥 뜯기나 할 뿐, 피스 (아미카와 고이치)와 어울리며 못된 짓을 합니다. 그렇다면 범죄도 히로미와 피스가 저질렀을 것 같다는 의심이 될 무렵 진상이 밝혀집니다. 히로미가 피스가 실제 범인이나 피스의 계략과 히로미의 착란 증세로 인해 히로미와 가즈아키가 추락사 함으로서 1부의 연쇄살인범이 그 둘로 굳어져 버린 것 입니다. 진상을 알게 되자 답답하고 화가 났습니다. 성실하게 살고 친구를 믿었을 뿐인 가즈아키가 너무 불쌍하고요.
모방범 3부 줄거리 : 1부에서 피해자와 주변인들 (언론, 제3자 등등), 경찰의 입장을 다 다루고, 2부에서 범인의 입장을 다루었는데 3부에서는 무슨 할 이야기가 남아있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진범이 남아있지요. 3부에서는 유가족의 시선, 경찰의 시선, 르포라이터의 시선, 언론의 시선 등이 종합되면서 진범이 밝혀집니다.
1부를 읽으면서는 그동안 TV로 묻지마 범죄를 보던 독자의 느낌과 비슷합니다. 뭐가 뭔지 모르겠고, 단서라고는 언론에 보도된 것이나 경찰 발표, 유가족 입장 등 밖에 없는 상태로 읽게 되니까요. 2부에서는 범인은 누군지 알겠는데 "왜, 어떻게?"가 궁금해서 읽게 되고, 3부를 읽을 때는 감정이입이 되어서 답답한 마음에 읽었습니다. 진짜 범인은 따로 있고 억울하게 다카이 가즈아키가 흉악한 범죄의 범인으로 몰려서 가족들도 도망을 다니게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1부와 2부를 통해 누가 범죄를 저질렀고 진실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는데, 소설 속 세상에서는 전혀 밝혀지지가 않아서 어떻게 그것이 밝혀질지 응원하면서 욕하면서 읽었습니다.
모방범 후유증
다양한 관점 - 피해자 가족 심정, 가해자 가족 심정, 언론 심정, 경찰 심정
피해자 가족들이 안됐다는 생각을 해 보긴 했어도, 그 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릅니다. 세월호 사고의 경우에도 언론 인터뷰나 페이스북 등에 투박하게 올리신 글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니, 피해자 가족들이 얼마나 큰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게 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슬픔과 원망도 아니고 죄책감이라니... 의외였는데, 끊임없이 "내가 그 때 화 내지 않았더라면..." "그 날 배웅을 나갔더라면..."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같은 자책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묻지마 범죄의 희생자가 된 것에 대해 가족의 책임은 전혀 없음에도 가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를 못한다네요... 세월호 사고나 구의역 사고에서도 유가족들이 "선생님 말씀을 꼭 들으라고 가르치지 않았다면..." "너무 성실하게 살라고 하지 않았다면..." 이라는 후회를 하며, 자신의 탓을 하던 모습과 오버랩되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가해자 가족의 심정이었는데, 극단적인 반응들이 나타납니다. 모방범의 히구치 메구미는 범인의 딸로, 자기 아빠가 일가족을 죽이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남자애를 쫓아 다니면서 자기 아빠를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사실 자기 아빠가 잘못한게 아니라 너도 잘못이 있고, 너 때문에 우리 가족이 파탄이 난거라는 탓까지 합니다. 가히 발암캐릭터인데 이에 맞서 피해자 가족이 이겨내는 과정도 흥미진진했습니다.
언론의 경우 조사를 하기는 하지만, 경찰처럼 조사를 하는 것은 아니고, 이 참에 한 건 하려는 개인적인 욕심들이 얽혀있어 화제거리로 소비할 뿐 입니다. 지금의 우리와 비슷하죠. 사건의 진상을 밝혀주는 것이 아니라, 화제를 키우면서 시청률이나 판매부수에 신경을 씁니다. 피해자 가족이나 가해자 가족의 심정도 그저 특종거리일 뿐 입니다. 심지어 방송사에서는 수사협조도 잘 안 합니다. 자신들의 특종이라며 독자적 분석을 합니다.
특이하게 이 책에서는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의 입장이 아닌 전체 자료를 정리하는 데스크 업무를 보는 경찰의 시선을 그립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관계자들이 이런 느낌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다른 입장에 대해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자녀교육
묻지마 범죄를 아무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범인, 그런 범인들의 심정따위, 라고 하기에는 가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저지르는지 궁금한데 이 책에서는 가정 환경으로 원인을 돌리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 가정, 관심은 끌지만 진정한 사랑은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 일류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허우대도 멀쩡하지만 어른은 되지 못했기에 흉악한 일을 저지른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모의 자질이 부족하고,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이 사회적으로 이런 결과물을 낳는다는 느낌도 주었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예전에 학원강사 하면서 아이가 문제가 있을 때 부모님은 모르신다고 생각했던 것이 참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짜 강사 시절에는 부모님께 조심스레 전달해서 아이가 달라질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 부모님들을 만나보면 아이가 왜 그런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이상한 행동, 말 버릇의 근원은 대체로 그들의 부모님이 집에서 한 행동이었습니다. 모방범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는 더 생생해서, 다소 관계가 없어보이지만, 모방범이야 말로 부모님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01년의 도쿄, 2016년의 서울
책을 읽으며 답답하고 슬픈 점은, 2001년의 도쿄에서 벌어진 일 (실제로 벌어진 것도 아니고 소설의 일)이 2016년 서울을 사는 제가 느끼기에 너무 현실적이라고 느껴지는 점이었습니다. 종종 일본에서 유행이나 일이 10~20년 뒤 한국에서 일어난다고도 하는데, 그래서 15년 전 소설이 너무 현실적인, 현재 시대를 그리는 책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르곘습니다.
언론의 행태나 사람들의 말들, 남의 일에 대한 이야기 등은 거의 비슷한데, 단 하나 다른 점은 경찰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적어도 일본에서는 아직 경찰이 능력이 있고 깨끗하다고 믿는 믿음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경찰부터 썩어있고, 검찰도 썩어있고, 열정이 있고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은 결국 내쳐진다는 이야기가 현실성있게 다뤄지는데 반해, 일본 드라마나 만화 등에서는 그래도 경찰의 능력이나 명예에 대한 믿음은 남아있는 것 같아 부러웠습니다.
연극성 성격장애
작가는 이들을 연극성 성격장애라고 규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읽으면서 이건 딱 연극성 성격장애의 특성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제가 연극성 성격장애에 꽂혀 있어서 그렇게 봤을 수도 있고요. 연극성 성격장애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 못 견디는 특성입니다. 모든 사람의 관심을 끌고 싶어하고, 자신이 관심을 받기 위해 모든 짓을 합니다. 극적으로 울기도 하고, 극적으로 웃기도 하고요. 특히 타인의 관심을 얻기 위해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굉장히 빠르게 알아채서 거기에 맞춥니다. 소설 속의 히로미가 여자를 만났을 때 이 여자는 이런 면을 좋아하겠구나 하고 알아채서 바로 맞춰주는 것처럼요. 피스 역시 어른들은 어떤 것을 좋아한다, 친구들은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파악해서 기가 막히게 그 사람이 원하는 인물이 되어주죠. 그래서 연극성 성격장애인 사람은 언뜻 봐서는 그냥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일 뿐, 어떠한 성격장애의 경향성이 있다는 인상을 안 주기도 합니다. 다만 같은 집단 내에서 오래 함께 지내다 보면 조금씩 드러나지요.
이 경우도 어린 시절 부모에게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여, 값싼 관심에 목 매는 것일 수 있다고 하는데, 제가 느끼기에는 두 범인도 연극성 성격장애를 앓고 있었던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끝, 그리고 끝나지 않은 것
마지막으로 가장 가슴이 아프게 남는 것은 요시오 할아버지의 외침이었습니다. 사건이 종결되었다고 보도가 되고, 사람들은 안심을 했으나 할아버지는 술을 거하게 드시고 외치십니다. 죽은 내 손녀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외부자들의 입장에서는 사건의 범인이 잡히면 끝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어쩌면 세월호 사고 조사가 지겹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빨리 끝을 내고 싶은데, 유가족은 계속 조사해 달라고 하고 잊지 말아 달라고 하니 처리가 되지 않아 찜찜한 탓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조사 끝나고 보상 끝나서 '종결'하면 끝이거든요. 그러나 피해자 유가족들에게는 끝이라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건이 끝났다고 처리된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동안 범인이 잡혔다고 안심하고, 끝났다고 좋아하던 것에 대해 껄끄러운 감정이 생겨 버렸습니다.
읽는 동안도 생각이 참 많아지고, 읽고 나서도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책 이었습니다. 생각거리를 너무 많이 남기는 다소 버거운 책이라, 선뜻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한동안 추리소설이나 범죄소설은 안 읽는 걸로....
-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원작 반전 소설
- 미움받을 용기, 인간관계때문에 힘든 사람을 위한 고마운 책
'생활탐구 > 읽을거리 즐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지털페이지 독서록, 도서관 책 반납 관리 & 독서노트 작성을 어플 하나로 해결 (3) | 2016.07.20 |
---|---|
불광천 작은 도서관, 생태학습 산책코스에 있는 작지만 알찬 인문학 도서관 (2) | 2016.06.18 |
아무것도 없는 방에 살고싶다, 미니멀리즘 인테리어 대가 10인의 꿀팁 (2) | 2016.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