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윈 읽을거리 즐기기 : 여행하다 결혼하다, 만난지 3일만에 결혼한 배낭여행 커플
<여행하다 결혼하다>는 일이 너무 답답할 때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난 여행작가 미노가 라오스에 가기 위해 들른 방콕 카오산에서 만난지 3일만에 청혼을 받고, 그로부터 얼마 뒤 라오스에서 정말로 전통 결혼식을 올리고, 5개월을 함께 배낭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여행지에서 만나 만난지 3일만에 결혼을 결심했을까, 궁금해 몇 페이지를 뒤적거리다가 이야기에 빨려들어 금세 읽게 되었습니다. 만남은 특별하지만, 이 커플 역시 보통의 커플들이 겪는 수많은 문제들을 겪으며 싸우고 풀고 또 싸우는 모습에 공감이 되었고, 저는 해 본 적이 없는 태국 방콕 - 라오스 - 캄보디아 - 베트남 - 중국으로 이어지는 배낭여행기도 흥미로웠습니다.
배낭여행에 대한 대리만족
저는 배낭여행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릴 적에는 해보고 싶었으나 배낭여행을 나설 정도의 돈이 없었고, 그 뒤로는 배낭여행 한 번 못 가본 것에 대한 묘한 열등감으로
"나같으면 그렇게 여행 안가. 여행가서 잘 먹지도 못하고, 즐기지도 못하고, 개고생만 하고. 그게 무슨 여행이야? 난 돈 많이 벌어서 편하게 갈래."
라고 하며, 배낭여행을 못 가본 것이 아니라 안 가는 것이라며 위장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배낭여행 갈 정도의 돈은 생겼으나, 체력도 딸리고, 어릴때보다 더 두려워졌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말처럼, '확인하러 여행하는 스타일' 입니다. 여행가기 전에 블로그나 여행기 등을 통해서 그 곳에 대해 꼼꼼히 미리 온라인 답사를 하고, 제가 봤던 것과 똑같은지 아닌지 확인하러 다닙니다. 호텔, 교통편, 동선, 식사할 곳들을 꼼꼼히 찾아두고, 돌발적 상황을 최소화 합니다. 낯선 것들을 경험하러 떠난다고 하지만, 낯섬에 대해 철저히 준비하여 저의 통제 하에 두고자 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다 보니, 즉흥적인 여행, 여행책에 나와있지 않은 낯선 곳으로의 배낭여행은 두렵습니다. 어쩌면 저는 앞으로도 배낭여행을 못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남의 배낭여행 일기는 흥미로웠습니다. 태국 방콕 - 라오스 - 캄보디아 - 베트남 - 중국 - 인천으로 이어지는 5개월 넘는 긴 배낭여행을 술술 풀어서 이야기해주니 제가 대신 다녀온 기분이라 꽤 큰 대리만족을 주었습니다. 특히 왜 갑자기 앙코르와트에 꽂히게 되었는지 이유는 떠오르지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가 가보고 싶던 터라 많은 정보도 얻었습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커플, 과연 잘 될까?
미노 - 서른 여섯, 문과, 문학소녀, 방송작가, 서울 거주, 독립적 여성
씨티맨 - 40대, 이과, 태권도 선수 출신, 노가다, 대전 거주, 남성우월주의자
한국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 둘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녀입니다. 닮은 점이라고는 수박 먹을 때 씨빼고 먹는것 외에는 비슷한 점이라고는 없는 두 사람이 만난지 3일만에 씨티맨의 뜬금없는 청혼 '내가 책임질게' 라는 이야기로 연이 시작됩니다.
보통 여행지에서 만나 급 반한 커플은 빨리 사랑에 빠졌던 것처럼 빨리 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어떨지가 궁금했습니다. 또, 죽고 못 살던 사랑하는 커플도 배낭여행 함께 가서 깨지는 경우가 부지기수 입니다. 배낭여행가서 아프거나 피곤하고 힘들면 자주 다투고 싸우다가 갈때는 둘이서, 올때는 각자 온다고 합니다. 더욱이 이 둘은 성격이나 성향 자체가 달라도 너어어어어어무 달라서, 과연 이런 둘이서 부부는 커녕 커플로 지낼 수 있을지도 궁금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3차대전을 방불케하는 다툼을 수시로 했다고 합니다. 만약 한국에서 그토록 싸웠다면 각자 자기 집에 가거나 각방을 쓰거나 뭔가 더 골이 깊어졌을 수도 있는데, 여행지에서 싸우고 갈라서면 '정말 끝'이라는 것이 오히려 둘을 단단히 붙잡아 준 것 같습니다. 격렬하게 싸워도 오지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서로 밖에 없고, 의지할 사람도 서로 밖에 없고, 무엇보다 한국의 주소나 전화번호도 모르기 때문에 이대로 헤어지면 끝이라는 두려움이 정말로 끝까지 가지는 못하게 하는 듯 했습니다.
또 한가지 와 닿았던 것은, 30대 후반 40대 미혼이 갖는 무기력함과 목표상실 증후군에 대한 공감이었습니다. 미노도, 씨티맨도 그냥 돈 벌고, 돈 벌어서 어느 정도 모이면 쓰고, 또 벌고, 여행도 하며... 그냥 살고 있었습니다. 결혼에 대해서도 무심했던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결혼을 한 이유는
그냥 돈 벌고, 쓰고, 살고.... 그러다 누군가를 만남으로 인해 인생의 목표가 달라지는 것.
인생의 목표가 성공이 아니라 '나'와 행복하게 사는 것인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격하는 것.
그런게 결혼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여행기에 녹아든 사랑이야기라서, 여행기로도 재미나고 연애스토리로도 재미납니다. 전자도서관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 이렇게 재미날 때면 숨은 보물을 찾은 기분입니다.
친구들에게 이 책은 한 번 읽어보려고 추천하고 싶었는데 (책 표지 디자인이 애매하여) 책 제목이 <travel to love> 인지 <여행하다 결혼하다>인지가 헷갈려 검색을 했습니다. 책 제목은 <여행하다 결혼하다> 입니다. 검색하다보니 이 재미난 책이 왜 안 알려지지 않았는가가 의아했고, 현재 미노와 씨티맨은 어디를 여행하고 있고, 어떻게 한국의 현실을 살아나가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팬심 폭발해 여행작가 미노 블로그를 찾았는데, 이 책 <여행하다 결혼하다> 소개를 끝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는 듯 합니다.
▶︎ 미노의 수상한 여행 http://blog.naver.com/iljack95
왕년의 인기 연예인들의 근황을 궁금해 한 적도 별로 없는데, 우연히 책 한 권 읽었을 뿐인 이 여행작가 미노와 남편 씨티맨의 근황은 너무나 궁금합니다. 이 책을 끝으로 미노라는 필명으로 여행책을 출간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 두 분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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