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윈 생각거리, 나향욱 개돼지, 김민희 평민, 웹툰작가 선민의식, 뒤틀린 선민의식의 원인은 뭘까?
나향욱의 개돼지 발언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웹툰작가들의 선민의식에 기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웹툰을 좋아하기는 하나, 듣도 보도 못한 작가들이 대단한 분들이신양 독자놈들이라 폄하하시는 것을 보니 기가 찼습니다. 제가 아직도 세상돌아가는 것을 몰라서, 감히 그 분들과 대등한 사람이라 착각을 하고 살았나 봅니다.
김민희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은 '평민'
저는 이미 TV에서 연예인이 아닌 사람들은 '일반인'이라고 하는 구분이 불편했습니다. 연예인도 하나의 직업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나, 연예인들의 발언을 보면 은근한 선민의식이 깔려있는 느낌이었거든요. 우리 연예인들은 이렇지만, 일반인이니까.. 뭐 이런 식의 발언이랄까,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면 그 뒤부터 일반인과는 다른 연예인이라는 철갑을 두르는 듯한 태도가 드러납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솔직하게(?) 연예인이 아니면 평민이라 말씀하시는 아가씨 김민희 같은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솔직히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어도, 팬들의 사랑이 지지기반인 연예인들은 연기라도 하던데, 참 솔직하죠. 너무 솔직해서 당황스러운 분은 교육부 공무원 중에도 나왔습니다.
나향욱 교육부 공무원 '개돼지'
민중은 개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되며,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하셨죠.
구의역 열차사고로 사망한 분에 대해서도 내 자식 일처럼 생각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을 합니다. 어떤 분의 논평처럼 너무 솔직해서 순수해 보일 지경입니다. 이런 선민의식을 가진 분들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사람들을 무시할 뿐더러, 솔직하지도 않아서 이런 생각을 드러내놓고 말하시진 않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너무 순수하셔서 안쓰럽게 되었습니다. 이분의 순수하고 정직한 면모에 감화를 받았는지 지난 주말에는 웹툰작가들도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웹툰작가 선민의식 대폭발
시작은 넥슨 게임의 여자 성우가 메갈리아 고소비용을 지원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게임유저들이 항의를 하자, 넥슨에서 해당 성우와의 계약을 종료했다고 합니다. 당사자인 성우는 넥슨에서 계약금을 받고 원만히 마무리되었다고 밝혔으나, 당사자들 간의 합의가 되었든 말든 2차전이 벌어진 것 입니다. 먼 옛날 저희 여고의 여학생 하나를 두고 경복고와 경기고의 패싸움이 난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미 여학생은 오간데 없고 양쪽의 싸움이 주가 되었던데 (▶︎남학생들을 패싸움을 하게 만든 전설의 얼짱) 웹툰작가와 독자도 원래 원인은 이제 더 이상 중요치 않아졌고, 독자들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하는 웹툰작가들의 트윗들만 남아있습니다.
웹툰을 공짜로 쳐 보는 독자주제에 웹툰작가에게 덤비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나봅니다.
그동안 별점과 댓글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는 고백도 하십니다. 예전에 학교의 모 교수님이 강의평가 점수가 나쁘셨는지, 수업 중에 이게 정당한거냐며 분개하시던 생각이 납니다. 감히 학생이 교수를 평가해도 되는 거냐고 하셨는데... 웹툰작가님도 비슷한 심정이신가 봅니다.
돈도 안되는 독자놈들이 까부는 것에 심기가 많이 불편하셨나 봅니다. 참고로 레진코믹스는 유료 웹툰 사이트입니다. 독자의 결제가 수익모델이나, 소액 결제자 몇 명 없어진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하십니다. 하긴 원래 헬조선에서 소비자는 이런 존재지요. 기업의 물품을 구매해서 매출을 올려주는 것이 소비자이기는 하나, 불매운동을 하든 뭘하든 니까짓게 안 산다고 우리 기업에 타격이나 줄 것 같냐며 무시당하는 존재지요. 아쉽게도 딱히 불매운동이 대성공을 거둔 적이 없기도 하고요. 아마도 한국 소비자들이 불매운동해서 가장 성공한 경험이 단무지 만드는 영세업체 였던 것 같습니다.
더욱 치명적인 약점도 찌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웹툰을 계속 볼거라는 사실을 쿡 찌르십니다. 수많은 말중에 이 말이 가장 리듬감있고 치명적이었는지 "야이~ㅎㅎㅎ 그래서 만화 안 볼꺼야?"라는 말이 곳곳에서 유행되고 있습니다. "야이~ㅎㅎㅎ 안할거야?"라는 말을 많이 하길래 개콘 유행어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웹툰작가 트윗을 기리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각하의 창조경제를 철저히 실천한 이론가도 나왔습니다. 웹툰시장은 작가가 키운 것이며, 독자는 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수요 공급의 법칙 따위 깡그리 무시하시는 듯 합니다. 작년에 레진 엔터테인먼트 매출이 300억 정도 된다고 하던데, 그 돈은 독자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아니면 정말로 대부분 정부에서 지원받은 것들일까요? 정확히 독자가 그 중에 얼마를 기여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같은 미천한 중생이 웹툰작가님이 말씀하시는 수익구조를 이해하려니 너무 어렵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뒤틀린 자존감과 선민의식을 가지는 사람들이 넘쳐나게 되었을까?
어쩌다 한 명, 두 명이라면야 '개인의 일탈' '수양 부족' 등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 곳곳에서 뒤틀린 자존감과 선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은 뭔가 구조적 원인이 있을 것 같습니다. 수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저는 어릴적부터 꾸준히 주입된 직업의 귀천, 계층 구분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공부 열심히 안하면, 저 아저씨처럼 땡볕에서 땀 흘리며 일해야 돼."
이 말 안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요? 내용은 다소 다르더라도, 너 공부 열심히 안하면 짱개배달이나 하게 된다, 라거나 상고 나와서 타자나 칠거냐는 말을 꽤나 많이 들었습니다. 학교, 학원의 여러 선생님들이 수시로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신 '사농공상'처럼 좋은 대학 나와서 책상에 앉아있는 직업이 최고이고, 땀 흘리는 직업은 천하다고 배웠습니다. 공부 못하고 노력 안하는 애들이나 하는거라고....
여기에서부터 벌써 함께 사는 사회가 아니라, 나는 땀흘리는 사람 집단이 아닌 머리쓰는 집단, 하이클래스에 들어가야 한다는 세뇌 아닌 세뇌를 받게 됩니다. 당연히 일하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 따위도 없습니다. 청소부 아저씨는 노오력을 안해서 공부 못해서 청소나 하게 된 것일테고, 난 노오력해서 저런 사람과는 다르게 살거니까요.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다양한 직업이 필요하고, 각자 자기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사회가 잘 돌아간다는 의식 같은 것은 없습니다.
"니가 왜 실업계를 가니?"
중학교 때 성적이 좋은 아이가 실업계를 가겠다고 하면, 학부모와 선생님이 기를 쓰고 뜯어 말립니다.....
본인이 실업계 가고 싶다고 주장을 해도, 어른들은 "대학 안나오고 뭘 할 수 있을거 같아? 실업계 나와서 하는 일이라고는 대학 나온 애들 딱갈이 하는건데, 그렇게 살거야?" "대학 나오고 나서 해도 되잖아." 같은 단정적으로 계층을 나누는 말을 거침없이 합니다.
그리고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어느 정도 계층이 나뉘기 시작합니다. 과학고, 민사고 등으로 가는 애는 사회의 리더격이 될만한 아이, 일반고 가는 애들은 그냥 보통 아이, 실업계 가는 아이는 희망없는 아이 이런 식입니다. 성적에 따른 이런 구분은 대학까지 꾸준히 이어집니다. 심지어 같은 대학에 입학해도 출신고등학교나 입학전형에 따라서 서열이 있습니다. 우스개소리로 대학 골품제라고도 하나, 썩 우습지만은 않습니다.
"너네 집은 몇 평이니?"
제가 일했던 미술학원은 자이 1차 아파트와 자이 3차 사이에 있었습니다. 자이 1차 아파트는 20평형대이고, 자이 3차 아파트는 4~50평대라고 합니다. 자이 1차 아파트 아이와 자이 3차 아파트 아이는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지만 함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생활수준이 맞지 않았는지, 생활방식도 매우 다르고, 어머니들도 교류가 없었고, 아이들도 따로 놀았습니다.
자이 3차 아이가 저에게 마음을 열면서 처음으로 했던 질문은 "선생님 집은 몇 평이에요? 우리 집은 49평인데." 였습니다. 엄마가 20평형대 아이와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던지, 자기와 친한 아이들은 다 49평형이라서 그런지, 이유는 정확치 않으나 저와 더 친해지기에 앞서 제가 몇 평에서 사는지부터 확인했던 것 같습니다. 딱히 아이가 나쁜 아이도 아니고, 어머니가 나쁜 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평수에 따라 다른 집단을 이루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다른 학원으로 옮겼을 때도 평수에 따른 집단, 좋은 아파트 사는 애들끼리, 임대아파트 사는 애들끼리 어울리는 현상은 똑같았습니다.
대체 왜 그러는지 관찰을 해보니, 좁은 평수에 사는 분들은 아무래도 경제적 여유가 적어 맞벌이 하는 분이 많았고, 아이는 집에 혼자 있었습니다. 집에서 혼자 게임을 하고 TV만 계속 보니, 조금 더 넓은 평수에 사는 (약간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전업주부 어머니가 보기에 그 아이가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보신 것 같았습니다. 그 애 집에 가면 계속 게임만 하고, 불량식품 사먹고, TV만 보니 마음에 안 드시는 거지요. 어머니가 집에 있는 댁에 가면, 그 집 엄마가 간식도 챙겨주고 숙제도 봐주고, 아이들 노는 것도 지켜봐주기 때문에 서로 아이 돌보기 품앗이가 되어 비슷한 분들끼리 친하신 듯 했습니다.
이처럼 부모님 직업, 집 크기, 엄마의 전업맘 여부, 성적, 출신학교 등으로 촘촘하게 계급화되며 자랐을 뿐, "우리는 모두 친구"라고 느끼는 경험을 거의 못해보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교회 같은 종교 활동을 할 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며 형제 자매라고 하나, 여기서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선택받지 못했다고 하기 때문에, 되레 또 다른 선민의식을 주입받게 되기도 합니다.
결국, 끼리끼리, 비슷한 친구만 만나면서 자라다 보면, 그들만 친구일 뿐, 다른 사람들은 상관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공동체 의식, 연대의식 따위....
해법은 없을까....
요상한 선민의식의 원인이 교육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쩄거나 예전부터 교육하시는 분들은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 교육부 공무원 분은 예외였던 것 같지만....;;;)
이상적인 대안은 일본이 대학진학율을 50%대로 낮추고, 유럽에서 대학 진학과 기술교육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춘 것처럼 한국도 기술직을 존중하고, 대학은 공부하고 싶은 사람만 진학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공부에 관심이 있건 없건 죄다 대학을 보내고 서열화 하니 이런 식의 같잖은 선민의식 문제가 심화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또 다른 방안은 무의식중에 자리잡은 인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합니다.
발달심리를 공부하며, 그림책 연구를 하는 선생님께 들으니, 최근의 발전된 그림책에서는 주인공 중 한 명은 꼭 장애인, 주인공들의 피부색도 다양하게 해서, 다른 인종, 장애아, 비 장애아가 모두 친구가 되는 이미지를 심어준다고 합니다. 어릴적부터 그림책에서 예쁘고 잘생긴 애들만 잘되고, 똑같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끼리만 사귀고, 정상인들만 나오는 것을 보노라면, 너무 당연히 장애인을 따돌리고, 피부색이 다른 사람을 이상하게 여기게 된다는 것 입니다. 그림책부터 장애인 주인공, 다른 인종 주인공이 있으면, 현실에서 다른 나라 친구나 몸이 불편한 친구를 봐도 동화책처럼 '친구가 될 수 있다' 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다보니, 저도 장애인 친구 한 명도 없고, 흑인 친구 없고, 동남아 친구가 없을 뿐 아니라, 딱히 '친구'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장애인 친구, 동남아 친구는 고사하고, 제 친구들은 다 저와 비슷한 친구들이 대부분입니다...... 어쩌면 아동 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친구에 대한 생각을 바꿔주는 그림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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