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윈 생각거리 : 지방가서 살면 큰일나는 줄 아는 서울사람
저는 원래 서울사람입니다. 대전에는 일로 인연이 생겨 오게 되었다가, 쭈욱 살고 있습니다. 서울을 떠나본 적 없던 서울토박이가 대전에 살다보니 여러 가지 느끼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많이 느꼈던 것이 지방가서 살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서울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그랬던..ㅜㅜ)
지방에 있다가 서울에 가는 경우는 진학이나 취업등의 일이 잘 되어 왔을거라는 생각을 하는데, 반대로 서울에 있다가 지방에 가서 사는 경우는, "왜 가게 되었느냐?" 하면서 일이 잘 안 풀리게 된 것같이 보는 것 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걸까요?
서울사람들이 지방가서 살면 큰일나는 줄 알게 된 이유
1. 어릴때부터 세뇌되어서.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세뇌를 받습니다. 지방대에 가면 큰일나는 것이고, 지방대에 가는 것은 불효중의 불효라는 것 입니다.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것은 공부를 잘해서이지만, 서울사람이 지방에 있는 학교를 가는 것은 100% 공부를 못해서라는 개념을 주입받습니다.
그래서 드라마 카이스트가 나오기 전까지는, 좋은 대학은 서울에 있는 대학뿐이며, KAIST나 포항공대도 지방대인 줄 알고 있는 아이들도 정말 많았습니다. (요즘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지도....ㅡㅡ;;;)
2. 회사의 지방발령은 좌천의 의미라서.
대부분 기업의 본사가 서울에 있고, 서울에서 근무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며, 승진가능성이 더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능력이 있을수록 서울본사에 있으며, 능력없고 가망없는 사람들을 지방근무 시킨다는 이야기도 많고, 한동안 '지방발령'이 권고사직의 다른 표현처럼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지방의 책임자로 승진발령이 되는 좋은 경우도 있지만, 본사에서 멀어질수록 권력의 핵심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며, 안 좋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3. 수도가 서울이고, 대부분 서울을 중심으로 일이 처리되기 때문에.
광주 비엔날레나 부산 국제영화제 같은 축제를 빼고는 서울에 있어서 불편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모든 행사나 일들은 거의 다 서울을 중심으로 추진되기 때문입니다. 굵직한 전시회나 각종 행사, 모임, 대부분이 서울에서 열립니다. 전국민의 반 이상이 살고있는 수도이기에 당연한 일 일겁니다.
그렇기에 타지에 갈 필요성을 별로 못 느끼고, 서울에서 행사가 많아 불편하다는 지방사람들의 불편함을 들으며 더더욱 지방보다 서울이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각종 블로거행사나 시사회도 평일저녁 서울에서 개최되는 경우, 지방블로거는 해당 없어집니다. ㅜㅜ)
4. 지방에 대해 잘 몰라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서울에 살면서 "공기좋은 지방에 살고 싶다, 노후에 지방으로 가고 싶다"라는 소망을 가진 분들은 참 많습니다. 그러나 막상 노후가 되거나 지방에서 살 수 있는 여건이 되어도 선뜻 지방에 가는 분들은 매우 적습니다. 서울에서 오래 살았고 익숙하다보니, 지방에 대해 잘 모르고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것 입니다.
이러한 인식들이 종합이 되어서, 서울에 있다가 지방에 간다는 것은 좌천과 귀양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인식이 가득했던 사람이라, 처음에 대전에 와서는 적응을 못하고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좀 더 살다보니, 대전에는 대전만의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런 매력에 반해 지금까지 대전에 눌러있게 되었는데, 서울을 떠나 다른 지역에 살아보게 됨으로써 배우게 되었던 점이 참 많았습니다.
서울을 떠나 다른 지방에서 살게 되면서 느낀 점
1. 지방대에 대한 편견은 서울을 기준으로 지역에 따른 잘못된 구분.
학교와 학원에서 계속해서 지방대에 대해 이상한 소리를 주워듣다보니, 정말로 지방대는 공부를 못하고, 날라리들이나 모이는 곳인줄 알았습니다. (정말 죄송..ㅜㅜ) 그러나 대전에 와서 보니, 전혀 아니었습니다.
서울의 대학> 수도권대학 > 지방대 라는 서열은 서울사람들이 만들어낸 기준일 뿐, 지방에도 분명 명문대가 있었고, 그 대학의 수준은 서울의 유명대학 못지 않았습니다. 대학의 서열은 학교에 따라 다른 것이지, 지역에 따라 나눌 것은 아니었던 것 입니다.
2. 우물안 개구리였음을 깨달아.
서울에 있으면서는 서울에서 좋은 대학 나오고, 서울에서 좋은 직장을 취직하고, 서울에서 좋은 지역에 사는 것이 지상최대의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서울을 벗어나 다른 곳에 와 있어보니, 그것은 수만갈래 길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3. 서울만 살기 편안한 것은 아냐.
대전에 와 보니, 서울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혜택은 조금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있을 것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살기에 편안한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대전은 교통시범도시로, 교통이 정말 좋습니다. 시내에서 60km로 맞춰서 주행하면, 시 외곽까지 신호 한 번 안 걸리고 다닐 수 있는 교통신호체계도 정말 뛰어나고, 길이 사방으로 잘 나있어 정체구간이 적고, 길에서 소비되는 시간이 적습니다.
또한 근교의 드라이브 코스나 자연경관이 좋은 곳들과 맛집이 참 많았습니다. 서울에 있으면서는 상당한 시간을 들여 외곽으로 나가야 느낄 수 있던 정취가 이 곳에서는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4. 다른 도시에서 살 수 있는 용기
이 것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느꼈던 점 입니다. 저희 집은 이사한 적 없이 계속 한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다른 동네에 가서 산다는 것이나, 타지에 가서 산다는 것이 무척 겁나는 일이었습니다. 지방에 가면 객지사람이라고 텃세를 부리며 괴롭히는 것은 아닐까 겁도 났고, 부적응할 것도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막상 살아보니 사람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타지에서 사는 자신감이 늘어난 덕분에 다른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
저는 아직 온전히 자리잡은 상황이 아니기에, 앞으로 상황에 따라 어느 곳에서 살게 될 지 모릅니다. 이 곳에 계속 있게 될수도 있고, 다른 지역에 갈 수도 있고, 다시 서울에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서울만이 최고가 아니라 각 지방마다의 장점이 있다고 하는 것 역시, 서울에 살던 사람이 대전에 와 있으면서 느끼는 이방인의 시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서울에도 대전에도 제대로 속해있지 못한 한 사람의 이야기 일 수도...ㅜㅜ)
2009/07/30 - 서울사람은 고향의 개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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