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춘선 특이점
서울 지하철과 경의중앙선, 경춘선은 사뭇 달랐습니다. 역 대부분이 지하가 아닌 지상에 있고, 열차도 지상으로 다닙니다. 열차 배차 간격이 상당히 길어서 3~4분에 한 대가 아니라 2~30분에 한 대 오고요. 남양주와 양평에 집 보러 갔을 때, 열차가 한 시간에 2대 오다가 4대 오게 되어 교통편이 아주 좋다는 부동산 사장님 말씀을 듣고 문화충격을 받았습니다. 열차가 한 시간에 고작 4번 오는게 교통편이 좋은거라니...ㄷㄷㄷ
열차가 지상으로 다녀서 바깥 풍경을 구경할 수 있는 점은 좋으나, 역이 외부에 있어 여름엔 오지게 덥고 겨울엔 무시무시하게 춥고, 긴 배차간격은 별로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아쉬운 점을 빼면, 경춘선은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많았습니다.
어느 곳에서 탈까요? 알아맞춰 보세요. 딩동댕
경춘선과 경의중앙선은 같은 방향이 두 곳씩 있는 곳들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서울 지하철처럼 양쪽이 방향이 다른 줄 알고, 저는 어느 쪽에서 타야 하는지 많이 헤맸습니다. 3번도 서울방향, 4번도 서울방향 이런 식으로 쓰여 있거든요.
일부 역들은 전동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는데, 주로 전동 스크린 있는 쪽이 열차가 자주 들어오는 쪽 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 때 그 때 들어오는 라인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어, 차가 오는 대로 타면 되었습니다. 내릴 때도 지하철 전광판에는 내리는 문이 왼쪽으로 표시되고 있지만, 안내 방송에서는 "이번 정차 역 내리실 문은 오른쪽, 오른쪽 입니다." 이럴 때도 잦아요.
가끔 양쪽 차선에 나란이 서울 방향 차, 또는 춘천 방향 차가 서 있을 때도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 열차, 하나는 급행열차가 서 있어서 사람들이 바꿔 타기도 합니다. 라인이 두 개 있으면 반대 방향이라는 것은 서울 지하철 이야기 였습니다. 경춘선, 경의중앙선에서는 라인 2개가 같은 방향일 수 있습니다. 반대방향인 줄 알고 옆 라인에 서 있다가 차 놓칠 수도 있어요. 차 한 번 놓치면 다음 차는 15~30분 후에 옵니다.
물건 줄서기
열차가 15~30분, 혹은 더 오래 걸려서 한 대씩 들어오다 보니, 한가한 역에서는 사람 대신 물건이 줄을 섭니다.
가방 주인은 뒤의 의자에 앉아 있고, 가방이 줄을 서 있습니다.
우산 혼자 줄 서 있기도 하고요. 이 때는 의자에도 사람이 없어 누군가 우산 두고 가신 줄 알았는데, 우산 세워 놓고 역을 오가며 걷기 운동 하고 계셨습니다. 차가 더디 들어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하철역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물건을 출입구에 세워 놓아도 누가 가져가지 않는다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것 같기도 합니다.
검은 봉다리 혼자 줄 서 있기도 하고, 짐 꾸러미 하나만 있기도 하고, 사람 외의 것들이 줄을 서있고 주인은 안 보일 때도 많습니다. 그러다 열차 들어온다고 하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오십니다.
잡상인 길막 클라스
가끔 차 타고 소스라치게 놀랄 때도 있습니다. 반대편 문 앞에 마네킹 대가리가 있거든요.
몇 번 봐도 앞쪽에 사람 머리 같은게 저렇게 있으면 화들짝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특정 시간에 경춘선 자주 타는 분들은 이 풍경도 꽤 익숙해집니다.
한 두 분이 아니라 다른 날은 다른 잡상인이 마네킹 대가리에 망또까지 둘러 놀래키거든요. 사람들 내리고 타는 문 앞을 떡 막고 있는 것도 경춘선 만의 특이점인데, 저렇게 세워 놓고 길 막아도 사람들이 그냥 비켜가면서 타고 내립니다. 서울 지하철에서는 지하철 길막하는 분들 정말 싫어했는데, 여기서는 사람 놀래키는 마네킹 대가리 짐이 길막해도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친목의 장
경춘선에는 종종 학생들 무리가 자주 탑니다. 대성이, 가평, 청평으로 MT 가는 대학생들도 있고, 중고등학생들도 있습니다. 이 학생들은 지하철에 타서 문 앞에 둥글게 모여 왁자지껄 놀곤 합니다.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어서인지, 다른 승객들은 그냥 귀엽게 봅니다. 사람 많은데 왜 길 막고 앉아 있냐고 뭐라 하지 않아요. 놀러 가는 거 아니라도 학생들도 다리 아프니까, 바닥에 퍼질러 앉았나 보다 하며 그냥 봐주기도 하고요.
경춘선에서는 더 큰 친목의 장도 일어나거든요. 바닥에 앉아서 노는 학생들의 경우 대체로 원래 아는 사람 무리이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처음 보는 사이에 담소를 나누시기도 합니다. 건너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저기요, 아저씨. 이 열차 청량리 가요?" 라고 소리를 치시면, (옆자리 사람 아님, 맞은 편 사람에게 물어봄) 처음 보는 사람인 아저씨가 받아서 대답을 해 줍니다. 어느 날은 저까지 그 대화에 가세해 "이 차는 상봉까지 밖에 안 가요. 회기 가시려면 상봉에서 내려서 갈아 타셔야 돼요." 라며 건너편 낯선 이와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일부러 맞은 편 아저씨에게 물어보신 것이 나름 작업하신 것인데, 제가 눈치없이 끼어들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정치이야기, 취미 이야기 등 온갖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누시다가 내릴 때 보면 모르는 사이셨던 (각자 갈 길 가는) 분들도 많아요. 처음엔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왜 저러나 했는데, 자꾸 보노라니 적응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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