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의 썸머 뒷이야기

라라윈 볼거리 즐기기 : 강원영상위원회 찾아가는 영화토크 500일의 썸머

500일의 썸머를 10년 만에 다시 보았습니다. 500일의 썸머는 시작부터 유쾌합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가 아니며 누군가가 떠오른다고 해도 아닐거라고 해 놓고는 바로 전여친 실명을 공개하며 썅년이라고 욕하고 시작해요. 줄거리는 썸머와 톰의 연애인데, 만나고 사랑하고 다투고 헤어지는 과정이 뻔하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교차 편집이 되어 이야기가 오가기 때문에 흥미롭습니다. 중간중간 흐흐흐 으흐흐 하면서 웃게 되는 부분들이 많아, 재밌어요.


10년 전에 영화를 처음 봤을때는 조셉 고든 래빗 (aka 조토끼)와 조이 디샤넬을 잘 모를 때라, 참 평범한 배우들을 잘 섭외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클로이 모레츠도 몰라봤고요. 조이 디샤넬이 사랑스럽긴 했으나, 니콜 키드먼, 샤를리즈 테론처럼 조각 미녀가 아니라 평범한 이웃집 소녀 중 예쁜 느낌이었고, 조토끼 외모는... 주변 친구 중에도 조토끼 보다 잘 생기고 몸 좋은 사람은 많아서 평범한 (혹은 평범 이하) 남자를 잘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좀 촌스럽고 평범하게 나오다 보니, 두 사람의 상황이 굉장히 공감이 되면서 죽었던 연애세포가 되살아 나는 느낌이었습니다.


10년 전 소회 : 2010/01/14 - 500일의 썸머, 연애세포 죽어가는 이들을 위한 영화


다만, 한 가지가 아팠어요.


500일의 썸머


썸머는 톰과 헤어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합니다. 톰에게는 사귀는 것도 싫다고 누군가의 여자친구가 되고 싶지도 않다고 해놓고요. 그래 놓고는 톰이 제일 좋아하는 장소에 다시 나타나, 톰에게 비수를 꽂습니다. 썸머를 다시 만난 톰이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느냐고 묻자,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서 깨달았다고 합니다. 너에게는 확신하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혹은 널 만날 땐 몰랐던 것을 이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이 때 톰은 고개를 돌리고 울음을 삼키는데, 톰 심정이 제 심정이었습니다.


그 때는 구남친이 바람피워서 헤어진 충격이 어딘가 남아있었나 봅니다. 너에게는 없는 무언가가 다른 사람에게 있었단 말이 아팠어요. 대체 어떻게 해야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 없는 무언가가 생길 수 있을까. 그냥 착하기만 한 톰 같은 사람은 만만하게 사귀다 버려지는 역할인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10년 사이 꼭 보아야 할 최고의 연애 영화를 꼽으라면, 500일의 썸머는 꼭 보라고 추천하는데, 톰에게 너무 많이 감정이입이 되어서인지 막상 또 볼 용기는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원래 영화를 좋아하면 여러 번 또 봅니다.... 100번 이상 본 영화도 몇 편 돼요..)


3월, 강원영상위원회 담당자님이 연락하셔서 '찾아가는 영화토크'를 하는데, 영화는 500일의 썸머라고 하신 순간 운명 같았습니다. 그리고 무척 궁금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이 영화를 볼 때 어땠을까, 누구에게 공감했을까, 뭘 느꼈을까, 무슨 생각이 남았을까.

그 날부터 굉장히 설레며 찾아가는 영화토크에서 다른 분들과 이야기하는 순간을 기다렸어요.


그리고 찾아가는 영화토크 전 예습 차원에서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넷플릭스에 있어요) 10년 전과는 달리 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 사이 많이 극복을 했나봐요. 톰의 문제도 있지만, 썸머가 불안정하며 철벽을 치면서도 너무 멀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회피애착을 하는 사람이라 안정적인 톰과 안 맞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썸머가 톰에게 질렸다고 해서 톰이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질리는 변덕스러운 사람이 문제인 겁니다. 그런 변덕스러운 사람에게 맞추기 위해 '뭐가 문제일까'를 고민해 봤자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찾아가는 영화토크에서 다시 영화를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조각을 맞추자 또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원영상위원회 찾아가는 영화토크

찾아가는 영화토크는 강원영상위원회에서 기획한 행사였습니다. 강원영상위원회는 찾아가는 영화토크와 같이 많은 분들과 문화를 나누는 일 뿐 아니라, 영화 제작하시는 분들이 강원도에서 영화 작업을 하시는 것을 지원해 드리고 있다고 합니다. 남한산성, 강철비, 마약왕, 옥자 등이 강원도에서 촬영되었고, 영화 촬영 지원을 하셨다고 합니다. (- 강원영상위원회 http://gwfilm.kr/)


강원영상위원회 찾아가는 영화토크


지난 3월에는 미세먼지가 굉장히 심각하여 인 더 더스트를 함께 보며 환경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셨고, 꽃피는 5월에는 아름다운 연세대 원주캠퍼스에서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기획하셨다고 합니다. 연세대 원주 캠퍼스는 정말 아름답고 컸습니다. 호수같은 저수지 옆에 뾰족나무가 심어져 있고, 고풍스러운 건물이 보여서 유럽 어딘가의 성 같았어요.

500일의 썸머 이야기를 나눌 게스트는, 한 곡 한 곡 가사가 500일의 썸머 뺨치게 공감되는 네덜란드 튤립농장 네 분과 영화 평론가 이현경님과 저 였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톰에게 감정이입 하는 일명 '톰들'과 썸머에게 감정이입하는 '썸머들'로 나뉘고, 다른 관점에서 보는 분들이 계셔서, 10여년 만에 다시 본 500일의 썸머는 전혀 다른 영화 같았습니다. 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보노라니 500일의 썸머 후속편이랄까, 뒷이야기를 본 기분이었습니다.



500일의 썸머 '톰'들

저는 톰 입장에 공감하며 톰 입장을 대변했어요. 톰의 경우는 친구도 있고 여동생과 관계도 좋고 안정적인 사람인데, 썸머의 경우는 외롭고 불안정하고 회피애착 유형 같았거든요. 회피애착 유형은 엄마가 출근할 때, "나가. 가버리라고! 꺼져!" 라고 소리질러가며 울면서도 엄마 바지 자락을 붙잡고 있는 아이 같은 것 입니다. 밀쳐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멀어지는 것은 원치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불편해 합니다. (- 어장관리하는 회피애착 유형) 썸머가 딱 그런 사람 아닌가 했어요.

이전에 사귄 남자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것도 그렇게 함으로써 면죄부 같은 것을 얻는 것 같기도 했고요. (- 과거를 말하는 여자의 심리)


네덜란드 튤립농장 이규범님, 최민영님, 홍순인님과 객원 기타리스트로 오셨던 김준태님도 썸머 아니라 톰들이라고 하셨는데, 저와는 다른 관점으로 보셔서 흥미로웠습니다. 원래 톰들은 쿨한 척 한다는 이야기에 쿡 찔리기도 했고, 아픈 이별 후에 한 명쯤 저주하는 사람이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말씀에도 절절이 공감했습니다.


톰과 달리 관계를 정확히 하지 않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며, 같은 영화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썸머입장

영화평론가 이현경 선생님이 썸머 입장을 대변하셨는데, 여러 이야기 중 관계를 꼭 규정지어야 하는지 그냥 그 순간에 좋으면 괜찮은 것 아니냐는 말씀에 꽂혔습니다. 꼭 여자친구여야 하고, 진지한 관계여야만 연애를 하는 것은 아닌데, 어쩌면 우리가 무슨 사이인가를 규정하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썸머를 대변한 것은 아니나, 썸머도 톰을 만나면서 성장했고 그래서 결혼에 이르렀다는 관점도 새로웠습니다. 톰만 성장해서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은 것이 아니라, 썸머도 톰을 만나며 관계에 대한 두려움, 혼자 있는 것이 좋다며 철벽치는 것에서 벗어나 마음을 열었나 봅니다.


담당자님이 해주신 썸머 입장이 공감되었다는 말씀도 와 닿았습니다. 기회를 주고 기다려도 소용없을 때 점차 조금씩 지쳐가는 썸머 심정이 이해 되는데, 영화에서는 톰이 주인공이다 보니 썸머 입장은 잘 표현되지 않아 후속편으로 썸머 입장에서 영화가 나오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동안 저는 연애주도권이 없는 톰에게 투머치 감정이입을 하다보니 썸머 입장은 생각 못해봤는데, 담당자님 말씀 덕분에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연애주도권을 떠나, 연애 센스 없는 톰같은 남자와 사귀는 여자 입장이라 생각하니, 썸머 입장이 확 와 닿았어요. 톰 입장에서 보면 썸머가 썅년이나, 썸머 입장에서 보면 썸머가 보살이었습니다.


영화토크 당일에는 영화를 보며, 톰이 썸머에게 먼저 손 내미는 적이 있는지 세어 봤습니다. 놀랍게도 한 번도 없었어요. 마음에 들어도 혼자 짝사랑했다가 혼자 욕하며 끝냈다가 썸머가 말 걸어주자 다시 좋아하고, 고백도 친구가 "톰이 너 좋아한대요" 라면서 대신해주고, 썸머가 직접 "저 말 진짜에요? 나 좋아해요?" 라고 물어 볼때도 우물쭈물 좋은 사람 같다는 식으로 둘러대고, 키스도 썸머가 먼저 하고, 손도 썸머가 먼저 잡아주고, 썸머가 먼저 톰 집에 놀러가 주고, 데이트나 놀이거리도 다 썸머가 찾고, 둘이 싸웠을 때도 썸머가 집으로 찾아가 사과하고... 톰은 굉장히 수동적이었습니다. 너무 수동적이다 보니 썸머에 대해 제대로 관심을 갖거나 표현하지도 않았습니다. 썸머의 이전 남자친구 등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만, 썸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묻지 않습니다. 썸머가 결혼한 남자는 무슨 책 읽고 있냐고 먼저 말 걸었다는 이야기가 별거 아니라 생각했는데, 영화 내내 톰이 썸머에게 한 질문을 보니 톰은 썸머에 대해 제대로 물은 것이 없었어요. 그냥 저 여자는 나의 운명의 짝이야 라며 혼자 사랑할 뿐이었어요. 어찌보면 썸머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예쁘고 적극적인 여자가 다가와주니 그냥 좋았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썸머 아니라도 누구든 예쁘고 적극적인 여자만 있으면 충분히 대체가 가능할 것 같아요.


썸머 입장을 들으며 영화를 다시 돌아보니, 전혀 다른 영화로 보였습니다. 다음에 500일의 썸머를 다시 보면, 썸머 입장에서 유심히 보고 싶어졌습니다.



마지막 공연은 네덜란드튤립농장

마지막은 네덜란드 튤립 농장의 멋진 공연으로 끝났습니다.

영화토크 전에 미리 만나 담당자님들과 네덜란드튤립농장 분들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이 분들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저는 식사에 오신 것부터 조금 놀랐어요. 인기있는 가수 분들은 리허설 때문에 미리 오시긴 하나 (안 오시기도 하고...) 대기실에서 따로 식사하고 따로 쉬시지 함께 어울리진 않으셨거든요. 당연히 그러실거라 생각했는데 식사부터 함께 하셔서 놀랐고, 자리배치부터, 대화를 이끄시며 함께 있는 사람들이 소외감 들지 않게 편안하게 해주셨습니다.

베이시스트 최민영님은 제 책을 읽고 오셨다고 하셔서 더 깜짝 놀랐습니다. 저도 미리 네덜란드튤립농장과 이현경님에 대해 찾아보고 가기는 했는데, 유명한 분들을 몰라봐서 실례가 될까봐 그랬던 거였거든요. 네덜란드튤립농장을 찾아보니, 팬이 많으시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바쁜 분들이셨습니다. 그런데 바쁜 스케쥴 중에 영화토크 함께 할 다른 게스트의 책을 읽고 오셨다니! 정말 놀랐습니다. 책 내용에 공감해주시며, 이야기를 할수록 저같은 분 (저의 좋은 측면만..)을 만난 것 같아 행복해졌습니다.


담당자님이 영화토크 셋팅을 하는 동안, 학생들이 "네덜란드 튤립농장 언제 와요?" 라고 물었다고 전해주시자, "왜요?" 라며 기뻐하셨습니다. 인기있는 분들이니 팬들이 기다리는 것을 조금은 당연시 할 수도 있을텐데, 겸손하셨습니다. "우리를 기다려주시는 분이 있대."라며 감사하셨고요.

식사시간, 토크 시간, 이후의 짧은 대화를 나눌수록 배려와 존중이 느껴졌습니다. 편안하지만 지루하진 않고, 독특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알고 있지만 겸손하고, 친근하지만 후덥지근하진 않은 굉장히 매력적인 분들이셨어요.


이렇게 입덕이 시작되는 것인지, 집에 돌아오는 길부터 미친듯이 검색하고 (사랑의 첫 단계... 상대에 대한 지식 확충...) 네튤농 음악 계속 듣고 빠져 들었어요. (- 네덜란드튤립농장, 출구없는 매력적 음악)



가슴을 치는 공감되는 음악에 500일의 썸머 뒷이야기,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뇌가 활성화 되어 꼬박 이틀 넘게 500일의 썸머와 이 날 대화만 생각이 났습니다. 질문하셨던 것에 대해 다른 답도 생각나고, 다른 이야기를 곱씹으며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고, 마치 사랑에 빠져서 멍하니 그 생각밖에 안 나는 것처럼 찾아가는 영화토크 후유증 앓이를 했어요. 주말에 500일의 썸머 한 번 더 볼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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