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람 판소리 사천가 1인 100역의 울고 웃기는 한 마당

라라윈이 본 공연: 예솔이 이자람, 퓨전 판소리 사천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전주소리축제 소리통신원으로 위촉되어, 이자람의 판소리 사천가를 보았습니다.
이자람의 판소리 사천가는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이번 주말 (~7월 11일)까지 공연됩니다.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라는 국민동요를 열창하던 그 예솔이 이자람양이 이제는 다 커서, 국민동요가 아닌 구성진 우리네 국민소리를 들려줍니다.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예솔이 이자람양도 반갑지만, 그녀에게 놀라기에는 다른 인상적인 면이 너무나 많은 공연이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무대

이자람 판소리 사천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의 무대가 우선 인상적이었습니다.
무대가 1cm나 될듯 말듯, 관객석과 너무나 가까운 높지 않은 무대와 아늑한 공간이 포근합니다.
푹신한 의자에 몸을 묻고 관망하듯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대학로 한 켠의 즉석공연에 모여들어 보듯이, 마당놀이를 보듯 옹기종기 가까운 객석이 참 친근했습니다.



판소리 사천가의 내용,  원작은 브레히트 '사천의 성인'

판소리 사천가의 원작: 베르톨르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1920년대 중반에 《사랑의 상품 Die Ware Liebe》이라는 제목의 5개 장면으로 시작한 작품입니다.
신의 계명을 지키는 선인을 찾기 위해 여행하는 세 명의 신들에게 물장수 왕은 숙소를 구해주려고 애쓰지만 가는 집마다 거절당합니다. 마침내 그들은 창녀인 셴테의 집에 묵게 되어, 신들은 선한 여인을 발견했다고 안심하며 떠납니다.
신들이 준 돈으로 셴테는 작은 담배 가게를 마련하려고 하자 몰려드는 빈민들의 요구에 할 수 없이 셴테는 교활한 가공의 사촌 오빠 슈이타로 변장하여 위기를 피합니다.
셴테는 직장이 없는 비행사 양순과 사랑에 빠져서 그를 돕지만 양순의 애정 없는 계산으로 결혼이 좌절됩니다. 임신한 그녀는 태어날 아이를 구하려는 생각에 다시 슈이타로 변장하고 부자 이발사의 재산과 빈민들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담배 공장을 차립니다. 사업은 번창하는데 셴테가 오랫동안 보이지 않자 슈이타가 공장을 빼앗으려고 사촌 여동생을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고발당합니다.
10장에서 신들이 재판관으로 나온 법정에서 슈이타는 자신이 셴테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착하게 살아나가기가 힘들다는 그녀의 호소에 신들은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다시 승천합니다.


판소리 사천가의 각색된 내용

대한민국 사천이란 도시에 세 신이 찾아와 착한 사람을 찾습니다. 그들은 착한 사람을 찾아 도시를 헤매지만 눈에 차게 착한 이는 아무 데도 없습니다. 마침 붕어빵 장수 왕씨가 '사천의 천사'라 불리는 뚱녀 순덕을 소개시켜줍니다. 세 신은 착한 순덕의 모습에 감동하여 돈을 주고 떠납니다.
순덕이 그 돈으로 분식집을 차리자 온갖 거지들이 몰려와 분식집을 거덜냅니다. 하이에나 떼처럼 그녀를 뜯어먹는 온갖 인간군상... 착하게 살고 싶은 한 뚱녀의 간절한 소망!!!
더 이상 착하게 살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지자 순덕은 사촌오빠 남재수로 변장해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소믈리에가 되겠다면 순덕을 등쳐먹는 사랑에 울고 돈에 속은 뒤 순덕은 가공의 사촌오빠 재수로 변신해 무자비한 사업가로 성공합니다. 사람들은 재수가 순덕을 죽이고 사업체를 빼앗았다며 고발하고 그는 판관으로 변한 3명의 신 앞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1인 100역

판소리 사천가는 이자람씨 혼자 100역을 맡습니다.
순덕도 이자람, 순덕의 1인2역 남재수도 이자람, 동네노인도 이자람, 거지도 이자람, 견식도 이자람, 견식의 모친(시어머니)도 이자람, 변사장도 이자람.... 이런 식입니다. ^^;

이자람 판소리 사천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들어온다, 들어온다. 변스럽게 들어온다. 변태라고 소문이난 변사장이 들어온다."
"견식이의 모친이요. 뽀글뽀글 파마머리, 화려한 티셔츠에 순덕이의 예비 시어머니가 들어오는구나."
하는 입장소개와 함께 다른 사람역을 천연덕스럽게 해내는데,
어쩌면 한 명이 저렇게 순 식간에 여럿의 얼굴을 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놀랍습니다.
가끔 수 백명이 등장하는데도, 그 놈이 그 놈같고, 그 사람이 그 사람같은 영화나 극도 있는데... (죄송.. 도무지 인상적이지가 않고 구분이 안되는...) 그런데, 어떻게 혼자서 소리를 하고 연기를 하시는데, 저렇게 풍성할 수 있는지 그 스펙트럼이 놀라웠습니다.



식스센스를 건드리는 판소리의 매력

판소리를 듣노라면, 오감을 넘어서는 자극이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발을 까딱이고 리듬을 타고,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고, 뭔가 그동안 느끼지 못한 다른 감정을 자극합니다. 판소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매우 다채롭고 좋은데, 어찌보면 그동안 영화나 음악, 뮤지컬에서 느끼던 것과는 다른 생경한 경험이라 말로 표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최대한 교양있는 사람인 척 우아하게 앉아있으려고 애를 써도 엉덩이를 붙이고 있기 힘들게 들썩이게 만들고,  감정을 조물딱 조물딱 울었다 웃었다 하게 만들고 그러면서도 허탈하지 않게 꽉 채워주고, 신바람이 나는데 그 속에 애환이 있고, 참 익숙하고, 친숙하고.... 아주 묘한 복합적인 좋은 감정입니다.



신명나는 사회비판, 해학으로 털어버리는 세상사

이자람 판소리 사천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판소리의 신명 중 하나가 웃으면서 양반네를 까는 것 아니겠습니까.
역시나 오늘의 판소리도 웃음 속에 우리네 씁쓸한 양반네들을 신명나게 까줍니다.
끝까지 사회군상의 구석구석을 속 시원히 까뒤집고 내질러주어, 대리만족을 제대로 시켜줍니다. 원래 남 흉은 안 본다고 하면서도, 남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고, 내가 하지 않아도 나 대신 속 시원히 근거있게 잘근잘근 씹고 내 질러주면 그 속시원함은 엄청납니다. ^^


마음이 허한 사람에게 강력추천하는 우리의 소리

마음이 허해서, 뭔가 허전해서 극장이나 문화생활을 찾았을 때, 보고나서 더 허탈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더 허탈, 씁쓸해지는 뒷 맛에 뭔가를 더 해야할 것 같은 공허함이 몰려오는데...
끝까지 신바람이 나서 박수를 치게 되고, 풍자 속에 씁쓰름한 내용을 신명나게 털어버린 한 판을 듣고나면 마음이 든든합니다. 먹고나면 오래도록 배가 꺼지지 않는 엄마표 맛있는 된장찌개에 갓 지은 밥 한 그릇 든든하게 제대로 먹은 기분이랄까요... 화려하지만 먹고나면 금방 허기지는 식당표 음식과는 차원이 다른 든든함입니다.
세상 꼬라지가 마음에 안 들고, 마음이 허해서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으시다면,
신명나는 판소리 한 판으로 허한 속을 채워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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