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 저래 구박만 당하고 적응도 안되서 더 힘들던 신입때라 스트레스가 너무나 컸습니다. 그 날도 악몽 중의 악몽이라는 꿈 속에서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꿈을 꾸다가 늦잠을 잤습니다. 꿈 속에서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 꿈을 꾸다보니, 현실에서도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 줄 착각한 겁니다. 늦잠자고도 괜히 억울합니다. 꿈 속에서 일 하다 늦은건데.....ㅡㅡ;;
아침회의 해야 하는 시간이 다 되어도 제가 안 나타나자, 상사 중에 가장 성질이 불같은 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평소에 잘 한 일도 거침없이 나무라는 언니인데, 회의시간 10분 앞두고 집에서 출발한 것을 알면 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저희 집과 가까운 곳에 살던 분이라서 출근하는 경로를 너무나 잘 압니다. 대충 가고 있다고 둘러대거나 차가 막힌다는 소리는 안 먹힙니다. 압구정까지 3호선 지하철로 출근했거든요...
저는 빛의 속도로 머리를 굴렸습니다. 어차피 도착시간을 보면 들통이야 나겠지만, 지금 혼나고 가서 또 혼나는 것보다, 지금 거의 도착했다고 이야기 하고 도착해서 혼나는 것이 쪼금이라도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얼른 둘러댔습니다.
"지금 금호 지나고 있어요! 금방 갑니다~"
(서울 3호선 노선: 종로3가 - 을지로 3가 - 충무로 - 동대입구 - 약수 - 금호 - 옥수 - 압구정(회사))
방금 지하철 탔으니 아직 금호까지는 정거장이 상당히 많이 남았지만, 거의 다 온 것처럼 둘러댄 다음에 회의때문에 정신없을 때 슬그머니 들어가면 아주 조금이라도 덜 구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안내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이번 역은 종로3가, 종로3가.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
헉.....
선배도 들었나 봅니다. 전화기에서 호랑이라도 한 마리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ㅠㅠ
"이 개념없는... 지금 종로3가? 몇 신데 지금 니가 종로3가야?
개념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그런데 뭐, 금호? QE$^$$*&^)()$^%*&( ......................................
뭐하다가 늦은거야? 신입이 어디 빠져가지고 지각을 해? #@^%$*&^)(*&)................................"
안내방송만 안 나왔어도 회의 중간에 살그머니 들어가 있으면 덜 혼날 수 있었는데....ㅜㅜ
안내방송 때문에 어설픈 거짓말이 들통나는 바람에 진짜 금호에 도착할 때까지 전화로 욕을 먹었습니다.
그 날의 경험을 교훈삼아 그 뒤에는 혹시라도 늦는 경우에 빨리 자수를 하거나, 안내방송이 나올 때는 전화기 입구를 살짝 막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을 들통나게 하는 음향효과는 안내방송 뿐이 아니었습니다.
집에서 전화를 받으며 바깥이라고 했는데, 집의 강아지가 짖을 때...
다른 일 하는 것처럼 화장실에서 전화받고 있는데, 옆 사람이 변기 물내릴 때...
조용한 화장실에서 전화받으며 집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문 열고 들어오는 사람때문에 커다란 음악소리가 들릴 때....
......
그냥 둘러댔다가 생각도 못했던 소리 때문에 1분도 안되서 거짓말이 들통나더군요...
거짓말이나 딴 소리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거짓말은 안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혹시라도 거짓말을 하거나 둘러대야 하는 상황이라면 주위의 음향효과를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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