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귀고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는 이유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몇 달 뒤 였습니다. 늘상 차나 버스를 타고 다니던 길을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걸어올라갔습니다. (폭설로 차가 못 올라갈 때만 걸어갔어요)
구멍에 맞춰 그려놓은 심슨에 빙긋 웃음이 납니다. 가쁜 숨을 쉬며 조금 더 가니, 서울한양도성 가는 길이라는 안내가 나옵니다.
천천히 걸어 올라가니, 차를 타고 지나며 의미없이 지나친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나무 산책로가 쫙 깔려 있어 감사원 옆길을 통해 걷는 길은 안전하고 편했습니다.
차 타고 지나갈 때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으면 예쁘긴 했는데, 여유로이 사진 찍을 겨를은 없었습니다. 걷고 있으니 잠시 멈춰서 사진을 찍습니다.
꽃이 아름답습니다.
"겨울이 없다면 봄은 그렇게 즐겁지 않을 것이다."
그렇겠죠. 단 거 싫어해도 단 맛이 들어가야 맛이 확 살고, 짠 거 싫어해도 적당히 간이 되어야 맛이 있듯 겨울이 있어야 봄도 감칠맛 나는거겠죠...
와룡공원 가는 길은 경사가 심해지자, 미끄럼 방지 페인트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걷기 전에는 몰랐던 세심함 입니다.
학교 후문이 아닌 사잇길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여유로우니 새로운 길을 가보는 것도 설렜습니다.
대학시절 옥류정에 나와 야외스케치 했었는데, 지금은 보수를 거쳐 모양이 좀 변한 느낌이었습니다.
약수터의 모습도 기억과 좀 달라진 것 같고요.
오는 길은 벚꽃이 참 예뻤는데, 학교 안에는 목련도 예뻤습니다.
공기가 아주 좋은 날은 아니었음에도 멀리 보이는 남산도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새삼 학교에서 보는 풍경이 정말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슴이 벅찰 정도로 예쁘다고 느꼈습니다. 너무 예뻐서 학교 뒷산 정자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그 곳이 지상낙원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녁에 학교 친구를 만나, 이 벅찬 감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학교까지 걸어 올라왔는데, 너무 아름답더라는...
친구가 한 마디 해주었습니다.
"수료 하기 전에는 지금같지 않았을꺼야. 과정이 끝나고 종합시험도 끝나고 논문만 쓰면 되니까 그렇게 보였겠지.."
음......
사실입니다.
이 학교에 오간지도 10여년이 넘는데, 그 동안은 학교 과정에 쫓겨 풍경, 자연 경관의 아름다움에 경탄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예쁘네." 라고 하기는 하였으나, 영혼없는 감상이 전부였습니다. 이제 제 마음이 여유로워지니 갑자기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행복했던 거지요. 숙제가 없고, 읽어야'만'하고 발표해야'만'하는 논문의 압박이 없이 남는 시간 동안 산보나 하고, 밥이나 먹고, 주스나 사 먹고 한량처럼 한들한들 학교 이 곳 저 곳을 다니기에 그토록 행복했나 봅니다.
어쩌면.... 연애도 이럴 지 모릅니다.
오랜 시간 보면서도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는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모르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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