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눈물의 쓰나미를 선사하다

첫 장면부터 눈물이 맺히게 하던 영화 '해운대'는 결국 보는 내내 눈물을 훔치기에 바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우느라 퉁퉁부은 얼굴이 창피해 얼른 엘리베이터도 아닌 계단을 이용해 내려와 차에 올라탔습니다. 
영화가 그렇게 슬프냐구요? 그건 아닙니다. 웃기기도 하고 재미있습니다. 배우들이 아니라, 다큐를 보는 듯 진솔하고 재미있는 생활상이 보여집니다. 억지로 감동을 주거나, 울리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눈물이 주루룩 주루룩 흐르는 상황에서도 웃음을 선사함으로써 슬픔에 잠겨버리지 않도록 해줍니다.
그래도 눈물이 납니다. 울면서 웃고, 웃으면서 울게 만들어 버립니다.



영화에 담긴 이야기는 참 소소하고 다양합니다. 쓰나미가 몰려오기 전에 풀어나가는 이야기만으로도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평범한 일상에 쓰나미가 몰아닥쳐 버립니다.



거대한 쓰나미.
당연히 온통 아비규환이 됩니다.



거대한 쓰나미는 순식간에 도시를 폐허로 만들고 사람들을 몰살시킵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만을 선택하게 됩니다.

"나 혼자 살 것인가. 같이 살 것인가.
내가 죽더라도 상대를 살릴 것인가. 어쨌든 나부터 살고 볼 것인가."

성악설이나 이기적인 인간을 믿는 입장에서 본다면, 다른 사람보다 내가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죽어본 사람이 없기에 진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죽고나면 다 소용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부터 살겠다면서 발버둥을 칩니다.

하지만 나와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밖에 살 수 없다면.....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택했습니다.



자신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기를 바라고.....



자신들은 죽더라도 아이만은 살리고자 하고.....



아무 상관없는 남을 위해,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을 위해.....
숭고한 삶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내일이 마지막 날이라도, 오늘과 똑같이 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일이 마지막이라고 해서 너무 아쉬워하고 후회하면서 유별난 일을 한다면, 저의 오늘을 너무 무가치하게 여기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저는 저와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 중에 어느 쪽을 택할것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할 수 있다면 뭐라고 할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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