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생각보다 맛있다, 상큼발랄하게 나이 드는 법을 알려주는 책

나이, 숫자일 뿐이라지만 참으로 신경쓰이면서, 그 숫자에 걸맞는 많은 것이 필요한 숫자입니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던 때인 서른 살을 두 달 앞둔 스물 아홉에, 나이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서른 살이 된다는 것, 30대가 된다는 것이 상당히 두렵고, 나이의 무게가 느껴지고, 서른쯔음에는 이루어 놓은 것도 조금은 있어야 할 것 같고, 갑갑하고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막상 서른 살이 되고 보니,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서른 살은 이래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실제 겪어보면 별 것도 아닌 일이 생각만 할 때는 두렵고 걱정스러울 때가 많은데, 나이도 항상 그런 부분 중 하나인가 봅니다. 서른이 되면서 이런 작은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여전히 나이 든다는 것은 고민스럽습니다.
그래서 저보다 먼저 나이를 드신 분들의 이야기는 큰 도움이 됩니다. 겪어보지 못한 나이를 간접체험할 수 있고, 멋진 역할모델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와 같은 여자분의 나이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도움이 됩니다. '나이는 생각보다 맛있다.' 라는 제목에 '말랑하고, 컬러풀하게 사뿐사뿐 경쾌하게 나이들자!'는 귀에 솔깃한 이야기 입니다.



책소개에서 저자가 상당히 잘난, 잘나가는 여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저자 소개를 읽어보니 샘이 납니다. '부모 잘만나 공부도 웬만큼 했고, 성격도 더럽지 않고, 억울하게 생긴 것도 아니고, 이혼도 안했고, 자식도 있는'이라는 소개가 언뜻 무난하게 들리면서도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풍족한 집에서 편히 잘 자라서, 잘 나가는 남편을 두고 있고, 본인도 잘 나가는 여자가 겸손떠는 것처럼 들려 고까웠던 겁니다.

그러나 다음 장부터 그러한 삐딱한 시선은 깨어졌습니다.
"저는 성공한 여자가 아닙니다." 뚝!
"나는 이렇게 살았다, 그러니 너도 이렇게 살아라, 뭐 이런 책을 제일 싫어합니다." 뚝!
하며 출판제안을 딱 잘라 거절했던 부분부터 이 분 참 매력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노라면 이 분의 매력에 더 빠져듭니다. 쉽고 솔직하게 풀어쓴 이야기가 친구와 수다떠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편안해집니다. 프로필에서 느꼈던 시샘과 잘난여자는 이럴 것이다 하는 고정관념은 금새 사라지고, 재미있고 유쾌한 일상사에 폭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이야기에 저자 역시 우리처럼 재수없다며 흉을 보고, 이웃집 아줌마들처럼 우리네 엄마처럼 시어머니와의 고부갈등에 시달리고, 아들의 사춘기에 고민하고, 직업에 힘들어도 합니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던, 사회적으로 인정받던 받지 않던 간에 기본적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고민이나 부담은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에 많은 공감이 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와 비슷한 저자의 특성에 더욱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뭐에 한 번 꽂히면 정신 못차리는 스타일이고, 새로운 것을 시작은 잘 하는 편입니다.  철제 연필꽂이나 됫박시계에 꽂혀 인터넷 쇼핑몰을 정신없이 뒤졌다는 이야기나 뮤지컬 표를 구하려다 어느 순간에 공연을 보겠다는 생각보다 표를 구하는 일 자체에 빠져들었다는 이야기에 엄청나게 공감했습니다.  거기에 저도 종종 잘 쓰는 "이런, 젠장."이란 말까지... 아주 공감 200%였습니다. ^^

또한 나이에 대해 쓴 책은 무겁고 감상적일 것이라는 고정관념도 깨주고 있었습니다. 이미 서점에는 나이에 관한 책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와있습니다. 몇 살에는 뭘 해야한다는 책들은 그 나이에 걸맞게 해야할 일 목록을 책으로 알려줌으로써 많은 부담을 안겨주고, 나이에 대한 감상이나 경험을 적은 책들은 삶에 대한 철학으로 많은 생각을 던져주어 묵직하게 만듭니다. 특히 나이에 대한 생각을 던져주는 책들은 편집과 문체, 분위기가 매우 차분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첫 장의 원색 페이지들, 개성넘치는 활자편집이 매우 가볍고 팬시한 느낌입니다. 쉰이 다 되어가는 사람의 나이 이야기를 하는 책 치고 너무 책이 통통튀는 느낌인거 같아 어색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개성강한 편집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보기 편하게 글의 단락을 잘 나누어 놓았고, 한 꼭지씩나누어 놓은 이야기가 짧은 듯 하면서도,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명확하고 강하게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사진집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멋진 사진이 많고, 시각적으로도 아주 풍성합니다. 특히 한 이야기의 끝마다 있는 멋진 사진과 본문의 내용을 광고 카피처럼 한 줄로 압축한 페이지가 아주 좋았습니다.

"늙음의 힘은 때론 무난한 삶을 용서해 줄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난 나이드는게 좋다.

나쁜 것, 싫은 것, 무난한 것, 이런 것들을 포용해주는 것, 그것이 나이먹음의 미학이 아닐까?"

이런 식으로 한 이야기 끝에 이야기의 핵심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해주는 것 입니다. 여백이 넓은 그 페이지에서 이야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어 참 좋았습니다.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자의 이야기와 저자의 다이어리, 그리고 저자가 알고 있는 8명의 멋진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의 다이어리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아주 짤막한 일기지만 그 한 두 마디로 참 많은 것을 던져줍니다. 다른 이의 일상사를 몰래 훔쳐보는 재미와 함께 일상의 생각거리를 던져받은 기분이랄까요.
마지막 다른 여성 8명에 대한 이야기는 개성강한 다른 분들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삶의 철학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이야기가 워낙 재미있고 공감백배였는데다가, 책에 실린 8명 중 5명이 저자와 한 회사에 근무하는 광고하는 분들이라 크게 흥미롭지는 않았습니다.


책을 통해 가장 좋았던 점은 나이듦에 대한 부담감을 편안하게 훌훌 털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살라는 방향잡이를 해주는 책이나 이야기는 그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너도 이렇게 살아라' 하는 류의 책을 싫어한다던 저자의 첫 말처럼, 이 책은 "너도 이렇게 살아라"하는 이야기 따위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저 저자의 경험과 생각을 보여주고 들려줄 뿐 입니다. 그 속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독자의 몫입니다. 딱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이야기를 상큼 발랄하게 풀어낸 속에서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주어, 책 중간중간의 생각페이지에 멈추고, 메모장에 한 줄씩 적어가며 고민해보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빚은 늘고 갚을 시간은 줄어든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핑계를 대도 늘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저 열심히 씩씩하게 사는 모습으로 보답할 수 밖에.'

이 부분부터 저는 큰 부담을 벗어던질 수 있었습니다. 참 많은 순간 다른 분들께 많은 덕을 얻고 삽니다. 일상사에서도 블로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에 행복해지면서, 한 편 그 분들께 죄송한 마음도 항상 한자락 가지고 있습니다. 똑같이 갚을 수는 없을텐데, 그저 뭐든 열심히 씩씩하게 하는 모습으로 보답해야겠습니다...
이렇듯 책 구석구석에서 조금은 여유로운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과 자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책의 앞 뒷 표지에 숨어있는 나이는 맛있다는 문구,
이 부분을 발견하고는 왠지 책에서 보물찾기를 한 기분에 한 번 더 즐거웠습니다.
저 컬러풀한 대비처럼 나이듦이 상큼발랄하고 즐거운 일이라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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