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는 안 친다."라는 말에 추가점수 10점은 더 주고 싶고, "당구 300" 이라고 하면 '이 남자 만나면 당구때문에 어지간히 속 타겠구나...'하는 그림이 그려질 정도로, 남자의 당구사랑은 여자를 힘들게 합니다.
한 번 시작하면 쉽게 끝나지 않고, 나 만나기 전에 기다리기 지루해서 잠깐 당구장에 갔다고 하면 그 날은 제 시간에 만나기는 틀렸다고 보는 것이 속 편하며, 친구때문에 당구장 잠깐 들려가자고 해도 그 이후 스케줄을 없어진다고 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고,남자친구가 져서 당구비라도 잔뜩 무는 날이면 옆에서 비위맞추느라 힘듭니다. ㅠㅠ
당구장에 여자친구는 왜 데리고 가는걸까?
처음에는 여자의 호감을 얻으려고 당구장에 잘 데리고 가지도 않고, 당구장에 가도 여자도 함께 할 수 있는 포켓볼 같은 것을 치며 놀아줍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 포켓볼은 커녕 여자친구는 당구장의 병풍이 됩니다. 몇 시간을 할 일도 없고, 담배연기는 자욱한 곳에 앉아있으려면 보통 고역이 아닌데, 알면서도 여자친구를 옆에 앉혀놓는 것은 왜 일까요?
1. 자랑및 솔로에게 염장
"난 여자친구도 있다." "난 늘 여자를 데리고 다니지. 우후훗." 하는 과시욕입니다.
여자친구가 예쁘지 않고 딱히 내세울 것이 없다해도, 당구장에서 화내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 만으로도 남자들 사이에서는 성격좋은 여자친구를 두었다며 부러워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2. 두 가지 일 동시에 해결
여자의 입장에서는 당구장에 가는 것은 절대 '데이트'가 아닙니다.
그러나 남자의 입장에서는 어쨌거나 '같이 있는 시간'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친구도 보고, 당구도 치고, 여자친구도 보고(옆에 앉아있어서 쳐다볼 수 있으니..), 1석 3조인 겁니다.
당구장에 따라가야 하는 여자, 왜 그리 힘들까?
남자도 예상하듯 우선은 심심하고, 당구장에 있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담배연기에 훈제가 되어 싫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더 힘든 것은 기다리는 막막함과 힘들어도 내색해도 안 좋은 상황입니다.
1.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막함
같은 시간을 기다려도 예상되는 시간이 있으면, 기다리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당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게임이 어떻게 전개될 지 알 수 없고, 남자들의 승부욕에 불이 붙으면 더 합니다. 남자친구는 맺고 끊음이 분명한 스타일이라 해도, 같이 치는 친구는 자기가 지면 이길 때까지 상대방을 놓아주지 않는 스타일이라면 더 합니다. 남자친구라도 눈치껏 상대방이 기분나쁘지 않게 져주고 끝내면 좋으련만, 남자의 승부욕은 양보가 없습니다. 한 쪽이 다 털려야 끝이 나는데, 돈이 없어도 외상까지 해가면서 "한 판 더!"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외상한 뒤에 그 당구장 안 가더라는..)
2. 짜증내면 지는 상황
여자친구가 부럽다는 친구들의 찬사와 기다려줘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려면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아무리 짜증이 나도 남자친구의 바가지를 긁지 않고, 예능프로 병풍처럼 표정관리를 하면서 앉아있어야 합니다. 온 얼굴에 짜증나서 죽을 것 같다, 니가 치고 있는 큐대를 뺏어서 너를 치고 싶다, 당구공으로 헤드샷을 날리고 싶다는 심정을 고스란히 표출하면 절대 안 됩니다. 기다리는 것도 고역이지만, 기다리다 힘든 것을 그대로 내색하면, 함께 당구치는 친구들은 "그럴거면 왜 따라와서 사람 불편하게 하냐"는 눈치를 주고, 남자친구는 "그까짓 것도 못 기다려주냐"면서 고마워 하지도 미안해 하지도 않고, 옆에 방긋방긋 웃으면서 기다리는 다른 남자의 여자친구라도 함께 있으면 비교까지 되니 더 속이 탑니다.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하면, 표정관리를 못하면 기다려서 힘들었던 수고가 날아가기때문에 표정관리까지 하고 앉아있어야 합니다.
3. 남자들의 세계
여자가 당구를 좀 친다고 해서 껴주는 것도 아닙니다. 남자들의 세계는 절대로 넘보지 말라던 김동률의 노래처럼, 당구는 단순히 함께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남자들끼리 당구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우정의 장이자, 한치의 양보도 없는 승부의 장 입니다. 그 사이에 여자가 껴서 함께 치는 것에 별로 내켜하지를 않습니다. 못 치면 못 쳐서 껴주지를 않고, 여자가 너무 잘 치면 잘쳐서 남자자존심을 상하게 하기 때문에 껴주지를 않습니다. 남자가 원하는 역할은 '미소짓는 병풍'겸 '치어리더' 입니다. ㅡㅡ;;
4. 불편한 다른 남자의 여자친구
다른 남자의 여자친구가 함께 있으면, 당연히(?) 여자끼리 놀아야 합니다. 친한 사이라면 심심하던 차에 참 잘 된 일인데, 불편한 사람과 함께 몇 시간을 나란히 있으려면 그게 더 괴롭습니다. 차라리 혼자 앉아있으면 신경이나 안 써도 되는데, 뚱하거나 공통화제가 절대 없거나 마음에 안들거나 하는 여자와 있는 것이 더 고문입니다.
5. 처음엔 고맙다더니 이젠 당연
처음에는 여자친구가 기다리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기도 하고, 고마워하고, 몇 시간을 응원하며 기다려주는 여자친구가 있는 자신은 행운아라고 하던 남자라도, 점점 당연해집니다. ㅡㅡ;;
남자는 좋고, 여자는 힘든 당구,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장 간단한 해법은, 당구장은 여자친구와 함께가지 않는 것 입니다. 데이트하는 날 친구가 전화온다고 뽀로로 여자친구를 데리고 당구장으로 가게 되면 싸움의 씨앗이 될 뿐 입니다.
만약 여자친구를 데리고 당구장에 가야하는 상황이었다면, 여자친구가 놀만한 것에 조금이라도 배려를 해주면 좀 낫습니다. 그 시간에 PC방에 다녀오라고 하거나, 근처에 좋아하는 장소(카페, 쇼핑장소, 서점...)가 있다면,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곳에 보내놨다고 해서 마음놓고 네 시간이고 다섯시간이고 기다리게 하면 곤란합니다. 당구장에서 기다리고 나면, 다음 코스는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최소한 당구장에서 기다리면 보답이 있다는 생각에 좀 덜 힘들 수 있습니다.
여자친구를 데리고 당구장에 다니는 것도 문제일 수 있지만, 혼자 당구장에 가도 전화해서 뭐라고 하는 여자도 문제입니다.
말릴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 하다고 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당구 좋아하시는 분들은 쉰, 예순이 되시도록 당구장에 집에서 깨어있는 시간보다 더 오랜시간 머무르십니다. 이유도 그럴 듯 한 것이 과거에는 당구장이라고 하면 건달대기실 같은 이미지도 적잖이 있었지만, 요즘은 국제경기가 열리고 프로선수들의 멋진 모습이 많이 비춰지다보니, 당구가 엄연한 스포츠라는 인식이 큽니다. 당구치면서 당구대 주변만 돌아도 지구를 몇 바퀴 도는 것과 같다고 할 정도로, 당구치면서 걷는 운동량은 상당합니다.
그리고 치밀한 각도와 당구공의 운동량에 대한 계산으로 물리, 수학을 아우르며, 상대방의 수와 성격을 읽는 전략까지 생각해야 하는 두뇌개발에 도움이 많이 되는 일 입니다.
거기에 더불어 친구들과 어울려 욕과 근황을 나눌 수 있는 친목의 장이기도 합니다.
담배처럼 몸에 해롭다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도, 담배 끊으라고 하면 담배가 정신건강에 주는 이점과 담배를 오래 피우다보면 몸이 적응을 하여 독성을 극복하는 능력이 생기다며 버티기도 하는데, 당구는 그렇게 분명한 단점도 없어서 더 말리기 힘듭니다.
당구 자체의 장단점을 떠나 더 중요한 것은 심리적인 결합입니다. 이미 당구는 남자친구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 여자의 쇼핑, 네일아트, 구두사랑 등과 같은 것처럼 일이 장단점을 떠나, 자신이 너무 좋아하고 즐기는 기쁨조 중 하나가 당구인 것 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따라오는 여자친구를 위한 간식과 만화책 200권을 구비한 센스만점 당구장이라면 그 곳에서 주는 간식 집어먹으며 만화책이라도 독파하면 되고, 철저한 아저씨중심 설계로 다방아가씨가 앉을 쇼파는 있지만, 여자친구가 앉아있을 의자도 마땅치 않은 곳이라면, 스스로 즐길거리를 찾아야 합니다. 시간 잘 가는 책 한 권을 가지고 가거나, 핸드폰 배터리 완충해서 게임을 주구장창 하거나, 시간 참 잘가는 블로깅에 트윗질도 괜찮습니다.
혼자 놀만한 것이 없고, 재미없어도 쳐다보면서 응원을 해줘야 좋아하는 남자친구라면 이 기회에 당구를 배워보는 것도 좋습니다. 한 당구장 사장님 말씀에 늘 남자친구를 따라다니면서 보다보니 당구를 보는 눈이 생기면서 큐대를 잡자 금세 300이 되었다는 사례도 있습니다. 보통 당구 300이 되려면 당구장에 바르는 돈도 그만큼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내 돈 들이지 않고 당구 고수가 될 수 있는 길 입니다. 300까지 되지는 않더라도, 가락이 뭔지, 쿠션이 뭔지, 어떻게 맞춰야 비싼 건지, 싼 건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공을 치고 어떤 부위를 쳐야 하는지, 옆에 앉아있다보면 주워서 배우는 것이 꽤 많습니다. 고스톱판에서 심부름으로 시작하여 타짜가 되는 과정과 비슷할지도.
+ 자매품: 남녀의 다른 쇼핑방식, 어떻게 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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