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CJ 토월극장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감상 데이트
BC카드에서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티켓을 R석도 50%에 구매할 수 있게 해준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오랫동안 미뤄두던 뮤지컬이었습니다. 브로드웨이에 가서 봐야 될 것 같은 뮤지컬같아서 한국 공연이 시시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그러나 R석도 50%에 구입할 수 있게 해준다는 BC카드 할인의 유혹에 결제 버튼 근처로 손을 가져다 대면서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캐스팅 일정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남경주 박해미 김영호 홍지민 등이 출연합니다. 남경주와 박해미의 무대가 무척 기대가 되었습니다. 눈이 번뜩 뜨여서 스크롤을 막 내리고 있던 차에, 행운의 전화가 왔습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티켓이 있는데 볼거면 선물해 준다는 전화였습니다. 브라보!!!!! 오늘 웬 일 이래! ♬ 신바람이 났습니다.
룰루랄라~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은 처음인데, 와보니 그냥 토월극장이 아니라 CJ토월극장이었습니다. 아... 그래서 CJ다니시는 분이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티켓을 선물해주셨나봐요. 아무튼... 정말 감사합니다!
선물해 주시는 것만으로 고마운데, "혹시 S석은 아니죠?" 라고 묻기가 부끄러워 좌석에는 큰 기대를 안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R석 중앙이라 매표소 앞에서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까아!!!! R석 정중앙이에요!
앞으로 티켓 선물해주신 분과 더 친하게 지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으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 좋은 좌석 덕분에 2배로 조증이 심화되었습니다. 제 나름의 지론(?)은 뮤지컬의 감동은 좌석의 거리와 정비례 한다는 것 입니다. R석, S석, A석 등을 경험해 본 결과 좌석이 멀면 멀수록 앞사람 머리 때문에 무대가 가려져 짜증나는 상황도 많고, 배우들의 얼굴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교감이 힘들었습니다.
R석 정중앙 좋은 자리에 콧노래를 부르며 2층 입구로 향했습니다.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은 아주 컸습니다. 당연히(?) 하나의 작품만 공연될거라고 생각했는데,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뿐 아니라 뮤지컬 드라큘라도 공연되고 있었습니다. 드라큘라 주연은 류정한 사마, 김준수 등입니다. 함께 간 선생님 말씀, 제가 류정한 사마를 몹시 좋아하기 때문에, CJ토월극장 공연에 함께 가자는 이야기를 듣고 드라큘라 보러 가는 줄 알았었대요. ^^;;
문화생활 즐기러 올 때는 작품 자체도 중요하지만 공연장도 중요합니다. 공연장 시설이 좋고 크면, 품격있는 문화생활을 즐긴다는 만족감이 더 커지는데, 공연장이 협소하고 시설이나 서비스가 형편없으면 10만원짜리 티켓이 아까워집니다. 타임스퀘어 CGV아트홀 같은 상황은 그냥 멀티플렉스 온 기분에 조금 덜 즐겁기도 하고, 디큐브 아트센터처럼 뮤지컬 보고 나서 문을 다 잠궈놔서 계단으로 1층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삽질을 하게 만들고, 공연보는 내내 어디선가 튀김 냄새가 올라와도 속상하고요.
CJ토월극장은 우선 웅장한 홀에서 고품격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만족감을 담뿍 주는 공간이었습니다. 공연장 평론가라도 되는 듯, CJ토월극장을 살펴보다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브로드웨이 무대하면 떠오르는 빨간색 벨벳 커튼이 웅장하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좌석 간격이나 앞 뒤 높이도 괜찮습니다.
속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한 탭댄스 군무
CJ토월극장 시설에 많은 관심을 갖으며 둘러보았던 것은...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적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볼까말까 하던 차에 티켓 선물을 받아서 신이나서 오기는 했지만, 그냥 외국 원작을 어설프게 따라한 수준이 아닐까 못내 걱정이 되었습니다. 기대감이라면, 박해미의 뮤지컬 무대를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박해미 주연의 뮤지컬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정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무대의 막이 오르고 나서, 탭댄스 군무를 보는 순간 저의 오만한 편견을 바로 던져버릴 수 있었습니다. 한국 떼창 군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탭댄스 군무의 위엄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공연 중에 사진 촬영 불가이기 때문에 아래 사진은 보도자료로 배포된 것들에서 가져왔습니다)
저는 탭댄스 군무를 처음 보았습니다. 영화나 유튜브 동영상같은 것으로나 보았을 뿐, 눈 앞에서 수 십명이 탭댄스를 추는 장관을 처음 본 것 입니다. 탭댄스를 추며, 수 십명이 똑같은 박자로 무대를 굴러서 내는 딱딱소리는 그 어떤 음악보다 감동적이었습니다. 누구 한 명이라도 박자를 놓치거나 틀리면 나올 수 없는 무서운 하모니였어요. 시작과 동시에 엄청난 탭댄스 군무의 위엄을 보여주더니,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계속해서 세계 제일이라는 이야기까지 듣는 한국의 떼창, 군무의 위엄을 톡톡히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브로드웨이의 탭댄스 군무 장면, 옛날 영화에서 한번쯤 보았던 것 같은 장면입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며 화려하다고 느끼던 것과 내 눈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은 정말 달랐습니다. 간혹 도로에서 명차의 땅을 진동시키는 중저음 엔진소리를 들으면 그 진동과 소리 때문에 가슴이 뛰는 느낌이 드는데, 탭댄스 군무도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수 십명이 복사 붙여넣기라도 한 듯 딱딱 맞추어 추는 군무 자체가 소름 돋는데다가, 무대를 쿵쿵 울리는 탭댄스 박자 소리에 심장이 뜁니다. 탭댄스 군무는 시원하게 쿵쿵 딱딱 발을 구르는 것이 뭔가 답답한 속을 뻥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속이 시원해요!
저는 탭댄스 군무, 주연배우들의 탭댄스 독무와 커플댄스를 본 것만으로도 격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박해미 뮤지컬, 과연 박해미! 김영호 최우리 이충주 매력 폭발
박해미가 직접 탭댄스를 추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박해미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한물간 왕년의 스타 도로시 브룩 역을 맡고 있었습니다. 뮤지컬 제작비를 대주는 물주 사업가를 꼬셔서 10여년 만에 주연으로 다시 무대에 서게 된 여자 역할이었습니다.
실제로 보니, 박해미 포스는 엄청났습니다. 극장을 휘어감는 또랑또랑한 목소리와 사람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연기를 너무 잘하다 보니, 도로시 브룩이 박해미의 실제 모습일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줄거리는 흔한(?) 마돈나 탄생기 입니다. 뮤지컬의 원산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유명한 연출가 줄리안 마쉬가 <프리티 레이디>라는 새 작품을 만듭니다. 그러나 이들은 돈이 없죠. 이들이 떠올린 꼼수는 부자 애인을 둔 왕년의 프리마돈나 도로시 브룩을 출연시킴으로 인해 도로시 브룩의 애인으로부터 10만달러를 투자 받는 것 입니다.
도로시는 부자 애인의 빽을 가지고 들어오나, 노래도 시원치 않고, 왕년의 프리마돈나이기는 하지만 뭔가 좀 아쉽습니다. 새로운 주연을 쓰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인데 공연을 이틀 남긴 시점에서 넘어져 발목 골절로 깁스를 하게 되어 버립니다. 주연 여배우가 사라진 시점에서 공연은 개막도 못 한채 끝나고 투자자도 연출자도 출연자들도 모두 개털이 될 상황에서 코러스 중의 한 명이었던 페기 소여가 극적으로 도로시 브룩의 역할을 해내면서 새로운 스타가 탄생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얼개로 보면 오페라의 유령 초반부와도 비슷하고, 이런 스토리가 이제는 좀 흔해진 것 같습니다. 브로드웨이 42번가가 원조인데, 그 아류작이 많아져서 익숙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
도로시 브룩이 부상당해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었을 때 줄리안 마쉬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도로시가 워낙 능숙해서 연기를 쉽게 쉽게 해 내니까 쉬워 보이는 것이지, 초짜가 한 순간에 그렇게 할 수는 없어!"
라는 말 입니다. 정말 박해미는 딱 그랬습니다. 원래 도로시 브룩인 것처럼. 원래 성격이 저럴 것처럼 너무 자연스럽고 매력적이었습니다. 약간 재수없는 여배우 같으면서도 순정파에 따뜻한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악역이 없습니다. 악역, 못된 사람으로 인한 갈등이 없어 좀 더 즐겁고 편안한 뮤지컬이었습니다.
김영호의 연기 또한 일품이었습니다. 저는 원숙한 배우들의 주연 뮤지컬 무대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분들의 무대는 뛰어난 연기력이 뒷받침되어 우러나는 편안함이 있었습니다. 김영호가 아니라 줄리안 마쉬 같아요. 원래 성격이 저럴 것만 같이 느껴져요. 무척 편안하면서도 점점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는 억지 웃음코드가 거의 없었습니다. 빌리 로러의 오버 정도를 빼고는 웃기기 위해 일부러 극의 흐름을 뚝 끊어가면서 드립을 치는 것이 없고, 담백한 뮤지컬이었습니다. 그러나 중간 중간 살다가 일어날 법한 장면들에 그냥 웃깁니다. 김영호의 줄리안 마쉬 개그 코드도 고급스럽고 유쾌했어요. 전혀 웃기려고 하는 것이 아닌데 그게 가끔 웃깁니다.
박해미 김영호의 포스도 대단했고, 젊은 배우들 이충주와 최우리도 멋졌습니다. 저는 이충주, 최우리의 무대도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이충주의 가창력과 박기웅을 닮은 외모도 매력적이었고, 최우리 역시 가창력도 뛰어나고 비쥬얼도 좋은 배우였습니다. 앞으로 이 분들이 나오는 뮤지컬은 믿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박해미 김영호 최우리 이충주 기억해 두겠어요. +_+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또 다른 특징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이고, 어디가 극중 공연인 <프리티 레이디>인지 약간 애매모호한 점이었습니다. 공연이 시작한 것 같은데 아니고, 끝난 것 같은데 끝나지 않았어요. 마지막 커튼콜도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커튼콜이었습니다.
한국 떼창 군무의 위엄을 제대로 보여주는 탭댄스 군무와 떼창의 위엄하며, 주연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력과 가창력, 억지드립없이 편안하게 할 이야기 위주로 빠르게 전개되는 줄거리가 어우러져 정말 근사한 공연이었습니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보지 않아서 섣불리 단언하기 어려우나, 한국판 42번가는 한국 강점이 고스란히 있는 볼거리 제대로인 뮤지컬로 탄생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버전은 그냥 그럴 것 같다며 섣불리 예단했던 것이 무척 후회되었습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 너무 감동하자.... 함께 본 선생님이... "왠지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보겠다고 미국 가실 듯... " 이라셨는데, 정말로 나중에 브로드웨이에 가서 이 뮤지컬을 보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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