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병원 가보라는 조언 듣는 환자 심정
의료사고나 하지 않아도 되는 수술을 한 경우를 보면서, 큰 수술이나 시술을 할 때는 여러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진으로 인해 잘못 되신 분들 사례를 들으면, 그러게 왜 여러 병원에 가보지 않았는지 답답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많은 일들이 직접 겪어보면 다르듯, 병원 여러군데 가보라는 말도 직접 겪어보니 참으로 속없는 소리였습니다.
무시무시한 진단비 부담
당사자가 아닐 때는 "큰 수술이나 시술 비용이 얼마인데 진단비를 아끼느냐"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제가 받으려니 진단비가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치아교정 받기 위해서 여러 병원 가보려고 하니, 치아 교정 정밀 상담을 받는 비용이 2~30만원 정도 였습니다. 적은 비용이 간이 상담을 해주는 곳도 있었지만, 많은 치과는 "교정이 가능한지 어떨지 우선 검사를 제대로 받아보셔야 해요. 검사 비용은 20만원 이에요."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나마 치아교정은 양반이었고, 디스크 초기 증상으로 진단 받는 친구들을 보니 "의사 선생님, 제가 목이 너무 아파요. 어깨가 안 움직여요." 라고 하면 검사비 50만원, 70만원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선 기초 진단 하고 엑스레이 찍고 엑스레이 상에서 뭔가가 안 나오면 정확히 보기 위해 MRI 찍어야 한다고 하는 수순으로 가더라고요. 병원 여러 곳 가면 진단비 때문에 지갑도 아파져요...
시간 부담
진단비도 진단비인데 시간은 더 힘들었습니다. 그냥 가서 바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은 별로 없습니다. 특히 의사 선생님이 잘 본다고 소문난 곳들의 경우에는 예약이 빡셉니다. 그래서 일정 다 빼고 그냥 선생님 시간에 맞춰야 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여기서부터 시간 조정이 부담스러운데, 검사라는 것이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병원에서 검사를 하면 그 검사 결과가 바로 나오는 것이 있고 아닌 것들이 있습니다. '정밀' 진단의 경우 당일에 결과가 다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한 번 예약하기도 힘들었던 선생님에게 맞춰 1~2주일 후에 다시 가야 합니다.
종합병원의 경우 예약을 해도 무의미한 곳이 태반입니다.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는데, 예약시간이 되도 하염없이 병원 복도에 앉아 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서 의사선생님 만나면 2분 이야기하고는 나가서 결제하고 오라고 하고, 결제해서 종이 쪽지 간호사 선생님 갖다 드리면 또 다시 복도 의자에 앉아 기다리라고 합니다. 기다리고 있으면 검사실에서 부르고, 검사 받고 나오면 뭔가 또 결제하라고 하고, 한참 걸어가서 결제하고 와서 종이쪽지 보여주면 또 복도에 앉아 기다립니다. 의사선생님과의 대화는 2분 정도 밖에 안 되지만, 밖의 복도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2시간 우습게 흘러갑니다.
즉, 병원 한 군데 상담을 받아보는 것 만으로 예약하고 기다리는 시간 며칠 + 검사 받는 당일에 몇 시간 + 정밀 검사 시 결과 나오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 + 다음번 선생님 시간 나는 날 맞춰 찾아가 정밀 검사 해설 듣는 시간 등이 들어갑니다. 족히 2~3주가 훌쩍 가고, 중간에 의사선생님 학회 있거나 뭔가 행사 있으면 한 두 달도 지나갑니다. 병원 한 군데 다녀오는 것 만으로도 시간 압박이 너무 크다보니, 병원 여러 곳 가보라는 말은 듣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지는 말이었습니다.
체력 부담
가장 괴로운 것은 어느 병원을 가나, 이전 병원에서 했던 과정을 똑같이 다시 한다는 겁니다. 이전 병원에서 엑스레이 찍은 자료 들고 가면 된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저의 경험으로는 그걸로 해결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의사선생님마다 보는 부위나 방식이 다른지, 엑스레이 보다가 '왜 이 사진은 없지?' 이러면서 다시 찍으라고 하시더라고요.
결국 어딜가나 처음부터 다 다시 해야했어요.
별거 아닌 것 같으나, 병원에 갈 때는 이미 몸 상태가 썩 좋을 때가 아니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 과정에서 진이 빠지고 기다리느라 진 빠지고, 이리 찍고 저리 찍고, 피 빼고 피 또 빼고 하는 과정에서 진이 빠집니다. 치과의 경우 틀을 뜰 때 입안 가득 역겨운 젤리 같은 것을 집어 넣고 떼어내는데 그것도 싫었어요.
"검사 받는데 진 빠진다"며 병원 다녀오면 녹초 되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으니 병원 다녀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이해를 못합니다. 치료 받으러 가는데 병원 갔다와서 왜 더 아픈지 잘 몰라요. 나름 열심히 이해해 보려고 애쓴 것이, 병원에 아픈 사람이 많이 오니까 병균 옮아서 아픈 건 줄 알아요. 과정 자체가 진이 빠진다는 것은 절대 이해 못하는 듯 했습니다.
정서 부담
광고나 TV에서는 친절하고 전문적인 선생님이 애정어린 상담을 해주지만, 현실은 아닙니다.
만면에 미소를 띄고 친절하게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진정성있는 상담을 해주시는 의사 선생님은 참으로 드물고, 현실은 대체로 영혼없는 컴퓨터 같습니다. 무엇을 입력하든 같은 답을 하는 시리처럼 "선생님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건가요?" 라고 하면 "스트레스 받으셔서 그래요." 또는 "면역력이 떨어지셔서 그래요." 라고 하고, "무리하지 마시고 쉬세요." 라고 합니다.
동네 병원에서 이러는데는 이력이 났으나, 진단 받으러 조금 큰 병원을 간 상황에서도 이럴 때는 참으로 답답합니다. 우선 정밀 진단 받으라고 하면 환자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결과 안 좋게 나올까봐 굉장히 무서운데, 의사 선생님의 표정은 '죽을 병도 아닌데 오바한다' 이런 느낌이라 너무 공감 안 되는 벽 느낌이거든요.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워낙 심각한 환자를 많이 보시니 어쩔 수 없겠지요. 의사선생님들도 사정이 많으신 것은 압니다. 그러나 사람은 상대의 입장보다 우선 내 입장이 중하다 보니, 의사선생님 사정은 사정이고, 처음으로 아파서 병원 찾아갔는데 의사선생님이 너무 성의없이 대충 이야기하는 것 같아 화도 나고 섭섭하기도 하고, 결과 안 좋을까봐 겁도 나는 멘붕 상태가 됩니다.
한 줄 요약하자면, 병원 한 곳에서 진단 받는 것 만으로도 돈, 시간, 체력, 마음이 탈탈 털려서, 다른 곳은 가고 싶지도 않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주변에서 "뭐? 수술해야 한다고? 그럼 병원 여러군데 가봐야지." 라거나 "많이 아픈거 아냐? 병원 한 군데만 가보지 말고 여러 군데를 가봐. 병원에 따라 진단이 다를 수 있잖아." 라는 말을 하면 너무 속 모르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병원 여러군데 가서 교차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기는 하나, 검사 받는데 진 빠지고 돈 들어가고 시간 들어가고 심리적으로 너무 괴롭다는 것에 대해 까맣게 모르는 이야기 같아서요.
주변인이 아프다거나 수술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 "병원 여러군데 가봐야지. 한 군데만 가보고 수술하면 어떻게 해?" 이런 소리보다, "잘 치료되길 빌게." 또는 "뭐 먹고 싶은거 없어? 맛있는 거 사줄게." 라고 하는 편이 훨씬 감사한 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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