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발생 이후 2달 동안 경복궁 북촌 일대 근황
메르스 여파로 중국인 관광객들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매주 북촌, 경복궁에 가다보니 그 말이 피부로 와 닿습니다. 한 주 한 주 메르스 후폭풍이 눈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메르스 발생 첫 주, 5월 마지막주 북촌
메르스 발생 첫 주와 둘째 주만 해도 북촌 한옥마을 어귀의 CU 편의점 앞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꽤 있었습니다. 예전처럼 관광버스가 줄지어 서 있지는 않았어도 몇 무리의 관광객들이 있었습니다. 그걸 보며 '메르스 때문에 한국 관광 취소한다더니 중국인 관광객만 많네.'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메르스 발생 전에 한국에 들어와서 미처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6월 첫째주 북촌
북촌 한옥마을의 자치동갑 국악원에 앉아 있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대화가 끊긴 순간,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습니다. 째깍,째깍.
자치동갑국악원이 있는 한옥마을 골목은 '거주지역이니 조용히 해달라'는 표지판이 무색하도록 시끄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꺄르르 비명을 질러대며 기념촬영을 하는 사람들, 또각또각, 쿵쿵 거리는 발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메르스 덕(?)에 중국인 관광객은 물론이요, 한국인들도 사라져서 시계 초침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습니다.
시계 초침소리가 들릴만큼 사람이 안 보이니, 메르스가 정말 위험하긴 한가보다 싶어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무서울 정도로 사람이 없는 조용한 북촌을 걷다가, 북촌 명품 떡볶이(이름만...;;;)에서 떡볶이를 한 접시 먹었습니다. 먹는 동안 사장님이 하시는 이야기를 들으니, 메르스 발생 첫주에 손님이 '반토막'이 났고, 그 사람들이 떠난 뒤로 새로 오는 사람이 없어 그들이 떠나고 난 뒤로는 개미도 안 보이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나마 떡볶이집 사장님은 근처 초등학생과 마을 사람들이라도 오지만, 상인들은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떡볶이를 먹고 나오는 길에 보니, 크레페집과 카페 몇 곳은 문을 열지 않고 있었습니다.
6월 마지막주 북촌, 경복궁 인근
메르스에 대한 공포심도 줄어들고, 사람도 적어 평화로웠습니다.
거주하시는 분들도 1박 2일 촬영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고요함이라고 합니다. 이런 고즈넉함이 좋아 북촌으로 이사를 왔는데 1박2일에 소개되고 난 뒤로는 이 곳이 거주지라는 것은 까맣게 무시한 채 관광지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어 생활하는 것도 힘들 때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관광객들이 거주자 우선주차구역에 불법주차를 한 뒤에 몇 시간씩 사라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주말이면 집 앞 화단에도 테이크아웃 컵, 과자 봉지들을 마구 버리고 간다고 합니다. 더욱 불편한 점은 주말에 집에서 좀 쉬고 싶은데, 관광객들이 호기심에 한옥집 대문 틈으로 마당을 엿보고, 까치발을 들어서 창문 안을 엿보는 통에 불편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문을 열고 들어와 남의 집 마당에 앉아 사진을 찍는 경우도 잦다고 합니다. 북촌 한옥마을은 사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주지역인데, 놀러온 사람들 눈에는 그저 사진촬영장소일 뿐이지요...
아주 오랫만에 조용하고 평온한 북촌이었습니다.
경복궁 인근도 관광객이 없는 것은 비슷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 집회를 막기 위한 경찰차들만 한 무더기 있었을 뿐, 원래 저 자리에 있던 관광버스들은 오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7월 둘째주 북촌
북촌 어귀의 관광안내센터 근처에서 아주 가끔 유럽 관광객 2명~4명 정도가 눈에 띌 뿐 중국인 관광객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모처럼 눈에 띈 외국인 관광객은 유럽인 노부부로 아들, 며느리 때문에 한국에 방문한 분인 듯 했습니다. 아들(외국인)과 한국인 며느리가 인근에서 일을 하는지 정장 차림에 사원증을 목에 걸고 외국인 노부부를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관광객의 특징을 다 기억할만큼 외국인 관광객이 보이지 않습니다.
관광객들을 겨냥하고 생긴 길거리 음식점들도 한산했습니다. 이가신가와 백년토종 삼계탕 앞에는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셀카봉을 파는 노점상이 있었는데, 노점상은 아예 사라졌습니다.
외국인들이 버글거리던 돈미약국 옆 점포도 한산합니다.
그나마 7월이 되고 메르스 현재 상황이 괜찮아 졌다는 보도가 나오고, 학생들이 방학을 하니 한국인 나들이객이 조금 늘어났습니다.
그나마 한국인 나들이객이라도 있는 북촌과 달리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많던 경복궁 근처는 황량하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관광버스가 단 한 대도 안 보입니다. 휑.....
7월 셋째주 경복궁 인근. 메르스 이후 문 닫은 가게들
급기야 셋째주에는 아예 문을 닫았습니다. 중국인 관광객들을 주요 고객으로 하던 곳들인데 가게를 열지 않았습니다.
중국인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아송회관 1층에는 임대 현수막도 걸려있습니다.
아송회관도 임시휴업중입니다.
7월 넷째주 경복궁 인근
한 주 뒤에 보아도 여전히 임시휴업 중이고, 중국인 관광객은 그림자도 안 보입니다.
이곳은 중국인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한자로 '무단횡단 금지' 현수막이 붙을 정도로 북적대던 곳이었습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 앞에 관광버스가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고 이 앞에 무리지어 있는 중국인들 틈바구니로 비집고 지날 때면 중국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주던 곳이었는데, 메르스 여파로 중국인 관광객이 완전히. 싹. 사라졌습니다.
인근의 카페는 메르스로 인한 관광객 감소 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문을 닫았네요...
메르스 여파로 중국인 관광객이 사라진데 대한 저마다의 입장
보통 사람들
"좋다!!!" 드디어 쾌적해졌다!"
"명동에 가도 중국인이 없으니 살 것 같다. 주말에 롯데 백화점에 갔는데도 중국인이 없더라!"
"동대문에 가도 좋다."
"북촌에 가도 좋다."
북촌 경복궁 주민들
메르스 발생 초반에는 좋았는데, 메르스가 잠잠해지고 방학을 하면서 한국인 나들이객이 늘어나니 다시 예전 같다고 합니다.
중국인 관광객들의 단체 관광 버스도 시끄럽지만, 한국인 나들이객의 몰지각한 행동이 더 만만치 않다고 하네요..... 불법주차 후 아몰랑, 쓰레기버리고 아몰랑, 남의 집 화단 막 망치면서 사진찍고 아몰랑, 꺅꺅 소리지르고 아몰랑...등등.... ㅠㅠ
중국인 유학생들
"메르스 발생 이후, 기말고사도 포기하고 중국으로 돌아간 친구들도 있어요."
한국에서는 크게 보도되지 않았지만 중국과 해외언론에서는 한국의 메르스 발생 현황의 심각성이 크게 다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자녀를 유학 보낸 부모님들 가운데는 한 학기 등록금보다 자녀의 목숨이 더 귀하니 기말고사를 포기하고 귀국시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생활중인 중국인들
중국 친구들은 한국에 있다가 죽는다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오라고 연락을 하고, 한국 친구들은 중국 짱개들 꺼져서 좋다고 한다고 합니다. 한국이 좋아서 한국에 있는 중국인으로서 중간에 껴서 입장이 여러모로 불편하다고 합니다.
중국 친구가 걱정하는 것처럼 위험하지 않은데, 거기 있다가 죽는다고 하는 것도 참... 답답해서, 중국 친구들에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이 위험하지 않다'는 홍보영상이라도 제작해서 보여주고 싶을 지경이라고 합니다.
중국인이 사라졌다고 너무 좋아하는 한국 친구들에게도 "중국인 관광객이 없어지고, 중국인 관광객 상대로 하던 가게가 문닫고, 그러면 일하던 사람들 일자리도 사라지고, 결국 누군가의 엄마 아빠는 실업자가 되고....." 와 같은 악순환에 대해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영업자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쩌다 중국인 관광객은 불편(?)한 존재가 되었을까?
저는 사람없는 북촌과 경복궁을 애정하는 '보통' 사람인지라 중국인 관광객이 없어져서 쾌적한 것이 좋긴 합니다. 그러나 한 주가 다르게 문닫는 가게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분명 한국에 많은 관광객들이 오면 좋은 일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다가 그들이 사라져서 좋아하게 된 것인지 그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한국에서 생활중인 중국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여행사의 상술이 큰 원인이라고 합니다.
북촌, 경복궁 등지에 중국인 관광객이 많은 이유는 공짜이면서 쇼핑센터와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북촌 한옥마을은 관람료가 없기 때문에 가는 것이고, 경복궁에 가도 입장권을 사지 않는다고 합니다. 경복궁 입구에서 한복을 입은 수문장들과 사진만 찍게 한 뒤에, 중국인 관광객들을 싣고는 곧장 동대문, 또는 은평구, 서대문구, 동대문구 등지의 외국인 전용 쇼핑몰(화장품, 고려인삼 판매점 같은 곳...)들로 이동을 한다고 합니다. 공짜로 겉을 구경할 수 있으면서, 북촌, 경복궁에서 각처의 쇼핑몰로 이동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 필수 코스처럼 데리고 왔던 것 입니다.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도심 생활지역에 관광버스들로 길이 막히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우르르 우르르 나타나니 불편한 것이고, 중국인 관광객들은 그들대로 한국관광 정말 별로라고 한다고 합니다. 볼 것도 없고 계속 쇼핑만 시킨다고... 다시 오고 싶지 않다고...
마치 수년 전 한국에서 동남아 단체관광가서 여행코스에 강제 쇼핑이 포함되어 바가지 씌우던 시절 같은가 봅니다.... ㅠㅠ
또 다른 원인은 한류 열풍이 브랜드 중심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중국에서 한국의 연예인들이 큰 인기를 얻을 때, 그 드라마의 배경이나 장소가 중심이 되기 보다 그 배우가 착용한 선글라스, 옷, 브랜드가 주로 강조가 되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 그들이 착용했던 브랜드 제품을 사가려고 쇼핑목록을 적어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명동, 동대문에 관광객들이 집중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아쉬운 점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와서 한국 화장품도 많이 사가지만, 어부지리로 해외 유명 브랜드들이 덕을 보고 있다고 합니다.
전지현이 입고 나온 명품 (우리나라 브랜드 아님), 소녀시대가 바른 립스틱 (우리나라 브랜드 아님), 이민호가 쓰고 나온 선글라스(우리나라 브랜드 아님)
마치 홍콩에 쇼핑하러 가는 것 같은 상황인가 봅니다. 홍콩 자체 브랜드를 사러 가는 것이 아니라, 명품 면세가로 사려고 가는 상황과 비슷한가 봅니다. 우리나라에 와서 돈을 쓰니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뭔가 실속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왕 한류열풍의 흐름을 탔을 때, 겨울연가 메타세콰이아길처럼 한국의 아름다운 곳들도 살금살금 끼워 넣어 제대로 '여행'을 오게 만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몇 명의 친구들이 했던 이야기가 중국인 관광객 모두의 상황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겁니다.
분명, 한국인은 한국인대로 불편하고, 중국인은 중국인대로 돈쓰고 짜증났던 한국여행이 되는 상황에 대해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메르스 발생 이후 처음 몇 주간은 한산해서 좋았는데, 문 닫는 가게가 늘어나는 것을 보니 오지랖 넓게 지금 끙끙 앓고 있을 몇몇 가계와 관광산업 걱정까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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