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윈 특별한 날: 쫄보의 광화문 촛불집회 첫 참가 후기, 무서운 뉴스와 달리 축제분위기
저희 집에서 광화문은 참 가깝습니다. 놀러, 혹은 책 한 권 사기 위해서도 쉬이 가는 광화문이지만 집회를 하러 가기에는 마음의 거리가 너무나 멀었습니다. 어릴때부터 즉결재판소 잡혀오는 언니오빠들 (▶︎공포의 응암동 즉결재판소 괴담)보며 데모가 겁이 났습니다. 집회에만 나가도 얼굴 다 찍혀서 사회생활에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았고, 연행되어 고생할 것 같아 무서웠습니다. 지난 주말에도 저는 겁이 나서 집에 있었는데, 여러 커뮤니티의 실시간 소식과 뉴스들을 보고 있노라니 집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몹시 불편했습니다. 누군가는 집회 참여를 위해 다른 도시에서 서너시간 걸려서도 온다는데, 저는 광화문에 (과장 좀 보태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살면서, 더욱이 놀러는 수시로 가면서, 집회는 안 가니 마음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더욱이 어린 중고등학생들이 수능 며칠 안 남겨두고 나와있다는 것을 보니 집에 있으나 마음은 광화문에 있었습니다. 집에서 안절부절 하면서 괴로워할바에는 연행이 되든 몸싸움을 하든 광화문에 나가는게 좋겠다 싶어서 이번 주에는 용기를 내어 나왔습니다.
집회 시위 참고사항도 딸딸 외우고 (만약에 잡혀가면 민변에 전화하라는 것, 미란다 원칙 고지 못 받았으면 기술하라는 것, 휴대폰 제출, 알몸수색은 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름도 말하고 싶지 않으면 묵비권 행사 가능하다는 것 등등), 집회 준비물도 살펴보았습니다. 방석, 물, 간식 등을 챙겨가라고 되어 있어 다이소에 들러 방석, 전기 촛불, 기타 간식거리 등등을 살까 하다가 추운 날 제 한 몸 건사하기도 귀찮을 것 같아 운동가는 차림으로 아주 가볍게 나섰습니다.
양쪽 주머니에 핸드폰과 카드 현금만 넣고, 검은 마스크 쓰고, 검은 모자에 패딩입고 검은 가죽장갑도 꼈습니다. 집회 나오면 춥다는 글을 많이 봐서 그랬는데, 제 꼴을 보신 분은 집회 간다고 했더니 "니가 제일 먼저 연행될 것 같아 ㅋㅋㅋㅋㅋ" 거리며 웃으셨습니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수상한 차림으로 광화문으로 향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쫄보 친구들은 "몸 조심해. 물대포 쏘면 어떻게 해 ㅠㅠ" 라며 걱정해주었는데, "지금 광화문에 중고생 애들도 나와있다는데, 애들이 맞는거 보다는 내가 맞는게 낫잖아." 라는 허세를 부리며 용감하게 나섰습니다. 출사표라도 던지는 듯 비장했습니다.
원래 경복궁역에서 내려서 갈 생각이었는데 경복궁역 옆에 바리케이트 쳐졌다는 소식을 듣고 안국역에서 내렸습니다. 안국역에서 종각 거쳐 광화문으로 가도 얼마 안 걸립니다. 안국역에 내려보니 살벌했습니다.
지하철역 주변의 살벌한 경찰 차벽
안국역 입구에 경찰이 쫙 깔려있고, 또 물대포라도 쏠 작정인지 살수차도 여러 대 서 있었습니다. 인사동 길에는 거대한 벽을 설치해 놓아서 좁은 통로로 관광객이 드나들고 있었고, 조계사 방향으로 접어서자 중무장한 경찰들이 이열종대로 서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겁이나서 집회에 한 번도 안 나왔는데, 안국역 옆에 어마어마한 병력이 있는 것을 보니 다시금 쫄았습니다. 겁이 나서 경찰들 눈치를 보며 잰 걸음으로 종각역으로 향했습니다.
잔뜩 쫄아서 흡사 전장에 나서는 기분으로 종각역에 접어들었는데.....
종로 세종대로 축제 분위기
어라? 종각역부터 광화문으로 가는 길에 차량 통제가 되어 사람들이 8차선 도로를 자유로이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마치 축제 행렬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세종대로 한복판에서 사진을 찍을 기회가 또 올까 싶어 신나게 사진도 찍고 셀카도 찍었습니다. 광화문 촛불집회 내내 기념촬영하고 셀카 찍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뉴스에서는 몸싸움하고 연행되는 무서운 소식들만 나오는데, 이곳의 분위기는 나들이 나온 시민들 분위기였습니다. 사진찍고, 서로 사진 찍어주기도 하고 화기애애했습니다.
제가 걷고 있으면서도 여기 정말 종로 한복판 맞나 얼떨떨했습니다. 분명히 세종대로 사거리 입니다.
종각역의 페스티벌 분위기에서 이미 쫄아있던 마음이 누그러졌는데, 광화문에 다가서자 가족단위 참가자들이 보여 마음이 더욱 편해졌습니다. 아이와 함께 오신 분들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아가들이 팻말 들고 있으니 무척 귀엽습니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이 기념사진 찍으려고 세워 놓으면 귀여워서 다른 사람들도 막 사진을 찍습니다. 요 아가도 엄청 귀여웠는데, 주변 어른들이 엄마미소 지으며 자신을 찍고 있으니까 부끄러워서 빼곰 쳐다보다 얼굴을 가리고 빼곰 쳐다보는 귀여운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딸래미, 손녀, 손자를 목마 태우고 참여하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차가 안 다니고 길이 넓으니 신이 나서 비행기처럼 양팔 벌리고 뛰어다니기도 했습니다. 종로의 거대한 찻길을 걷는 것에 흥분해서 저도 팔 벌리고 뛰어다니고픈 심정이기는 했습니다.
광화문에서 세 아이 어머니의 짧은 발표를 들었습니다. 정말 떨리신다고 하셨으나, 아이들에게 현 상황에 대해 무엇하나 답하기 어려운 부끄러운 어른의 심정에 몹시 공감이 되었습니다. 발표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파도타기 하듯이 질서정연하게 앉기 시작했습니다.
광화문 촛불집회 와서 사람들의 시민의식에 깜짝 놀랐습니다. 굉장히 질서정연했습니다. 인솔자가 "여러분, 차가 앞으로 나오도록 길을 좀 터 주세요." 라고 하면 순식간에 홍해처럼 갈라져서 길을 터주고, "이 쪽 차선으로 오세요." 라고 하면 쭉 가고, "이쪽으로 나오세요." 라고 하면 나옵니다. 수십만명이 지나가고 되돌아 왔지만 쓰레기도 없었습니다. 광화문에서도, 행진할 때도 부딪히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여 만원 지하철보다도 쾌적한 상황이었습니다.
씐났던 종로 을지로 명동 행진
광화문에서 출발하여 종각 - 종로 3가 - 을지로 - 명동 - 남대문 - 시청 - 광화문으로 행진을 했습니다. 행진에 앞서 울컥했던 것은,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까봐 노동자들이 앞장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집회할때 노조에서 나서면 반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직접 보니 노조의 역할은 인솔하고, 혹시 시민들 다칠까봐 노조에서 앞으로 나와서 몸빵을 자처하셨습니다. 몸빵 자처하셔서 찡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 별 일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혼자 갔는데, 50대 60대 아주머니 혼자 오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혼자 온 청년들, 혼자 온 아저씨도 많아서 같이 걸으면서 말 걸면 연애도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행진 시작 전에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노래라고 틀어줬는데, 가사는 달랑 한 줄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밖에 없는데 중독성 있었습니다.
거대한 인파가 종각 지나, 종로 2가, 종로 3가로 향하니 가슴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집회 나가면 춥다고 해서 모자에 마스크도 쓰고 옷도 따뜻하게 입어서 덥기도 했습니다.
걸으면서 사람들 행렬이 장관이라 사진을 엄청나게 찍습니다. 방송국 카메라들도 찍고, 사진 기자들도 찍고, 사람들도 인증샷, 셀카 등등을 엄청나게 찍습니다. 저도 걸으면서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고 셀카도 찍으며 씐났습니다. 일출을 보면 너무 감동해서 미친듯이 사진 찍듯이 다시 보기 힘들 것 같은 집회의 장엄한 모습에 감동해서 마구잡이로 셔터를 누르게 됩니다. 사진 찍히는 것이 싫으면 마스크는 쓰고 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정말로 촛불집회 행진 행렬이 너무 근사해서 사진 어마어마하게 많이 찍고 찍힙니다.
구호도 외치고, 임을위한 행진곡도 따라부르고 박수도 치면서 명동에 접어들었습니다. 종로 한복판을 걷는 것도 짜릿했는데, 명동 한복판 찻길을 걷는 기분도 끝내줬습니다. 집회 목적이 엄연히 있으나, 사람들과 함께 종로 한복판, 명동 한복판 8차로를 걷는 기분때문에라도 기회가 있으면 다시 오고 싶었습니다. 명동까지는 페스티발처럼 전체 도로에 사람들로 가득했고, 남대문으로 접어서자 전체 도로가 통제된 것이 아니라서 절반 정도의 도로를 차지하고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도로 절반만 통제하다가 경찰들이 먼저 나서서 시민들을 에스코트 해주었습니다. 뉴스에는 견찰이라며 몹쓸 경찰만 나오던데, 남대문 도로의 경찰은 시민들 수가 많자 도로 하나를 더 잡아서 통제해주고, 사람들 다칠까봐 뛰어서 앞으로 가면서 도로 정리를 해주었습니다. 광주 집회할 때 시민들 에스코트해주는 경찰 사진을 보며 부러워했는데, 이 날은 서울 경찰도 (일부는) 그랬습니다.
차에서 구경하는 분들도 있고, 행렬들이 구호 외치면 차 창문 내리고 같이 외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남대문 앞의 넓은 도로도 걸었습니다. 제 걸음이 좀 빠른지 자꾸 선두 인솔차량보다 앞서 버려서 남대문 쯔음에서 쉬면서 잠시 기다렸습니다. 혼자오면서 겁도 많이 나고, 걱정이 되어서 조금 있다가 근처 커피숍에서 따끈한 차나 한잔 마시고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같이 행진하는 것이 재미나서 커피숍으로 샐 생각도 사라졌습니다. 커피숍에 있다가도 행진에 끼어들고 싶을 상황이었어요.
제가 너무 선두에 있었던 것 같고, 인솔자분이 "여러분 오늘 20만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차 위에서 보면 정말 우리 행렬이 장관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해서 뒤이어 오는 행렬이 보고 싶어 시청 앞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혼자 혹은 두 세명이 온 사람들은 각자의 페이스대로 가고, 깃발을 든 분들은 프랭카드를 잡고 오시니까 열을 딱 맞춰 오고 있었습니다. 재치있는 구호들이 많았는데, 시청 앞에서 들은 근혜는 아니다 캐롤에 빵 터졌습니다.
펠리스나비다를 개사해서 그네는 아니다~ 그네는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네는 아니다~~~~ 라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야~~~ 하야하야 하야하야 하야해~~~~~ 이런 구호들도 웃기고, 한국인의 '흥'과 '해학'을 느낄 수 있는 집회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앞에서 인솔자가 구호를 해도 마음에 들면 따라하고 아니면 안 따라하기 때문에 목소리 크기가 다 다릅니다. "새누리 해체하라" 이런 구호는 새누리 지지자분도 계셔서 인지 목소리가 작고 "국민이 주인이다" 같은 구호는 정말 우렁찼습니다. 저도 공감되는 것은 더 큰 소리로 따라하고, 썩 공감안되는 것은 목을 아끼긴 했습니다.
시청앞에서 본 멋진 가족입니다. 아가들이 전기 촛불 들고 있는데 넘 예뻤어요. 다음에는 이렇게 전국민이 거리에 나설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만약 생긴다면 결혼해서 남편과 아이와 함께 나오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족 뿐 아니라 부부들도 부러웠어요. 데이트하듯 챙기며 걷는 부부들, 나이 지긋한 부부들이 손 꼭잡고 행진하시는데 무척 부러웠어요. 이 가운데 여자친구 목마태워서 장엄한 행진을 높은 곳에서 볼 수 있게 해주며 염장지르는 커플도 있었고요. 혼자라도 재미있기는 했으나, 커플은 더 좋을 것 같아 보이긴 했습니다.
촛불문화제, 광화문 축제 현장?
행진을 마치고 시청 인근에서 광화문 쪽으로 접어들자 축제행사장처럼 노점상들도 있었습니다.
커피도 팔고 토스트도 팔고, 쥐포 같은 먹거리도 팔고, 솜사탕도 팝니다. 제일 장사 잘 되는 분들은 양초 파는 분들이었고요. 개당 천원씩 파시던데 일이백만원 우습게 벌어가실 듯 했습니다. 이처럼 판매하시는 분들도 있고, 자비로 양초 잔뜩 사와서 나눔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자비로 태극기 사오셔서 나눠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판매를 하든 나눠주든 상당히 질서정연하고 깨끗했습니다. 이 정도 사람들이 움직이는데 쓰레기가 눈에 안 띄는 것이 신기했어요. 실은 누가 피켓 버리면 집어가려고 열심히 두리번 거렸는데 손에 꼭 쥐고 안 버리시더라고요.
기다렸다 왔는데도 광화문에 와보니 "머잖아 행진을 마치고 선두그룹이 돌아온다고 합니다. 큰 박수로 맞아주십시오!" 라는 안내방송을 하는 것을 보니, 저는 선두그룹 보다도 빨리 왔나 봅니다. 광화문에는 촛불문화제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는데, 라이트까지 쏘니 이순신 장군님 콘서트 느낌도 들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끝이 안 보입니다.
잔뜩 쫄아서 출사표를 내는 장수의 심정처럼 비장하게 집을 나섰는데, 막상 와보니 "이렇게 재미있을 줄 알았으면 진작 올걸..." 이라는 후회가 되네요.
뿌듯한 귀가길
저는 촛불문화제가 시작될 무렵 돌아왔습니다. 한 것은 없으나 가슴이 벅차고 뿌듯해서 커피나 간식 사먹을 마음도 들지 않았습니다. 다시금 안국역으로 향하는데 이쪽도 도로를 전부 통제하여 한산했습니다.
축제를 즐기다 집에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차도 없고, 사람도 없고 광화문의 함성소리만 아련히 들려오니 좋았습니다. 그런데...
에휴... 참..... 광화문의 축제분위기와는 달리 조계사 앞에서는 경찰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었습니다. 경찰 뒤로 차벽도 겹겹이 쳐 놨습니다. 차벽 사이로 한 두 명 지나다닐 공간만 있습니다.
무엇을 대비한 것인지 경찰차 바퀴도 나무에 매 놨습니다.
아까 안국역에 왔을 때 봤던 그 경찰들이 아직도 대기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앉아있나 봤더니 헬맷 깔고 그 위에 방패를 덮어서 둘 씩 앉아 있네요. 이 청년들은 무슨 죄인지....
문득 제가 집회 시위를 두려워했던 이유 중 하나가, 청와대 옆의 경찰을 너무 많이 봐서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집에 오갈때 청와대를 넘어 다니는데 집회 있으면 철통방어하거든요.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안 그랬는데, 이명박 대통령부터는 차가 못 지나다니게 막고, 이번 대통령은 골목까지 막아버립니다. 청와대 인근의 모든 골목 (서촌, 삼청동 일대)에 경찰이 배치되어 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더 쫄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집회에 나가본 적이 없으니 화기애애 축제 분위기는 모르고, 긴장된 경찰만 보니 겁이 나고, 뉴스에서 몸싸움이 일어났다 연행되었다 이런 기사만 접했으니 두려웠던 것 입니다.
언론의 호도라고 비난하기도 뭣한 점은, 저처럼 "가보니 무척 재미있었다! 언제든 행진 또 오고 싶다!" 이런 내용을 기사로 쓰면 전혀 흥미롭지 않고, "엄마부대 대표 아줌마가 여중생을 때려서 구속되었다" "청와대로 가려던 시민들과 경찰이 몸싸움을 벌였다." 같은 것이 기사거리로 흥미롭기에 집회의 사건 사고만 보도가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촛불집회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저도 20만명 중의 한 명으로 저 속에 있었다는 것이 뿌듯합니다.
더불어 평생동안 겁내던 집회 공포를 떨쳐낸 것이 더 큰 소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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