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붙어 있는 '(마음이) 힘들 때 대처방법'을 읽다가 쓸쓸해졌습니다.
마음이 조금 힘들 때는 감정을 글로 적어보고,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려보고, 10부터 0까지 숫자를 세어보라고 합니다. (이 방법들은 모두 효과가 좋은 것은 사실입니다)
맘이 많이 힘들 때는 복식 호흡을 하고, 친한 사람에게 전화하고, 주변사물의 소리, 말, 냄새, 색 등에 집중해 보라고 조언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중 "친한 사람에게 전화하세요"에서 턱 걸렸습니다.
친한 사람이 없는데요?
친구도 시절인연
어릴 적에는 제가 40대, 50대가 되면 친구가 수 백명이 될 줄 알았습니다. 학교 친구, 학원 친구, 사회 친구 등이 계속 늘어갈테니까요. 학교 친구랑 계속 친하게 지내면서 사회 친구가 추가되고, 취미 친구가 추가되고 이런 식으로 친한 친구 위에 친한 친구가 더해지는 것인 줄 알았어요. 친한 친구랑 안 친한 친구 혹은 그냥 아는 사람 정도로 관계가 느슨해질 수도 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관계가 느슨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관계가 끝나는 경우도 수두룩 했습니다. 연인은 최소한 "이제 우리 그만 만나자"라는 맺음이라도 있는데, 친구는 더 이상 연락 안 하고, 서로의 근황을 전혀 모르고, 오랜만에 만나니 할 말이 없어지면 더 이상 '친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평생' 갈 줄 알았던 친구, 소울메이트라 했던 사람들과도 멀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도 변하고 저도 변하다 보니 더 이상 예전처럼 죽이 맞지 않고, 만나면 불편함이 커진 탓 입니다.
결국 친구도 시절인연이었습니다. 그 시절을 함께 해서 고마웠던 것으로 끝나는 것 입니다.
생각보다 흔한, 친한 친구 없는 사람
친한 친구와의 헤어짐은 실연보다 더 아픕니다. 실연처럼 단기간 폭발적으로 아픈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허전하고 그립고 아픕니다. 친했던 사람이다 보니 어떤 장소에 갔을 때, 어떤 음식을 먹을 때, 무언가를 할 때, 그 사람이 떠오르는 순간이 수두룩 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대화코드가 잘맞았던 그 부분이 그리워지며,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이 사라진 뒤에야 그것이 참 소중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연락해서 '우리 다시 친하게 지내보자'라고 할 상황이 아닐 때가 더 많았습니다. 어릴 때는 어떤 특정 사건으로 삐지고 화내고 멀어지는 것이라, 그 부분에 대해 사과하고 다시 팔짱끼고 손 꼭 잡고 다니는 절친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긴 세월을 같이 지낸 뒤에 멀어진 절친은 삶의 궤적이 달라진 상태라서, 지금 다시 연락한다고 해서 옛날의 그 순간이 재현되지 않습니다. 그냥 보내주어야 하는거지요.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친한 친구와 멀어지니 제 눈에는 온통 그런 문장만 눈에 띄었습니다. 선풍적 인기를 끌던 책 "미라클 모닝"을 읽는데, 제가 제일 감동한 문장은 "평균적인 미국인은 가깝다고 부를 수 있는 친구가 한 명도 채 되지 않는다" 였어요. 저만 그런게 아니라면서 큰 위안이 되었거든요.
실제로 미국인들이 친한 친구가 없는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요? 설문조사에서는 "미라클 모닝"에 언급된 것 보다는 낮은 수치가 나왔습니다. 1990년대에 조사했을 때는 친한 친구 한 명도 없다고 한 사람이 3% 정도였는데, 2020년대에 들어서는 친한 친구 한 명도 없다고 한 사람이 12%로 늘었다고 합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OECD가 매년 조사하는 '사회적 관계망(Social Support Network)' 지표가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곤란한 상황(몸이 아프거나 정서적 위기 등)에 처했을 때, 언제든 의지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친구나 친지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인데요. 한국인의 약 18.9%가 "아예 없다"고 답했습니다.
질문을 달리하면 더욱 쓸쓸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 기관이 실시한 정신건강실태조사에서 한국인 4명 중 3명(74%)이 지난 1년간 심한 스트레스나 우울감 등의 정신건강 문제를 겪었다고 답했습니다.(사는 것이 고통인가 봅니다....) 그런데 그렇게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감 등의 고통을 겪은 사람들 중에 73%는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거나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저 각자의 짐을 혼자 끌어안고 끙끙대며 버틴 것 입니다.
어쩌면 '친한 친구가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있지'라고 답하는데, '힘든 상황이 있었습니까?'라고 묻고, 그 때 누군가에게 연락했습니까?'라고 물으면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버틴 사람 - 달리 말하자면 진짜로 친한 사람이 없는 사람 - 들이 아주 많은 것 입니다.
친한 친구가 없는 사람이 늘어난 이유
1.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과거에는 친구가 없다는 것이 심각한 사회적 실패나 성격 결함을 나타내는 징표로 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되는 친구라도 부여잡고 사회성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친구가 없다고 해도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늘었습니다. 여전히 '어떻게 사람이 친구가 없을 수가 있냐? 인생을 어떻게 산거냐?'라고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동시에 "정서적/물질적으로 착취만 하는 사람을 친구라는 이름으로 주변에 둘 필요가 없다"면서 힘든 사람들을 정리하고 혼자 있기를 선택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굳이 결이 잘 맞지 않는 사람과 맞추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분도 계시고요. 이제는 "나 친구 없는데?"라는 말을 가볍게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된 듯 합니다.
2. 혼자여도 불편함이 적어졌다.
예전에는 식당에만 가도 "혼자 오셨어요? (이상한 눈빛)"을 견뎌야 했지만, 이제는 혼밥, 혼영, 혼여 등 혼자 밥먹고 영화보고 여행가고 놀고 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나 불편이 없습니다. 이미 한국에도 1인가구 비율이 36%가 넘었습니다. 한국인 3명 중 1명 이상 혼자 살고 있어서, 혼자 살고, 혼자 있고, 딱히 친한 사람 없는 것들이 더 이상 독특한 일이 아닌 '평범한 보통 사람의 특성' 중 하나가 되어 버렸습니다.
3. 편리해졌지만 사는 것이 피곤하다.
친구는 '품앗이' 같은 특성이 있습니다. 친구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있어주고 위로해 주고, 나중에 내게 힘든 일이 있을 때도 친구가 그러리라 믿습니다. 꼭 나중에 받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도 암묵적으로 '상호호혜성'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셈이 잘 안 맞을 때가 많습니다. 친구 둘이 있으면 어떤 친구는 늘 문제를 일으키고 다른 한 친구는 수습하기도 하고, 한 친구는 늘 징징대고 다른 친구는 묵묵히 들으며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친구 사이'라는 것이 미안함도 모르고, 고마움도 모르는 특권 같아지기도 합니다. 아무때나 전화해 하소연해도 당연히 들어야 하는 의무라도 있는 것처럼, 오히려 받아주지 않는 쪽이 미안해 하는 기현상도 벌어집니다. 즉, 힘이 되고 좋은 순간도 있지만 사는 것이 피곤하다 보니 친구가 꽤나 무게 나가는 짐 같아질 때도 있습니다. 마음 그릇이 넉넉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친구의 잠시 힘든 상태를 받아줄 여력이 더 있겠지만 자기 자신을 감당하기도 벅차고, 자기 자신을 위해 쓸 시간도 부족한 상태가 많다보니, 친구까지 감당하기 어려워지기도 하나 봅니다.
그럼에도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친구'는 모두가 꿈꾸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만큼 '참 좋은 친구' 한 명이 귀하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불펌 적발 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