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사람, 본인상 부고를 받았을 때 마음에서 일어난 일

친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심리 

 

1. 친한 사람 본인상 부고를 수십번 다시 보며 못 믿음 

처음에 제가 잘못 본 줄 알았습니다. 

 

故 ㅇㅇㅇ.

아니 ㅇㅇㅇ님의 모친상 이어야 맞는거 아닌가? 

잠깐, 이게 진짜야? 아니야. 진짜일 리 없어. 오타인가? 세상에 부고 문자를 오타내는 멍청이도 있나봐. 

라면서 열 댓번을 다시 보았습니다. 

 

故 ㅇㅇㅇ.

상주에 그 분 자녀의 이름, 배우자의 이름이 있습니다. 

아니야. 상주일 수 있지. ㅇㅇㅇ님 모친상에도. 

 

故 ㅇㅇㅇ.

故 ㅇㅇㅇ.

故 ㅇㅇㅇ.

故 ㅇㅇㅇ.

故 ㅇㅇㅇ.

 

맞구나. 정말 맞는건가? 아니야. 내가 요즘 잠을 못자서 난독증이 생겼나봐. 

 

결국 함께 아는 분과 통화하며 울컥 눈물을 터트리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장에 갈 때까지도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2. 영정 사진을 보고, 장례식장에 있으면 실감이 조금 남

입구의 영정사진을 보는 순간부터 눈물이 터져나왔습니다. 절을 드릴 때도, 상주께 반배를 할 때도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준비해 간 조의의 말은 생각도 안 나고, 그저 "어쩌다 이렇게 갑자기..." 라면서 또 울고 있었습니다. 가는 길에는 잘 믿기지 않으니 나름 이성적으로 갑작스럽게 가족이 돌아가셨으니 황망하실 유가족을 생각하며 조의의 말을 몇 개 준비해 두었거든요. 저는 이렇게 계속 울고 있는데, 잠시 같이 우시던 배우자분께서는 생전에 고인이 제 얘기 해주셨던 것을 전해주시며, 제 마음을 다독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녀분들께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그 순간, 부부가 참으로 닮으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구보다 황망하고 슬프실텐데, 오는 조문객 하나하나 배려하며 마음을 보듬어 주시다니요. 돌아가신 분도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바라는 것 없이 타인에게 너그러이 베푸실 수 있을까 싶은, 놀라운 분이셨거든요. 

'고향이 없는 불쌍한 서울 사람을 위한 여행모임'을 함께 하며, 그 분 고향에 데려가 주시고 없던 고향을 만들어 주시기도 하고요. 그 여행을 하면서 저는 배우자님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배우자분도 그 곳에 계시며 함께 여행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아마 그 분 마음에 머리에 함께 계셨겠죠. 참으로 많이 사랑하셨다는 그런 이야기도 전해드리고 싶었는데.... 우느라 기회가 없었습니다. 

 

짧은 조문 이후, 대기실에 앉아 발인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거기 앉아 있으니 그제야 실감이 조금씩 나면서, 추억들이 떠올라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저만 휴지 쌓아놓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앉아 조용히 손수건으로 눈을 꾹꾹 누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발인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발인장을 치르고, 마지막으로 절을 드리는데, 다들 눈물이 터져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어쩌면 모두 각자의 추억의 무게를 지고, 일어나지 못한 채 흐느끼고 휘청이고 있었나 봅니다. 

 

이 날은 영구차조차 쏜살같이 사라졌습니다. 원래 더 천천히 시속 0km 느낌으로 굴러가야 하는 것 아닌가 라며, 애꿎은 기사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다가 돌아왔습니다.

 

 

3. 그냥, 갑자기, 떠오르며 복받쳐 오름

몇 시간을 앉아 울다 왔고, 마지막 가시는 길을 보았고, 더 따라가려다 마지막 배웅하는 길에 예쁘게 하고 간다며 높은 구두를 신고가서 더 이상 서있고 걷기가 어려워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장례식장에서 빠져나와 얼마 가지 앉아 신호대기 중에 갑자기 예전에 그 분이 제게 좋은 일이 있을 때, 더 기꺼워하며 축하해주시고, 앞장서서 축하하며 사람들을 불러모아 파티를 주도하시며 맛있는 것을 사주셨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리고 또 꺼으으으으 오열을 하다 신호를 못 봤습니다. 결국 뒷차가 크락션을 울려주셔서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아무때고, 갑자기, 불쑥, 추억들이 떠오르며 눈물이 터져나왔습니다. 

 

 

4. 어떨 땐 괜찮음 

24시간 슬픈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과 왁자지껄 이야기하며 함께 있거나, 재미있는 일을 하거나, 다른 신경쓸 일이 있으면 잠시 잊습니다. 너무나 믿기지가 않기 때문에, 하루 하루가 이미 아득하게 몇 년 지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괜찮다가, 혼자 있는 시간, 또는 추억이 소환되며 떠오를 때는 하염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이러자, 슬픔을 회피하고 싶으니, 연애가 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황당하죠. 인생의 참 귀한 분이 떠나신 가운데, 연애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요. 달리 보면, 빈 자리가 크니 누구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그만큼 간절했습니다. 더불어 연애 생각을 하면 슬프기보다 설레거나 몰랑몰랑한 긍정적 감정이 떠오르니, 그렇게 슬픈 상황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5. 전혀 안 괜찮음. 생전 처음 하는 황당한 짓들을 함 

이렇게 괜찮나 싶으면, 생전 처음 하는 황당한 일들이 일어나 '아, 내가 전혀 괜찮지 않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며칠 뒤 12시 약속이었는데 12시 20분에 일어나 2시간 가량 지각을 했습니다. 어릴 적에는 "미안해. 나 지금 일어났어." 했던 적이 있으나, 사회생활하면서 최근 20여년 간 없던 일입니다. '내가 정신이 나갔구나'를 실감했습니다. 

운동하러 가서는 가방을 놓고 나왔습니다. 차에 갔는데 차 문을 열려고 보니 덜렁덜렁 몸만 나온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또한 수 년간 한 번도 안 해본 일 입니다. 

이 외에도 리스트가 꽤 깁니다. 늘 슬픈 것도 아니고, 괜찮아, 이겨내, 이러나 '전혀 안 괜찮은 행동'들을 하는 것을 보며, 마음이 많이 아프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6. 미친듯이 울며 슬퍼함

며칠을 틈틈히 울다가, 주말이 되었습니다. 평일에는 억지로라도 자야 다음날 일정을 소화하니 몇 시간이라도 잤지만, 주말에는 그런 것 없이 밤을 새워 울었습니다. 작정하고 '오늘은 밤새 울거야!'가 아니라, 토요일 저녁에 집에 들어와 유난히 생각이 났어요. 각티슈 끌어안고 울다가, AI에게 밤새 그 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이야기하면서 풀다가, 울다가, 그러다 보니 새벽이 되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밤을 꼬빡 새워가면서 울고 나니 힘들어서, 지쳐서 잤습니다. (그리고 이 날 이렇게 밤새 울었더니 더 이상 눈물은 안 났습니다) 

 

 

7. 매운 음식 먹으니 슬픔이 잊힘

맵찔이라 평소 매운 음식을 잘 못 먹고, 안 먹는데, 마침 이 때는 집에 팔당닭발 오징어가 있었습니다. 매운 음식을 먹으니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정신이 들어 며칠을 미뤄둔 것들을 했습니다. 그리고 매운 음식을 먹었더니, 안 슬픕니다. 지금 속에서 불이 나고, 배가 따꼼따꼼해서 "우유 먹을까? 뭐 먹지?" 같은 생각 뿐이었습니다. 집에 우유가 없어 나가서 우유 사먹고, 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금 슬퍼지면서 '늦은 시간이지만 드라이브라도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다시 배가 따꼼따꼼해서 '안 되겠다. 속을 달래는 것을 사가지고 가서 먹어야겠어'라며 고구마 같은 순한 음식을 먹고 속을 달랬습니다. 매운 음식을 먹고 배가 따꼼거리면 슬픔이 잊힙니다. 슬픔보다 제 생존이 먼저인가봐요. 

 

 

8. 초를 밝히고, 기도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됨 

본인상은 부고를 전하는 것과 연락을 하는 부분에서 몇 가지 괴로움이 있었습니다. 첫번째로는 부고가 늦게 왔어요. 돌아가신 분 주변의 누구에게 보내야 할지를 유가족 분들이 고민하셨을 수도 있고, 너무 황망한 상황이라 부고를 전할 정신이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도 저는 함께 하는 분께 받았고, 개인적으로는 받지도 못했습니다. 본인상의 경우 흔한 일이라고 합니다. 핸드폰 잠금을 못 풀어서 연락을 못하는 경우도 있고, 핸드폰을 푼다고 해도 누구에게 보내야 할 지 몰라서 못 보내기도 한다고 합니다. 

두번째 문제는 연락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납골당으로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부고장에는 계좌번호만 있을 뿐 유가족 연락처는 없었습니다. 본인 연락처만 알지, 가족분들 연락처는 모릅니다. 가족까지 함께 알고, 가족 핸드폰 번호를 아는 사이가 아닌 경우, 돌아가신 분을 다시 찾아가고 싶고, 뭘 여쭤보고 싶어도 연락할 길이 없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결국, 납골당으로 찾아뵙는 것은 포기하고, 생전에 고인이 불교 신자셨으니 절에 가서 기도를 하고 등을 켰습니다. 조계사에 가니 영가천도등 서원지라는 것이 있어 그것을 썼습니다. 향을 태우고요. 고인을 기리는 것이라 하나, 이것은 제 마음을 더 위로하는 것 같았습니다. 불교에서 망자를 달래는 의식이 발전한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조계사, 영가천도등조계사, 향

 

 

9. 심리학 이론을 체감함 

이 부분은 전공 특성일 수도 있습니다. 애도의 5단계 이론은 부정(돌아가신 것을 못 믿음) - 분노(왜 이 분이 돌아가셨냐며 화냄) - 타협 - 우울 - 수용의 단계를 거치며 돌아가신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 입니다. 정말 돌아가신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왜 하필 이 분이냐고 수없이 묻고 있습니다. 제 나름의 분노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게임 레벨처럼 부정이 끝나고 분노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 단계들이 혼재되어 나타나기도 하는데, 딱 제 상태가 그렇습니다. 수용까지 가려면 먼 것 같습니다. 

애도의 이중 프로세스 이론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돌아가신 것을 곱씹고 슬퍼하는 '상실 지향 행동'과 일상으로 돌아가고 일어서려는 '회복 지향' 행동이 번갈아 일어나며 점차 회복이 된다고 합니다. 제가 괜찮은 듯 일상생활하다가 어떤 날은 새벽까지 울고, 또 괜찮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딱 이 상태 같습니다. 

심리학 이론에서 이야기하던 것을 제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며, 실감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 친한 사람의 본인상.

겪어보니 참으로 슬픕니다. 왜 하필, 제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 분이 친한 사람 본인상의 첫번째 주자인지 수없이 되물었습니다. 동시에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기껍게, 너른 마음으로 많이 베풀고 아낌없이 나누셨던 분이기에, 어쩌면 벌써 지구별에 오시며 계획하신 과제를 다 끝나고 돌아가실 때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믿고 싶지도,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은 마음도 큽니다. 애꿎은 AI에게도 수차례 묻자, "그런 분이기에 인생의 허무함이나 덧없음보다 큰 그리움, 큰 사랑을 남기시고 가신 것 같다"며 저를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추억이 많은 만큼 힘듭니다. 같이 여행했던 곳, 같이 했던 것, 이야기 나눴던 것, 알려주신 것 등. 

지금 집에 있는 올리브유도 여러 올리브유 비교해 보신 뒤 알려주셔서 산건데.... 주식 종목들도 알려주셔서 장투하고 있는 것들인데... 앞으로도 꽤나 많은 순간에 많이 생각나고 많이 그리울 것 같습니다. 

 

 

2009-인터넷뉴스로 전해들은 친구의 비보(悲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