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지만 허탈한 신년 우울증
1월 1일. 12월까지 너무 바빴으니 1월이 되면 일을 마무리하고 홀가분한 마음일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1월 1일에도 보고서를 쓰고 있었습니다. 2일 아침부터 회의가 있고요.
1월 첫 주말. 첫 주말까지만 바쁘면 여유가 좀 생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왜 때문인지 주말에도 일하고 있었습니다.
1월 10일 금요일. 신년 계획도 제대로 못 세웠는데 10일이라니! 원래는 1월이면 여유있게 책도 읽고 밀린 드라마도 보고 영어 공부도 하고 논문도 쓰고 글도 쓰고... 즐겁게 살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새해가 되고도 열흘이 지나도록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자, 허탈했습니다. 이럴 때는 저 대신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스타그램이라도 보면 조금 나아집니다. 친구들이 여행가고 맛난 것 먹은 것을 보며 대리만족을 합니다. 인스타를 보니, 어째서인지 상태가 엇비슷했습니다.
'너무 힘든 한 주였으니 저녁이라도 맛있는 것을 먹겠다. 내일도 또 힘든 날이 예상되니까'
'하루 하루가 어찌가는지 모르겠다...'
저만 여유없고 허탈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다소 위안이 되었습니다.
정신없던 저녁, 필리핀에 살고 있는 영어 선생님과 전화를 하며 바쁘단 말을 했습니다. 제 속은 복잡했을지라도 단순하게 설이 다가오기 때문에 설 전에 일을 마치려고 해서 바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하는 말.
"제 학생들은 참 이상해요. 분명히 작년 연말에도 새해가 되기 전에 일 마무리 짓겠다고 엄청 바빴거든요. 근데 지금은 설이 되기 전에 일을 마무리 짓겠다고 엄청 바빠요. 분명 작년 연말에 마무리 되었다고 했는데..."
대체 어디서 일이 샘솟는지 모르겠다며 짧은 영어로 클클거리며 이야기를 했으나, 선생님 말이 맴돌았습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빈번하게 하고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 달은 좀 바빠서... 다음 달 초 되면 여유가 생길 것 같아. 그 때 보자!"
"다음 달 까지가 좀 바쁘고, 그 다음엔 여유가 생겨. 그 때..."
언젠가 여유가 생길 때도 미루고 미루다 수 년 째 못 만난 친구도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여유 생길 때 보자"는 말은 '영원히 여유는 안 생긴다' 같아서, 만나고 헤어지면서 다음을 기약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만날 연이 되면 다음에 만나게 되겠지 하면서요.....
유독 1월, 새해 초의 허한 마음은 뭘까?
1월을 처음 겪는 것은 아닙니다. 매해 이런 감정을 반복적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이 뭔가 이상하고 바보 같아, 재작년과 작년에는 이 것에 대해 파고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책 원고로 썼으나 그 책은 아직 출간되지 못하고 있어요 ㅠ)
12월 말이 되면 한 해를 돌아보며 허탈해 하고, 새해가 되면 벌써 새해가 열흘이 지났는데, 벌써 1월이 다 갔는데 한 것이 없다면서 허탈해 하고...
질문의 시작은 '난 대체 왜 이렇게 사는가' 였는데, 나름은 이런 우울함과 허탈함이 생산성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이러는 것 같습니다. 한 것이 없어서, 잘 살고 있지 못한 것 같아서 허한 감정이 들면, 뭔가 합니다.
결국 허한 감정이 원동력이 되어 뭐라도 하니, 그러한 생산적 효과 때문에 허탈해 하고 조바심이 나고 다소 우울한 부정적 감정을 반복적으로 느끼고 있나 봅니다.....
나만 이런 걸까?
우울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는 나만 이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렇다는 것이 꽤 위안이 됩니다.... 나만 힘들거나 허탈해 하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게 다 비슷하다 생각하면 허탈함을 쉽게 덜어낼 수 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새해 우울증은 나름 세계 공통 증상인가 봅니다.
어제 인스타그램의 인기 게시물 중 하나 입니다.
1월 74일 같다고....
그나마 우리는 설날이라 며칠 쉬기라도 했는데, 1월 1일부터 달려온 사람들은 1월이 유독 길게 느껴질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나 봅니다.
한 달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편안한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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