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탈출 2번째 광화문 촛불집회 후기, 밤늦게 가도 신명나는 집회

라라윈 특별한 날 기록: 쫄보탈출 2번째 광화문 촛불집회 후기, 밤늦게 가도 신명나는 집회

두어달 전부터 저는 다른 이유로 11월 12일을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의 결혼식이었거든요. 학교 다닐때도 인기가 많고 반장이던 친구였고, 졸업하고도 이 친구가 나서서 동창회도 하고, 자상하고 따뜻하게 챙겨주던 친구였던 터라 이 친구의 결혼식에 학창시절 친구들 총출동 분위기 였습니다. 20여년 만에 친구들 만날 생각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 집회에 처음으로 참여해 보니, 그 공간에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쾌감이 있어 집회도 다시 가고 싶었습니다. 결혼식 끝나고 식사하며 담소 나누다가, 기혼인 친구들이 집에 간다기에, 저는 결혼식 하객 차림으로 하이힐 신고 광화문으로 갔습니다. 마침 진희가 퇴근후 촛불 집회 간다고 연락을 해줘서 안국역에서 접선을 하였습니다. 결혼식장에서 지하철 타고 오는 길에 보니 집회 끝나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집회 끝났나봐...  ㅠㅠ"


라는 문자를 주고 받으며, 9시 무렵 안국역에 도착했습니다.



밤9시 안국역 앞

밤늦게 촛불집회 참가


안국역에 나오자 팻말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집회 참가하시고 여기에 놓고 가신걸까요... 저거 하나 집어들고 갈까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집회가 끝났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더 컸기에 하이힐 신고 뛰어갔습니다. 지난 주처럼 안국역 앞에 경찰이 즐비한 삭막한 상황을 예상하며 올라섰는데...


밤늦게 촛불집회 참가


으아!!!!!! 광화문 앞 8차로에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이 순간 벌써 벅차올랐습니다. 9시가 넘은 시간에도 여러 단체에서 행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부님 수녀님들도 행진하고 계셨고, 단체 깃발을 들고 사열종대로 행진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집회가 끝나기는 커녕 시작한지 얼마 안 된듯 엄청난 사람들이 광화문 앞  8차로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안국역에서 도로로 내려서며 흥분을 했습니다.  단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안국역 사거리를 걸어보다니...!


동십자각 촛불집회


풍문여고 앞에서 청와대로 갈 수 있는 방향은 차벽치고 꼼꼼히 막아뒀습니다. 친구도 저도 배화여고 나온터라, '바보들 여기 아니어도 청와대 가려면 저 쪽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라며, 청와대에 진군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이야기하며 광화문으로 향했습니다.


동십자각 촛불집회


광화문에 가기에 앞서 동십자각 앞에서 엄청난 인파가 집회 중이었습니다.



동십자각 앞의 촛불집회

마이크를 든 선창자 없이 시민들이 퇴진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광화문 촛불집회가 끝나고 청와대 입구 코 앞인 동십자각 앞으로 몰려온 모양입니다.


동십자각 촛불집회


밤늦게 가면 촛불집회 다 끝난 것 아닌가 걱정했는데, 집회는 한창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동십자각 앞에 있자 여기 저기 골목에서 깃발을 들고 퇴진을 외치며 행진해 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동십자각 촛불집회


점점 늘어나는 동십자각 인파에 섞여 퇴진을 외치다가, 경복궁역 파파이스 있는 곳 (지금 서촌 입구)은 상황이 어떨지 궁금해 가보기로 했습니다. 경복궁역 파파이스는 고등학교 시절 중간고사 기말고사 끝나면 사먹으러 가곤 했었는데, 얼마 전까지도 있더니 최근에 없어졌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도 해가며 파파이스 쪽으로 가는데 광화문 입구를 경찰차로 꼼꼼히 막아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광화문앞 경찰차 차벽

어휴... 이러라고 세금낸거 아닌데... 라는 볼멘소리를 하다 보니, 경찰차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광화문 촛불집회


경찰차에 견찰이라 쓰신 분도 있고, 더한 용자도 있었습니다.


광화문 촛불집회


경찰차 도색 비용이 저희 세금이긴 하겠으나, '속은 시원하다! 이런 비용이라면 세금에서 써도 좋아!' 라며 광화문으로 갔습니다. 광화문을 지나치려는데 광화문 정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 이승환이 보였습니다.


"어? 설마 아직까지 이승환 콘서트 하는거야?"


9시 넘어서 도착했기 때문에, 이승환 콘서트는 이미 8시 반에서 9시 사이에 끝났을거라 생각해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형 화면에 이승환이 노래하는 장면을 보니, 라이브 같아 보여 냉큼 행선지를 바꿔 광화문 메인 무대로 향했습니다.



광화문 메인 무대 -  이승환 콘서트 라이브

메인 무대를 향해 가다 보니, 곳곳에 쓰레기 봉투를 모아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피켓은 재활용 종이이긴 하나 일일이 분류하기 어려우니 전부 쓰레기 봉투에 담은 듯 했습니다. 쓰레기 봉투에서 깨끗한 피켓 한 개씩 득템해서 들고 메인 무대 앞으로 갔습니다. 무대 쪽으로 다가갈수록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이번에도 질서정연함에 깜짝 놀랐습니다. 밀치거나 부딪히는 사람 없이 서로 아주 조심합니다. 저희 뿐 아니라 이승환 콘서트 무대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을텐데 서로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비켜주고 밀치지 않으며 대열을 갖췄습니다. 안 보이면 안 보이는대로 징징대지 않고요. 정말로 만원 지하철보다 쾌적했습니다.


광화문 이승환 콘서트


이승환은 점으로 보이고, 화면이 더 크게 보이는데다가, 이승환 라이브가 음반과 너무 똑같아서 TV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이게 정말로 지금 라이브로 부르고 있는 것이 맞는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메인무대 대형 화면보다 YTN 지미집 화면이 더 잘 보여서 이걸 봤더니, 더 TV보는 기분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광화문 이승환 콘서트


방송국 차 위에서 무대를 내려다 보고 계시는 분들이 몹시 부러웠습니다.


광화문 이승환 콘서트


그러나 관계자가 아닌 사람들은 올라갈 욕심을 내지 않고, 안 보인다고 밀거나 짜증내지도 않고, 안 보이면 안 보이는대로 묵묵히 듣고 있었습니다. 이승환 콘서트 장에 가지 못했는데,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무료로 이승환 라이브를 들을 수 있게 해 준 것이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대가 잘 안 보여도 목소리는 잘 들렸기에 그것으로 만족했던 것 같습니다.


광화문 이승환 콘서트


가끔 앞의 분들이 리듬을 타며 몸을 흔들때 1초 정도씩 멀리있는 이승환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진 속의 허연 그림자가 이승환입니다. 저도 동영상 찍고 싶었는데 이미 배터리 5%상태 ㅠㅠ


광화문 이승환 콘서트


놀라운 질서정연함에서도 한국인 수준에 대해 자부심이 솟구쳤는데, 떼창에서 한 번 더 한국인 자부심이 폭발했습니다. 특히 놀란 것은 덩크슛 주문 부분에서 "하야하라 박근혜 하야하라 박근혜"로 바꿔 불렀는데, 이승환이 "연습 안 해보셔도 되겠어요?" 라고 하는데 모두 "네에~~~" 라고 소리 치더니, 정말로 연습 한 번 없이 그 어려운 박자에 딱 맞게 개사해서 부르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인 떼창 쵝오 입니다. 잔잔한 곡의 떼창도 소름 돋았고요.



한국인의 흥, 자부심 폭발

10시가 넘도록 이승환 콘서트를 보고, 열기를 달래며 다시 광화문으로 왔습니다. 광화문 바로 앞 노동당 트럭에서 잔잔한 기타 연주 라이브가 좋았습니다.


광화문 촛불집회


선선한 날씨, 쾌적한 상황, 옆에서 들리는 감미로운 기타 연주가 행복했습니다. 지난 주에는 혼자 와서 쓸쓸했는데, 친구와 함께 와 더 행복했고요.

광화문을 코앞에서 보며 사진 찍을 수 있는 것도 큰 수확이었습니다.


광화문 촛불집회


다시 최초 목적지였던 배화여고 파파이스 가보자며 나섰는데, 곳곳에 흥이 가득한 판들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이름 모를 타악기와 그루브. 저도 모르게 몸치인 뻣뻣한 몸으로 리듬을 타며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참 한국인들은 흥이 있고 멋이 있어..' 라면서 감탄하며 다시 길을 가는데, 본격적으로 신명나는 사물놀이 판도 있었습니다.


광화문 촛불집회


대학교 풍물놀이패 학생들인 것 같은데, 어찌나 신이 나던지... 경복궁역 앞으로 행진하던 사람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꽹과리 장구 북 소리에 맞추어 흥을 즐겼습니다.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이날 수 많은 사람이 모인만큼 재능기부를 해 준 분들이 많았나 봅니다. 고등학생 타악기 행진 동영상을 보면서, 또 한 번 한국인의 자부심 폭발했습니다. 신명과 흥에 있어서도 한국인은 세계 제일일 것 같습니다.



씐나도 목적은 잊지 않는 열정적인 촛불집회

수 많은 사람들이 모인만큼 각자 끌리는 방식대로 집회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무대의 연설을 듣는 분들은 계속 무대 앞에 있었고, 행진을 하는 분들은 행진을 하고, 신명나게 판을 벌인 분들은 밤이 늦도록 공연을 하고, 세종문화회관 쪽에는 술판과 담소의 자리를 벌인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계속 청소하는 분들도 계셨고, 다음 집회에 지방 학생들이 서울에 올 수 있도록 차비를 모금하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청와대 길목인 동십자각 앞과 경복궁역 사거리 였습니다. 이 곳에서는 계속해서 퇴진 구호를 외쳤고, 깃발을 든 단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광화문 촛불집회


대학교 깃발, 단체 깃발도 있고, 페이스북 시민행동 깃발도 있고, 다채로운 깃발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광화문 촛불집회


경복궁역 사거리로 다가갈수록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이미 경복궁역사거리에 엄청난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는데, 깃발들이 너무 멋있어서 사진찍고 싶었으나 이승환 콘서트에서 배터리 5% 남아있던 폰이 꺼지고, 이후는 그저 마음에 담아왔습니다.



집에 와서도 심장이 쿵덕쿵덕

엄청난 인파의 긍정적 에너지 덕분이었는지 광화문에서 씐나서 안국역, 광화문, 경복궁역을 뛰어 다닐때는 하이힐 신고도 발 아픈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친구와 헤어지고 역에서 내리니 그제서야 서 있기도 힘들게 발이 저려왔습니다. (치마입고 하객차림은 문제 없었으나, 하이힐은 확실히 비추입니다) 어떤 분의 표현처럼 '시위가즘' '집회가즘'이라는 것이 있나 봅니다. 집에 와서도 쿵덕대던 가슴이 가라앉지 않아서 이후 집회 진행상황을 계속 찾아봤습니다.

집회는 새벽까지 계속 되었고, 새벽2시 무렵에는 노동당 차량과 함께 경복궁역 클럽 개장 분위기도 잠시 있었다고 합니다. 



새벽까지 남아서 촛불집회 밤샘하시는 분들 동영상도 보고, 저는 못 보았던 자유발언도 찾아서 보고, 해학이 넘치는 피켓들 사진들도 보면서 여운을 달랬습니다. 다음주에는 좀 더 편한 옷 입고, 씐나게 즐겨야 겠습니다.



즐기러 오지마라vs 머릿수 하나가 중요하다

저는 너무 재미있어서, 씐나서, 속이 풀려서 촛불집회에 또 갈 생각인데, 이런 태도가 불편한 분들도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나 퇴진하라는, 2선 후퇴는 필요없다는 목소리를 내러 모인 자리인데 재미있고 축제같다며 좋아하는 것이 본질을 흐린다고 보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난 주에는 잡혀갈까봐 겁나서 잔뜩 쫄아있었고, 광화문에 갈 용기를 내는 것이 너무 큰 일이었기 때문에, 집회에 대한 여러 사람의 의견은 생각할 여력도 없었습니다. 애초에 제가 정치에 관심이 없고 잘 몰랐기에 생각할 수가 없기도 했고요. (뭘 알아야 생각도...)

그러나 이전 글 <촛불집회 솔로탈출 가능성이 높은 이유 3가지 & 집회 준비물로 말거는 팁>의 반대의견 보면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저처럼 재미있어서 집회 가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일런지요.. 고맙게도 저의 복잡한 생각을 일베인지 국정원인지 청와대 직원인지 모를 그 분들이 쉬이 해결해주셨습니다.


댓글 조작


다른 아이디로 동일한 글을 퍼트리며 댓글 조작해서 여론몰이하는 내용을 보니, 저들이 바라는 것은 "시위해도 의미없으니 나오지 말아라, 대규모 집회해도 아무것도 안 바뀐다, 폴리스라인 넘어서 폭력시위해라"인 듯 합니다. 이걸 보니, '숫자의 힘'으로 생각이 정리되었습니다. 어떤 마음이든 간에 한 명이라도 더 참여하는 것이 더 큰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광화문 광장에만 100만명 (최종 집계는 130~150만명 정도) 모였다고 하는데, 이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아무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참여자의 의도에 대해 심리 검사를 한 것도 아니고 여론조사를 한 것도 아니니까요. 헌팅을 하러 왔든 물건팔러 왔든 구경 왔든 간에 집계하는 쪽에서 보면, "100만명 (150만명)의 국민이 거리에 나와 퇴진을 외치고 2선후퇴 필요없다고 외쳤다"고 한 줄 요약됩니다. 

이전의 대선 결과가 조작이든 뭐든 간에 51.6%가 지지한다고 믿었고, 최근의 지지율 5%를 보며 정말로 95%가 지지하지 않는다고 요약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응답오류도 있을 수 있고, 인상관리용 답변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무튼 한 줄 요약하면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전부 퇴진을 지지하는 사람의 숫자로 집계 됩니다. 그렇기에 머릿수 한 명은 중요합니다. 구경하러, 콘서트 즐기러, 차량 통제한 광화문 종로를 활보하러, 친구들과 즐기러, 속 터지는 마음을 풀러, 죄책감을 덜러, 어떤 목적이든 간에 한 명이라도 더 참여하는 것이 사태의 빠른 해결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00만이 모인 다음날, 종각역

다음날, 명동성당에서 종각역으로 걸어오면서 보니 을지로입구 역에는 전날 치운 쓰레기봉지 몇 개가 보이고 종각역에 가까이 다가올수록 거리가 깨끗했습니다. 당일에도 깨끗했고, 쓰레기 봉지 들고 계속 치우시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인가 봅니다.


백남기 농민 추모의 벽


그나마 전날 뜨거웠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종각 앞에 설치된 백남기 농민 추모의 벽 앞에 남은 수많은 촛농이었습니다.

함께 해서, 광장의 열기를 나눌 수 있어서 벅차오르고 행복했지만, 기왕이면 분노의 촛불집회 말고 월드컵 응원같은 씐나는 일로 다시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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