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 남자의 감정 표현

라라윈 연애질에 관한 고찰 : 이과 남자의 감정표현

지난 학기 처음으로 강의를 하러 가면서 신났습니다. 공대였거든요. 여학생은 한 반에 두 세명있고, 모두 남학생!

제가 꿈에 그리는 그런 환상적인 곳이었어요. 저는 오로지 여학생, 그리고 또 여학생 밖에 없는 척박한 환경에 있었거든요...

(- 여자많은 과에 하나있는 남자에 대한 대우는?)


설레이며 갔는데, 한 주, 두 주.... 뭔가 이상했습니다.


이과 남자 감정 표현


표정이 한결같아요. 재미있는건지, 지루한건지... 좋은건지 싫은건지 읽어내기가 어려웠습니다. 뭐죠? 포커페이스들인가....

느낌이 참 묘한 것이 딴 짓을 하거나 안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잘 쳐다보는데 반응이 없었습니다. 제 수업이 너무 재미없는건지, 그냥 무관심한건지 걱정을 하며 다음 수업 준비를 했습니다. 3주가 되어 또 다시 포커페이스를 보자, 그제야 뒤통수에 빡 꽂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 이들은 이과 남자였습니다.



문과 여자에게 익숙한 감정 표현

저는 문과 여자인데다가, 미술 전공, 심리학 전공이다 보니 말 참 잘하고 감정표현이 풍성한 사람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문과 여자 감정표현


대체로 반응이 확실했습니다. 좋은지 싫은지, 네 이야기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는지, 꽤나 설득력있다고 생각하는지, 공감되는지, 전혀 공감 안되는지 등에 대해 표정과 제스추어를 보면 어느 정도 파악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연아처럼 표정이 풍부한 것은 아니었으나, 표정이 적고 반응이 작은 편이라 해도 포커페이스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환경에 젖어 지내다 보니 저는 어느새 너무 당연한 듯 풍성한 표정과 반응이 '일반적인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과 남자, 특히 남자 비율이 95%인 공간의 남자는 달랐습니다. 아주 많이.....



문과 여자에게 익숙치 않는 이과 남자의 (몹시) 절제된 표현

심히 절제된 반응과 표정 때문에 공대 남친 사귀면서 힘들었던 생각이 뒤늦게 떠올랐습니다.

- 공대생 남친 사귀기, 인문대 여자에게는 어려웠던 공대 남자와 대화하는법

- 공대생 남자의 거절, 여자가 싫어서가 아닐 수 있다?


이야기를 할 때, 그냥 가만히 듣고 있을 뿐 반응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 때도 '내 얘기가 지루한가? 관심이 없는건가? 아님 그냥 내가 싫은건가?' 굉장히 고민했었어요.


문과 여자 : 재잘 재잘

이과 남자 : (가만히 듣고 있음. 추임새 없음)

문과 여자 : (이야기하다 답답하자) 듣고 있어? 어떻게 생각해? (기타 등등 질문)

이과 남자 : 응 (듣고 있냐는 질문 하나만 간결히 대답)

문과 여자 : 어떻게 생각하냐고?

이과 남자 : (잠시 침묵) 생각중이야. 또는 또 간결한 대답


이런 식인데다 잘 웃지도 않고 무표정해서 (무표정하게 느껴져서) 결국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문과 여자 : 잘 안 웃는 것 같아요. 말도 별로 없고....

이과 남자 : 남자끼리 있으면 말도 안 하고 웃을 일도 없어요.


이해가 될 듯도 하고, 아니기도 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눈치 챘는지 부연설명도 해주었습니다.


이과 남자 : 남자끼리 있으면 밥 먹고, 담배 피고, 운동하고, 게임하고. 별 말을 안해요. 간단히 일정 확인 정도 하는거죠.


여자끼리는 안 그러다보니, 설명해 줘도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나중에 '남자끼리 카톡' '남자끼리 대화 내용' 이런 것들을 보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이과 남자 감정표현


꼭 필요한 말 밖에 안 합니다. 그것도 간결하게.

절제된 표현의 대가들인 듯 합니다.


즉, 제가 만난 수많은 이과 남학생들도 최소한의 표현만 하는 절제된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문과 여자 입장에서는 표정도 없고 말도 없고 반응도 없다고 느껴졌지만 그것도 제 기준대로 생각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정말 다른 문화의 다른 종족일 뿐인데....



이과 남자와 친해졌을 때

표정도 반응도 미약하나 (미약하게 느껴지나) 계속 보노라면 무표정 속에 희노애락과 감정이 있습니다. 눈썹이 1mm 올라간다거나, 입꼬리가 1mm 올라가거나 합니다. 이 것을 알아챘을 때 굉장한 희열이 느껴졌습니다. 숨겨진 암호라도 하나 해독한 기분이었습니다.


무표정 속의 표정을 발견했을 때보다 더 기뻤던 것은 무표현 속의 정을 느꼈을 때였습니다.

표현을 안 하는데, 수업 끝나고 주변에 와 있습니다.

출석 확인을 하거나 물어볼 것이 있어서 그러는 줄 알고 "ㅇㅇ이는 왜요~?" 라며 무슨 일인지 물으면, "그냥요."라고 무뚝뚝하게 말하는데, 주변에 서 있다가 제가 짐을 챙기면 다른 교실에 들어다 주기도 하고, 수고하셨다며 인사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좀 더 친해지니 "교수님 아이폰 쓰셨잖아요. 폰 바꾸셨어요?" 같은 관심도 표현해 줬습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러나 머리 모양 같은 것에 대해서는 모른 체 하는 것이 예의라고 느끼는 듯 했습니다. 한 명이 "머리 깍으셨어요?" 라고 하는 순간, 옆에서 "야.." 라면서 바로 자제시키더라고요. 음.... 아는 척 해줘도 되는데....


말을 많이 하지는 않는데, 배려는 느껴졌습니다. 자신이 졸면 제가 상처받았을까봐 죄송하다며 전날 새벽까지 아르바이트 했다고 설명을 해주기도 하고, 순간 순간 태도에서 저를 챙겨주는 것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강사와 학생은 소개팅과 달리 좋아하든 싫어하든 15주는 함께 봐야 하다보니, 속정까지 엿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따뜻함에 반해 마지막 주에는 눈물 날 것 같았습니다. 저보다 큰 남자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꼭 안아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저만 챙겨준 것은 아니었고, 친구와 여자친구 챙기는 속정도 상당했습니다. 친구가 못 오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빈약한 표현으로 어떻게든 두둔해주려고 애쓰고, 여자친구 이야기 만큼은 애정 담뿍 담긴 미소를 띄며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잘 전달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본인이 없을 때만 표현을 할 뿐, 당사자 앞에서는 무표정 무표현 같아 보이는 이과 남자가 아닐지.....


특히 수업처럼 좋으나 싫으나 15번 이상은 만나는 사이가 아니라, 소개팅 하고 몇 번 만난 뒤 싫은 것 같으면 그만 만나는 경우에는 몹시 불리할 것 같습니다. 혹 문과 여자가 이과 남자를 마음에 들어했다 해도 무표정, 무표현을 보며 '나 싫어하나보다' 싶어 포기하게 되진 않을지...

감정표현이 풍부한 여자분이 이과 남자 만날 때는 최소한 다섯 번 이상 만나보고 (남자가 만나준다면...) 그 남자의 입꼬리 1mm 움직이는 감정표현, 무뚝뚝함 속에 숨은 따뜻함을 발견하는데 초점을 둬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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