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살 남자와의 소개팅, 나이먹으면 고집쟁이가 되는 까닭은 뭘까?

라라윈 연애질에 관한 고찰 : 40살 남자 소개팅, 나이 먹으면 고집쟁이가 되는 까닭은 뭘까?

40살 남자와 소개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제가 막 서른이 되었을 무렵이라 열 살이나 많은 아저씨와의 소개팅이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돈을 잘 벌며, 40살 총각처럼 보이지 않는 젊은 외모를 가지고 있으니 한 번 보기나 하라는 친구의 추천에 못 이기는 척 (내심 기대하며) 소개팅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첫 만남부터 삐그덕 거렸습니다. 저는 열 살이나 많은 아저씨를 만나니 굉장한 배려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40살 아저씨는 배려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우선 연락하는 방식이 그랬습니다.

"난 오늘 시간되는데 오늘 보죠."

ㅡㅡ; 이봐요. 아저씨. 상대방이 시간이 되는지 먼저 묻는게 예의 아니오?

"죄송해요. 저는 오늘까지 넘겨줘야 되는 일이 있어서 안 될 것 같아요. ^^;;"

보통은 이런 상황이면 다음에 언제 시간이 되는지 묻고 약속을 잡는데 그냥 뚝. 끝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일이 일찍 끝났으니 저희 집 근처로 온다는 겁니다. 집 근처에 곧 도착하니 나오라고 합니다. 이런.. 저는 그날 집에서 (머리도 안 감고) 똥머리에 츄리닝 입고 앉아서 일하고 있던 상태여서 소개팅을 위한 변신을 하려면 한두시간은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제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저희 동네에 찾아온 것도 당황스러운 데다가, 당장 나오라고 하니 황당했습니다. 따로 연락을 주고 받던 것도 아니고 처음 만나는데 이런 식이니 저도 성질이 났습니다. 친구 체면도 있으니 오늘 보고 끝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겠어요. 오늘 보죠. 저는 준비하고 가는데 한 시간이 걸리니 어디 들어가 계세요."

라고 하고 아무튼 준비하고 가긴 갔습니다. 이 분은 이미 한 시간 기다려서 짜증이 머리끝까지 난 것 같아 보였습니다. 시작부터 이러니 소개팅의 진행이 좋을 리 없었습니다.

40살 남 : "일 끝나면 뭐해요?"
라라윈 : "전 블로그도 하고요. 만화나 미드 보면서 쉬어요. 일 끝나면 뭐해요?"
40살 남 : "아, 나요? 난 하는게 있죠. 우선 다음 아고라에 들어가서 스트레스를 풉니다. 거기 들어가서 댓글도 좀 달고 욕도 실컷하면 하루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풀려요 ㅎㅎㅎㅎ"

40살 남자 소개팅,


여기에서부터 흠칫했습니다. 역시 고등교육 받은 것과 인성은 별 관계가 없다는 것에 놀랐고, 나이 마흔이나 된 양반이 일 끝나면 다음 아고라에서 악플 싸지르며 스트레스 푼다는 것에 너무 놀랐습니다. 그 때만 해도 악플은 꼬꼬마나 남기는거라고 순진하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이어지는 대화도 가관이었습니다. 갑자기 다음 아고라에 꽂히신 40살 아저씨께서는 나라 돌아가는 꼴에 대해 욕을 하시고, 세상 모든 것에 불만이 있으신 것 같았습니다. 소개팅에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치판 욕을 하고 계시니... 지금 뭐하고 있나 싶었습니다. 듣다가 "다 나쁘지만은 않을거에요." 라며 방향을 돌려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저씨는 남의 말을 안 듣습니다.

"아직 세상을 덜 살아서 뭘 모르시네."


라며 계속 세상 나쁜 놈들 욕을 했어요. 간신히 정치 이야기에서 맛집 이야기로 넘어갔는데, 맛집 주제에서도 대단하셨습니다.

"원래 나와서 뭐 사먹으면 안돼요. 이거 다 미원 덩어리야. 이런거 많이 먹으니까 피부가 안 좋아지는 거에요. 나 보면 몇 살처럼 보여요? 난 집에서 직접 샐러드랑 음식해서 먹어요. 운동도 하고. 그래서 나 몸 좋지 않아요?"


네. 피부가 좋으시긴 했습니다. 그러나 마흔살은 마흔살 이신지라 서른이었던 제 눈에는 그냥 아저씨셨는데 본인 스스로는 자신을 대단한 꽃미남으로 여기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피부 자랑에 이어, 자신의 근육 자랑, 패션 자랑을 하셨어요. 저 근거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40대 남자 소개팅, 최악의 소개팅,


그냥 됐고, 나는 최고야. 나는 다 맞아. 너는 어려서 몰라. 이런 느낌이었어요.
당시에는 최악의 소개팅에 성질이 나서, '그러니까 나이 마흔 먹도록 혼자있지. 잘 생겼고, 허우대 멀쩡하고, 돈도 잘 벌고, 능력도 있고 좋은데, 성격이 혼자 잘난 고집쟁이니까 여자들이 못 견디는거야. 이런 식으면 앞으로도 혼자일껄' 이라며 (속으로) 악담을 했었습니다. 그 때는 그 남자가 왜 그랬는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제 나이가 서른 중반이 되고 보니... 어느 순간 저나 또래의 모습에서 그 때 그 최악의 소개팅남이 보였던 것 같은 남의 말은 안 듣고 자기 혼자 옳고, 자신은 최고라는 아집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ㅠㅠ (그래서 제가 아직 결혼을 못하나봐요 ㅜㅜ)


이제 남의 일이 아니라 제 일이 되었으니, 대체 왜 나이먹으면 아집만 늘어가는지 고민을 했습니다.
보니 나이가 먹음과 동시에 피드백을 해주는 사람이 확 줄어드는 탓이 컸습니다.
우선 나이를 먹으면 가족들도 별 말을 안 합니다. 제가 20대 때까지만 해도 엄마의 피드백이 엄청났었습니다. 그러나 30대가 되고 30대 중반이 되니까 더 이상은 제 성격이나 몹쓸 점들에 대해 말씀을 안 하십니다. 엄마가 "넌 성격이 너무 차가워." 라거나 "너는 어쩜 그리 무심하니" 등의 차갑고 날카로운 말씀들을 하실 때는 상처는 받았지만 스스로 되돌아 보기는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무 말씀도 안 하시니까 제가 나이 먹고 성격이 둥글해져서 아무 말씀 안하시는 줄 착각을 하고 살았던 겁니다.
학교나 직장에서도 그랬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위보다 아래가 늘어납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성격 지적이나 결점 지적을 하기가 힘들고, 주로 듣기 좋은 말들을 많이 해주니까 정말 그런 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령 "그 나이처럼 안 보이세요. 정말 스물 여섯인줄 알았어요." 이런 립서비스를 자꾸 들으면 제가 아직도 20대처럼 예쁜줄 압니다. "워낙 성격이 좋으셔서" 이런 립서비스 자꾸 들으면 진짜 제 성격이 짱짱 좋은 줄 알고요. ㅡㅡ;
결혼한 분들을 보니, 배우자와 아이들의 피드백에도 많이 배우는 것 같았습니다. 가령 "아빠는 왜 맨날 게임만 해요?" "엄마 왜 그렇게 말해요?" 같은 아이들의 순수한 지적에 더 깨닫고 배우는 것 같은데, 저는 배우자도 아이도 없으니 정확하게 보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는 겁니다.
말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점점 나는 괜찮고, 나는 옳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면서 고집쟁이가 되나 봅니다. 나이 먹으면서 점점 최악이었던 고집쟁이 40살 소개팅 남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 같아 무섭습니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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