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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스러운 연장자 계산문화

· 댓글개 · 라라윈
사람을 사귀고 만나는 일은 참 즐겁습니다.. 하지만 어릴적처럼 서로의 집에 놀러가서 엄마가 해주는 간식먹고 노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만나면 뭘하든 돈이 듭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반갑더라도, 돈 문제가 명확하지 않은 관계에서는 어떻게 해야되는지 참 고민될 때가 많습니다.  서로가 경제상황을 잘 알고, 돈에 대한 부분도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사이인 사람과 만날 때는 괜찮지만, 그렇지 못한 모든 사람과의 만남에서는 '돈'이 라는 부분이 참 골칫거리인 것입니다.
특히 자신보다 어린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이 부담이 상당합니다.


나이 많은 쪽이 계산을 하는  '연장자 계산문화'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화의 시작은  먼저 직장생활을 하게 된 인생선배들이 아직은 학생인 어린 후배들에게 밥 한끼 사주고, 술이라도 한 번 더 사주던 것에거 비롯된 것 같습니다. 대체로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사회적으로 더 높은 직위에 있고, 큰 수입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보니,  상대적으로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와 박봉 또는 용돈을 받는 어린 사람들에게 베풀려고 한 것이지요.
문제는  좋은 마음의 베품이 곧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겁니다. 나중에는 경제적 처지가 비슷한 한 두 살 차이라해도, 한 살이라도 많은 사람이 돈을 더 내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가 되어버린 겁니다.


대학교 1학년때의 일 입니다. 그 때는 뭣모르고, 선배들이 매일같이 밥 사주고 술 사주는 것이 당연한 일인 줄 알았습니다. 1학년들은 시간표도 비슷하고 대학생활에 대해 잘 몰라 여럿이 뭉쳐다니는데, 그렇게 여럿이 떼지어 다니며 선배들만 눈에 띄으면, 우르르 달려가서  "선배~~ 밥 사주세요~~" 하면서 선배들을 괴롭히곤 했습니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수업을 들으러 가는데, 한 2학년 선배 한 명이 지나가더군요.
저희 1학년 무리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죠.
"오빠~ 점심 드셨어요~?" (그 날은 점심 먹은 상태라 정말 순수한 질문이었는데...^^;;)
"으...으응..... 나 저 바쁜 일이 있어서..."
하며 묻지도 않은 이유를 대며 바람같이 줄달음을 치는 것입니다. 점심시간에 1학년 후배들 한 무리를 만나니 밥이라도 사달라고 떼쓸까봐 미리감치 도망을 친 거죠. 그 때 저희들이 그 선배 참 찌질하다고 어찌나 흉을 보았던지... 평소 선배들을 보기만 하면 뭐 사달라고 괴롭혔으니 그럴만 했던 것인데도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밥 사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인사했는데 도망갔다며 참 구질구질한 선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새내기 시절이 끝나고 후배가 생기는 순간부터 도망간 선배의 심정을 200% 공감하게 되더군요.
한 학년 올라가도 한 살 더 먹는다고 갑자기 돈이 많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서 근근히 용돈 받아 쓰거나 쥐꼬리만한 알바비로 생활하는 것은 매한가지 입니다. 그 돈으로 학교 다니며 밥 사먹고 차비하고 용돈하기도 빠듯한데,  후배들 밥 사주고 술 사주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더군요.
게다가 후배들은 거의 정원 그대로라 인원수가 많은데,  선배들은 휴학, 입대, 연수, 취업 등등 각종 이유로 학교를 빠져나가 몇 명 안되기 때문에, 적은 수의 선배가 많은 후배를 챙기려니 더욱 부담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후배들과 아는 척 안하고 아웃사이더로 지내거나, 돈을 못내 찌질이 소리를 들으면서도 끼어서 어울리거나, 알바를 더 하며 돈을 벌어서 후배들 밥과 술을 사줘가며 선배 체면(?)을 지키는 등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선배노릇을 한 것 같습니다.


이 부담스런 연장자 계산문화는 사회에 나와도 계속됩니다.  직장인이라는 타이틀까지 얹어져, 돈 버는 사람이니 당연히 돈을 내야 한다는 뜨뜻한 시선까지 받게 됩니다.
동호회나 회비를 걷어 더치페이를 하는 모임조차, 처음에는 더치를 하더라도, 다음 2차나 3차는 으례 연장자가 내는 분위기 일 때가 많습니다. 회비는 떨어졌고, 분위기는 흥겨워 더 놀고 싶은 상황이고, 돈을 더 걷기에도 뭣하고, 이런 상황이면  그 중에서 나이 많은 사람이  내는 것이 정석같은 겁니다.
같은 직장연차거나, 비교적 동등한 입장에서 만났다 해도, 나이많은 쪽이 10원이라도 더 쓰는 것이 당연스럽습니다. 택시 한 번을 같이타도, 커피 한 잔을 뽑아도  나이많은 쪽이 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작은 비용조차도 연장자가 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지갑꺼낼 생각없이 앉아있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나마 센스있는 후배나 동생은 선배가 여러 번 사면 자신도  한 번은 산다거나, 밥을 얻어먹었으면 자판기 커피라도 한잔 뽑아온다거나 합니다. 그래도 쓰는 돈의 총액을 비교하면 대부분 나이많은 쪽이 나이어린 쪽과의 만남에서는 돈을 더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만나는 건 좋은데, 더치 좀 하면 안될까...ㅜㅜ



이렇게 나이많은 사람이 돈을 내야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하면 어떤 분은 어차피 돌고 도는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자신도 어릴 때 나이든 사람에게 베품을 받았으니, 연장자 입장이 되었을 때 베풀고, 그 베품을 받은 사람이 다시 후배들에게 베풀게 되니, 결국 서로 베풀고 받고 하는 것 아니냐는 것 입니다.
맞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는 것이 가장 큰 해법일 겁니다.
그럼에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계산을 하게 되는 문화는 몇 가지 스트레스를 줍니다. 

● 나이많은 사람이 계산하면 당연히 여기며 고마운 줄도 모를 때가 많아서 속상해진다.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립서비스로 '고마워요.' 한 마디는 할 지 몰라도 진심으로 고맙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저 사람은 나이가 많으면서도 뭐 한 번 잘 안사준다거나, 계산을 잘 안하는 센스없는 사람이라 수근거리지나 않으면 다행입니다.

● 계산을 하지 않아도 눈치 보인다.
계산을 하지 않고 있어도 괜히 도둑 제 발 저리듯 마음이 부담스러워집니다. ㅜㅜ 이 것이 당연하다 싶어서인지 나이 어린 분이 뭘 사도, 그만큼 이상을 해줘야 할 것같은 의무에 시달립니다.

● 생색나게 쓰는 것도 아니면서, 그런 식으로 쓰는 돈이 지출은 크다.

밥 한 번 사고, 차 한 잔 사고, 술 한 번 사면.. 별거 아닌거 같으면서도 가계부에는 큰 지출이 될 때가 많습니다. 몇 만원은 기본입니다. 절약하겠다며 몇 백원, 몇 천원이라도 할인받으려고 인터넷 쇼핑몰을 몇 시간을 뒤져가며 필요한 것을 구입하며 아낀 돈이나,  온갖 알뜰 팁을 찾아가며 조금씩 아끼며 절약했던 일이 무색하게끔 큰 돈이 훅 나갑니다.
 
● 돈문제 부담으로 대인관계와 만남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너무나 좋지만, 만날 사람이 어린 동생, 후배라거나 어린 사람이 더 많고, 나보다 나이많은 사람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면 조금 부담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처음부터 속 편하게 '오늘은 만나면 얼마 정도는 쓰겠군..' 하는 지출계획을 세우고 가면 조금 낫긴 하지만, 사람들과 만나면서 드는 비용은  물건사듯이 얼마가 딱 정해져있는 금액이 아니라, 예상했던 것보다 초과될 때도 많고 여러 변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않을 때는 그런 만남이 참 부담스럽습니다.



이제는 연장자 우대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사회 분위기가 많은 면에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돈 계산 할 때만큼은  확실히 연장자 우대를 해주는 것 같습니다. 한 두 살의 나이차이가 곧 경제력의 차이도 아닌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문화가 이제는 좀 바뀌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리다는 이유로 얻어먹은 적도 있으니 나이들었을 때 사주는 것은 당연하다, 난 어렸을 때 얻어먹은 적이 없으니 사줘야 할 이유는 없다, 등의 셈을 하면 한도 끝도 없는 일입니다. 셈할 것 없이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있어, 누구를 만나든 대접할 수 있고, 마음 편하게 계산할 수 있다면야 이런 이야기는 할 필요도 없습니다. 마음이야 베풀고 싶더라도, 지갑속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겠지요....



+ 대인관계의 돈 문제에 대한 다른 이야기 ☞ 누가 돈 낼지 빨리 결정되어야 음식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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