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주선하는 소개팅이 싫은 진짜 이유

라라윈 연애질에 관한 고찰 : 엄마가 주선하는 소개팅, 당사자는 괴로운 이유

이어폰을 다른 가방에 두고 와서 음악을 듣지 못한 채 멍하니 버스에 앉아있었습니다. 혼자 있노라면 주위 사람들의 대화가 들려옵니다. 제 뒷자리에 앉은 어머니들의 대화 주제는 "엄마가 주선하는 소개팅" 이었습니다. 아마도 아들이 소개팅 상대의 사진을 본 뒤에 소개팅 자체를 하지 않겠다고 했나 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날짜 잡아놓고 사진 봤다고 어떻게 만나보지도 않겠다고 하니? 내 입장은 뭐가 돼. 그 나이 먹고도 왜 이리 철이 없니. 원래 이런건 엄마가 나서서 해야 되는게 아니라, 지들이 알아서 좋은 짝 찾아와야 되는거 아니니."

만날 약속 다 잡고, 사진 찍힌게 있어서 "얘야." 라면서 살짝 보여줬더니 아들이 소개팅을 취소해 버리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씀하시는 어머니는 타는 속을 주체할 수 없으신 듯 하였으나,
듣는 저는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대체 어떤 사진을 보여줬길래, 바로 취소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설령 사진이 아무리 폭탄이라 한들 어른들과 약속한 것을 쿨하게(?) 깨버릴 수 있는 아들의 패기가 부러웠습니다.

보통은 설령 사진을 보고, 밥이 안 넘어가며, 나가기 싫어서 열이 나고 몸이 아플지라도..
엄마의 "입장"을 생각해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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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입장, 체면, 대인관계는 아주 아주 중요한 거니까요...
자식된 도리로 나로 인하여 엄마의 대인관계를 곤란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엄마의 "입장, 체면"이 소개팅을 너무 힘들게 합니다.


주선자끼리만 잘 알아


엄마와 주위 어른들이 물어온 소개해준 사람은 대개 훌륭합니다. 우선 조건 심사에서 엄마와 어른들의 커트라인을 통과한 사람입니다. 여자가 직접 묻거나 파악하기 어려운 집안 내력까지 꼼꼼하게 파악해 오십니다.
예를 들어, 집안에 재산은 어느 정도 있고, 아버지 직업은 무엇이었는데 현재는 퇴직하신 상태로 연금은 어느 정도 받으시며, (결혼해서 부모님 모실 필요는 없다고), 아버지는 몇 째이고, 소개받을 남자는 외아들이지만 제사는 1년에 2번만 지내면 되고, 남자의 직업은 무엇이며 장래성은 어떻고, 아마도 결혼하면 집은 집에서 사 줄거고, 누나나 여동생이 없고 어머니가 매우 좋은 분이라 시집살이 걱정도 없고, 남자의 성격은 어떻고...
이런 식으로 정말 꼼꼼하게 파악해 오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엄마와 어른들 역시 "어른의 입장에서 가끔 겪어본 사람" 이거나, "본인은 잘 모르지만, 그 엄마와 친한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주선자이신 어른들이 당사자들을 제대로 알지를 못해요.

"내가 정말 친하게 지내는 형님이 있는데, 아들이 있거든.
그 아들이 이렇고, 저렇고, 미주알 고주알."
"그래? 왜 그 형님 알지? 그 형님네 딸 있는데 그렇게 소개해 주면 좋겠다."

이런 식이에요.
당사자와는 이야기 한 번 제대로 섞어본 적이 없으면서, 그 엄마와 친하다는 이유로 소개팅이 주선이 됩니다. ㅡㅡ;
엄마가 주선하는 소개팅이 망하는 첫번째 이유가 이겁니다. 그 집에 가족관계까지 파악하는 꼼꼼함은 있으나, 정작 당사자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서로 주워들은 것들만 맞춰서 주선을 하다보니 성공율이 뚝 떨어집니다.

만나보면, 들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나와요. ㅡㅡ;


엄마 얼굴에 먹칠하는 것은 아닐까


어른들께 신세대 어른이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으나, 쿨한 요즘 어른들은

"전화번호 줄 테니까 니들끼리 만나. 그게 편하지? 호호호" (난 이런 자리 따라가는 노인네가 아님. 난 쿨함)
"어땠냐고 물어보고 그러면 부담될테니까, 안 물어볼께. 호호호" (난 쿨함)

그러나.... 정말로 아~~~~ 무 말씀도 안 하셔도 부담스러워요. 소개팅의 경과가 안 궁금하실 리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정말 신경이 쓰입니다. 주선자끼리 만나서 소개팅 얘기를 할 가능성이 100% 입니다. 무료한 일상에 사람 이야기, 사람 뒷담 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는데.. 얼마나 이야기를 하시겠어요... ㅜㅜ

고로 시작부터 CC나 사내 커플처럼 구설수를 신경써야 되는 사이입니다. 특히나 처신을 잘못하게 되면, 곧장 엄마 얼굴에 먹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약속 시간이 늦거나, 약속이 깨졌는데 주선자 아주머니가 알게 되면, "어휴. 그 집 딸 똑부러진다고 자랑하더니. 시간 개념이 좀 없나봐. 엄마는 안 그러는거 같던데, 왜 그래. 아빠 닮았나." 라는 식으로 말이 나오기 십상입니다. 남자 입장에서도 부담되기는 매한가지 일 것 같습니다. 여자들은 대부분이 엄마와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를 다 하기 때문에, 일거수 일투족이 그대로 어머니 귀로 직행할 수 있습니다.

편하게 만나야 되는데, 결국은 엄마 얼굴에 먹칠하는 것은 아닐까.
엄마가 몰랐던 내 모습이 그대로 엄마 귀에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 구설수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면접만큼이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신경 쓰입니다.


어른들은 몰라요


엄마와 얼마나 친한가와 관계없이.. 분명 어른들은 모르는 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면 막 장난치는데, 집에서는 무뚝뚝하다거나..
집에서는 반듯한 아이지만 밖에서는 아니거나..
특히 집에서는 모르시나 밖에서는 술 먹고 다니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적당히 조절하고, 엄마는 알면서도 눈감아주고, 그렇게 술 안 먹는 걸로 정리되어 있는데, 엄마가 주선한 소개팅 남이 술을 마시자고 하면 뭐라고 할지 난감합니다.

곧장 엄마 귀에 들어가고 어른들 귀에 들어갈 수 있으니,
집에서와 똑같이 일관되게 "저는 술을 못해요" 라고 할 것인지,
가까워지기 위해서 "좋아요! 술 한잔 해요!" 라면서 흔쾌히 술자리를 즐길 것인지..
여기부터 고민 될 수 있습니다.

집에서 알고 있는 아들 딸은 반듯하고, 착하고, 여자도 모르고, 주색잡기와는 일억광년 떨어져 있는 줄 아시지요...
엄마가 주선한 소개팅은 이런 이미지에 흠집이 날 수 있기 때문에, 더 부담스럽습니다.


소개팅 싫어하는 딸래미 아들래미 때문에 걱정하시는 부모님께...


지들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세요....
소개팅이 싫거나, 이성이 싫은게 아니라,
"엄마가" 주선하는 소개팅이 싫을 뿐 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차마, "엄마가" 주선해서 싫다고 말할 수는 없고, 그냥 "혼자 살거야!" "관심없어!" 이라고 하는 것이 앞으로도 편할 수 있어서 귀찮다고 하는 거에요. 따님 아드님도 외로워서 자발적으로 찾고 있을겁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일일이 엄마께 보고 안하는 자녀들이 더 많을 뿐 입니다.

"엄마 엄마, 나 회사에서 여직원 찍었음."
"엄마, 버스에서 어떤 남자랑 눈 마주쳤는데 그 남자도 자꾸 나를 쳐다봤어."


라는 연애의 삽질 생중계를 엄마께 하기는 곤란하다는..... ㅠㅠ
그냥 엄마께는 이성에서 추접추접거리지 않는 차가운 도시 남자, 차가운 도시 여자로 남을 수 있게 알면서도 모른 척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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