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값...

떡국은 여러그릇 먹었지만, 나이는 한 살을 더 먹었습니다.
서른 살에 고정된 블로그 제목처럼 기분은 늘 같은 나이인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친절하게 나이를 알려주는 사람들이 많네요. (그런 건 안 알려줘도 된다구 ㅡㅡ;;)
"이제 내 나이가......! 아.... ㅜㅜ" 하는 탄식을 5분에 한번씩 추임새처럼 하는 친구.
"니 나이가 올해 몇 살이 된거지? 시집가야지." 하는 동네 어른.
나이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 없게 해주는 고.마.운. 이웃들입니다. ㅡㅡ;



어쨌거나 덕분에 나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나이는 그저 신경쓰이는 숫자일 뿐, 막상 실체는 허깨비같은 막연한 개념입니다. 다만 주변사람들을 보며 "나이값 한다." "나이값 못한다"는 말을 하면서 나이라는 것 속에 담긴 알맹이를 알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이값 한다는 말보다는 나이값 못 한다는 말이 더 자주 사용되는데, 나이값 못 한다는 말은 나이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 철 없이 굴 때 자주 쓰이는 말 입니다. 어떤 분은 '나이는 먹었지만 쓸모가 없다'. 는 말로, 어떤 분은 '개념이 없다.'는 말로 이용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참 주관적입니다.
예전에 친구집에 갔다가, 부모님은 아직 식사를 안 하셨는데, 드실거냐고 묻지도 않고 혼자 식사를 먼저 하는 친구를 보며 정말 개념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집이 식당을 하다보니, 빨리 먹고 식당을 보아야 부모님이 편히 식사를 하실 수 있기 때문에 먼저 빨리 식사를 해버리는 것이 개념있는 행동이었습니다. 나이가 몇 살인데 부모님도 안 챙기고 애처럼 저만 먹나 했더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일은 수 많은 상황에서 계속 반복됩니다.
나이 먹어 학교에 다시 다니니 학생들은 개념이 없었습니다. 사정에 따라 과제를 못할 수도 있고, 일이 바쁘면 수업에 참석할 수 없을 수도 있는 것인데, 그런 것을 이해를 못하고 사람을 피곤하게 하길래 사회생활 개념이 없어서 그런다 생각했습니다. 학교는 내가 좋아서 다니는 일이고, 사회생활에서는 내가 좋지 않아도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데, 뭘 모른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학생이면 학생답게 과제와 수업을 최우선시해야지, 나이 먹어서 다시 공부한다면서 일을 중시하는 제가 개념이 없는 것이더군요. 나이 먹어 개념없다는 말은 입장에 따라서도 다른가 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나이값 못한다라는 말은 자기마음대로 기준을 들이대며 그 나이에는 그렇게 살라고 강요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값 못한다는 말처럼 살지 않는 것은 나이에 대한 좋은 기준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나이값 한다는 말은 어떨때 쓸까요?
저는 어린 사람과는 다른 시선과 이해, 배려에서 나이값을 느낍니다.
 
회사에서 직원들의 공공의 적이 있었습니다. 빨리 입사해서 나이는 어린데다가 동료직원들은 인사를 해도 잘 대꾸도 안하면서, 사장님의 오른팔이 되고 싶다며 아부작렬인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직원과의 사회성을 꽝이지만, 일은 잘하기에 상사는 상당히 예뻐하였고, 그는 더욱 공공의 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회식자리에서 선배가 그의 칭찬을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레 다른 직원들은 가뜩이나 쓴 술이 더 씁쓸했습니다. 선배가 뭘 모른다 생각했는데, 그의 장점에 대한 칭찬과 함께 단점에 대한 이야기도 슬그머니 하시더군요. "사회성이 없으면 큰 일을 맡기가 어렵다. 혼자 하는 일은 잘 하지만 팀 프로젝트에서는 사회성도 중요해서, 이런 스타일 사람은 참 괜찮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아깝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선배라고 모르는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속이 시원하면서도, 동료들이 그 사람이 잘 안 되기를 바라며 뒷담화를 해 대던 것과는 달리, 진심으로 그의 앞날을 걱정하고 단점이 문제되는 이유를 차분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나이가 다르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해를 못해서 속상해하거나, 한 면만 보고 흥분하는 일을 나이가 더 드신 분은 여러 면으로 생각하고 이해하고 받아주는 모습에서 나이값을 느꼈습니다.
나이먹는 것이 감사한 점 중의 하나도, 예전에는 이해를 못해서 상처받고 미워하고 흥분하던 일들을 이제는 좀 더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일들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지혜에서도 나이는 그 값을 톡톡히 합니다. 저는 하나밖에 생각을 못해서 어떻게 할 지 모르며 답답해하는 일을, 나이 드신 분과 상의를 하면 다른 해법을 금세 제시해 주실 때, 나이는 거져먹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저는 여전히 하나밖에 생각 못하는 것들이 많지만, 그래도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하나뿐 아니라 둘, 셋도 생각하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나이만큼 이해와 배려로 빛을 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새해를 맞이해 철 1mg 더 들어간 생각 한 번 해 봅니다. ^^(이 맘에 오래가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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