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사랑한다면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우연히 옆자리에 있던 여자분들의 대화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인 듯 했습니다. 아마도 한 여자분이 새로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담배를 끊으라고 했는데도 남자친구가 계속 피우는 것이 불만인 듯 했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다른 친구 한 명이 얘기합니다.
"사랑하면 담배 쯤은 다 끊더라. 내 남친도 1년 만났는데, 내가 끊으라니까 끊더라고. 내 남친 나 완전 좋아하잖아."
옆에 있던 또 다른 친구도 거듭니다.
"야! 사랑하는 여자가 담배 하나 끊으라는데 그것도 못해주냐? 사랑하면 그 정도쯤 할 수 있는거 아냐?"

정말 사랑하면 그 정도쯤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걸까요....
몇 년 전만해도 그 분들의 이야기처럼 사랑하면 금연 정도는 해 줄 수 있고, 남자가 원한다면 여자도 변해 줄 수 있는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얘기에 수많은 회의가 생깁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좋아해주면 안돼?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 머릿 속에 가슴 속에 그리는 이상형이 있습니다.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나오는 여자..
웃을 때 목젖이 보이는 여자.
김치볶음밥을 잘 만드는 여자..
라며 끝없이 계속되는 변진섭의 노래 '희망사항' 못지않게, 각자 희망사항은 엄청납니다.
다만 그것을 모두 충족시키는 사람을 찾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은 대부분 알고 있고, 오랜기간 솔로로 지내다보면, 희망사항이고 뭐고 간에 무조건 애인이나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질 뿐 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원래 끝이 없어서, 처음에는 커플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좋고, 애인이 마냥 사랑스럽고 좋지만, 조금 지나면 자신의 원래 희망사항이 하나 둘 튀어 나옵니다.


"난 머리 긴 여자가 좋아. 너도 이제 머리 자르지말고 길러."
"난 술자리에서 내숭떠는 여자도 싫지만, 너무 잘 먹는 여자도 싫어. 적당히 분위기 맞춰주면서 한 잔 먹고 얼굴 발그레해지는 귀여운 여자가 좋더라."
"난 요리 잘 하는 여자가 좋던데. 도시락 싸주고 그런거 있잖아. 너는 도시락 같은거 못 만드냐?"
"난 자기 일 잘하는 여자가 참 멋있더라. 그런데 일한답시고 남자직원들하고 어울리고, 회식자리 같은데서 푼수떨고 끝까지 남아있는 여자는 딱 질색이야. 그런 여자 얼마나 싸보이는 줄 알아? 너도 일은 열심히 하되, 그런 자리에서 싸보이지 않게 왠만하면 남자들하고 술먹는 자리는 가지말고, 가더라도 1차만 딱 참석하고 일 있다고 하고 나와."
"난......"


"난 배 나온 남자는 싫어. 운동좀 해."
"난 담배피우는 남자는 딱 질색이야. 너도 담배 좀 끊어. 담배가 몸에 얼마나 해로운데.."
"난 술 적당히 먹는 남자가 좋긴한데, 그렇다고 맨날 술 퍼마시는 남자는 싫어. 너도 적당히 마셔."
"여자친구 있으면서 이 여자 저 여자한테 잘해주고 껄덕대는 남자들 보면 얼마나 이상해보이는 줄 알아? 여자들이 뒤에서는 껄떡쇠라고 욕해. 자기도 그러지 마."
"난 연락 잘하는 남자가 좋아. 아침, 점심, 저녁 꼬박꼬박 연락해주고, 자기 전에 항상 전화해."
"난....."


그 희망사항과 요구조건들을 듣다보면, 듣는 것만으로도 지칩니다. 뭐 그렇게 바라는 것이 많은지..
처음의 행복함과 감사함은 어디로 사라지고, 그렇게 불만스러운 것인지...
저런 바램들을 듣게 되면, 서로 속상합니다. 

'뭐야? 그냥 나 자체로 좋다며? 언제는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린다며? 술 잘 마시는 여자가 좋다며?
그냥 다 작업하려고 빈말한거야? 그동안 이런 점을 좋아한다, 반했다 하는 것도 다 거짓말인가?
이 남자가 좋아하는 건 나같은 스타일이 아닌가 보구나... 그냥 여자가 없어서 아쉽던 차에 만난건가..'

'처음엔 체격좋은 남자가 좋다며? 담배피우는 모습이 멋있다며?
처음에 봤을 때는 별 말 없고 착한 스타일 같더니, 날이 갈수록 사람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구나..
이 여자의 바램의 끝은 어딜까... 여자라는 존재는 정말 피곤하구나..지친다, 지쳐.'

상대방이 모두 좋다고 했던 말들이 점차 의심스러워지면서,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인지, 정말 사랑하는 것인지 조차도 의심스러워지기도 합니다. 자신을 있는 그래도 받아들이고, 사랑해주지 못하는 상대방의 부족한 사랑에 서운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요구조건을 말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지 않는 것은 서운해 하면서도,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방과 나에게 다른 기준을 들이대는 것 입니다.

상대는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나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또 상대에게 바랍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왜 나는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기를 바라면서, 상대방은 날 위해 바뀌어 주길 바라게 되는 걸까요...




상대방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모습을 요구하는 이유

친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담을 주고 싫어할 까봐 하지 않는 무리한 요구들을, 연인에게는 마구 하게 되는 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긴 합니다. 

첫 째, 연애초반의 상대방의 변화를 보았기 때문.
연애 초에 상대에게 빠졌을 때는,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별 짓을 다합니다. 원래 그런 스타일이 아니어도,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 맞춰줍니다. "난 네가 원한다면 뭐든지 해줄 수 있어." 하는 자세죠.
그러나 연애초반이야 커플이 되기 위해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커플이 되고서도 계속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둘의 관계가 편해질수록, 초반의 설레임이나 '이 사람과 사귈 수 만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것들은 잊혀지고, 편안해 지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잠깐의 변화는 신데델라의 호박마차 만큼이나 효력이 짧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커플이 되고 나면, 12시가 된 것처럼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초반에 자신을 위해 변화했던 모습을 보았고, 그런 모습과 노력을 계속 원합니다. 자신을 좋아하니까 변했었고, 그러면 지금도 좋아한다면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입니다.'
 
둘 째,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누구나 그렇다는 합리화.
사랑에 빠진 남자 입장에서는,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어울리는 것이 싫고, 짧은 치마 입는 것이 싫고, 몸매가 너무 드러나는 옷을 입어 다른 놈들의 시선을 받는 것도 싫고, 담배피우는 것은 더 싫고, 술 먹고 늘어지는 것은 정말 싫은 겁니다.
사랑에 빠진 여자의 입장에서도,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어울리는 것이 싫고, 친구들과 밤새도록 술 마시는 것이 싫고, 일 있다며 연락없는 것이 싫고, 담배를 피우는 것도 싫은 것 입니다.
"그럼 자기 애인이 그러고 다니는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사랑하니까 그런 소리도 하는거지, 관심없는 사람이야 뭘 어떻게 하든 무슨 상관이에요?"
아마도 대부분 이렇게 이야기 할 것 입니다. 그렇기에 상대방이 자신의 질투심이나 마음을 이해하고, 잔소리를 달게 듣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연인이 가져야 할 기본 개념이라고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셋 째, 상대방 본인에게 도움되는 말이라는 생각하기 때문.
담배를 끊는 것, 술을 적게 마시는 것, 남보기에 좋게 행동하는 것.
이런 부분들은 본인들에게도 좋은 일 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요구들은 다 상대를 사랑하고 위하니까 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싫어하더라도,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너 좋으라고 하는 말이니,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입니다. 부모님이 아이들 잘되라고 잔소리 하시는 것과 비슷한 심정일지도...



애인이 그렇게 바라면 좀 들어주면 되는거 아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상당한 희생도 감수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자신을 위해 해 주는 잔소리는 들어줄 수도 있죠. 하지만 적은 수의 고쳐줄 수 있는 부탁이라면 모를까, 이기적으로 자신에게만 맞추어 달라는 요구는 들어주기가 어렵습니다. 또는 해 줄 수 있어도, 그런 부탁들이 해주기 싫어서 안하기도 합니다.

첫 째,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한 서운함 때문에 들어주기 싫어.
앞 서 말한 것처럼, 나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대로 뜯어고치려 드는 것은 그 사람이 나를 온전하게 좋아하지 않았다는 데 대한 반증같아서 서운합니다.

둘 째, 나는 생각않고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에 대한 반감때문에 들어주기 싫어.
애인이 바라는 것이 들어줄 수 있는 간단한 것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것 일 수도 있습니다. 꾸미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여자에게 옷차림의 규제를 두는 것이나,담배가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방법인 남자에게 하루 아침에 그런 것들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입니다. 
자신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지 말라는 상대방의 이기적인 태도에도 반감을 느끼게 됩니다.

셋 째, 하려고 했는데 자꾸 들볶으니 하기 싫어.
원래 공부를 하려고 하는 찰라에, 엄마가 "공부 좀 해라." 하시면 하기 싫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연인이 생겨서, 이제는 태도와 행동을 조심하고 변화하려고 하던 차에, "이것 좀 이렇게 해. 저렇게 해." 하고 잔소리를 하면 하기 싫어집니다. 




"사랑한다면 그 정도는 해 줘야 하는거 아냐.." 라고 하는 순간,
사랑은 인질이 되고 조건이 되어, 사랑이 너무 힘들어 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사랑하는 마음이 상대의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안되는 인질같아 지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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