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반응 안좋은 속사정, 내가 싫어서가 아니라...

라라윈 연애질에 관한 고찰: 카톡 반응 퉁명스러운 속사정

어제 밤은 한여름 장마철 폭우 같이 비가 퍼부었습니다.

지하철을 빠져나와 몇 발자국 걷기가 무섭게 물이 신발 속으로 들어오더니, 채 열댓걸음도 걷지 않은 상태에서 물이 부츠 발목까지 차올라 양말이 흠뻑 젖었습니다. 바지도 다 젖어서 살에 척척 들러붙고, 어깨도 젖고, 가방마저 젖을 것 같아서 가방에 들어있는 노트며 태블릿이 젖지 않도록 가방을 품에 끌어 안은채 비와 사투를 벌이며 집에 왔습니다.

불과 10분~15분 정도 폭우 속을 걸어온 것 같은데... 극기훈련이라도 벌인 것 같았습니다. 비 속에서 소중히 끌어안고 온 가방을 내려놓고, 겉옷을 벗어 던지기에 앞서, 겉옷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테이블에 올리려다가 혹시 무슨 연락이라도 왔는지 확인해보니 친한 선생님의 연락이 있었습니다.

주말의 약속을 확인하는 내용과 함께.. 마지막에는 예쁜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비오니 공기도 시원하고 좋네요 오늘 밤은 :) 낭만적이예요 날이!! ㅋㅋ"


선생님은 따뜻한 인사말로 보내신건데, 폭우로 옷이 다 젖고, 발목까지 물이 차 오른 신발을 신고 집에 방금 들어온 저로서는 약올리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낭만은.. ㅡㅡ 지금 다 젖어서 짜증나는고만. ㅡㅡ^'


(이럴때만) 겉과 속이 일치되는 저는... 이 생각을 고스란히 적어 보냈습니다.


"ㅋㅋㅋㅋ 방금 우산쓰고도 비 쫄딱맞아서 전 우울한 비에요 ㅋㅋㅋ"


센스쟁이 선생님은 저의 'ㅋㅋㅋ' 속에 감춰진 짜증을 간파했는지 순간 얼어붙는 채팅창을 웃음으로 대응해 주셨고, 약속을 잡고 대화는 종료되었습니다. 우아하게 대화가 끝났으나 선생님은 저 때문에 봄비의 낭만을 즐기던 감성을 잡쳤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저는 주말에 선생님을 만나서 클클거리면서 제가 쫄딱 젖어서 짜증났던 이야기를 상세히 하면서 수다를 떨고 끝이 날 겁니다.

그러나 이 상황이 남녀였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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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 : 비오니 깨끗하고 좋다, 낭만적이야.

남 : 우산쓰고 비 쫄딱맞아 짜증나


여자가 삐치지 않았을까요.... 성격이 욱한 누군가는 바로 남자에게 퍼부을지도 모릅니다. 말을 왜 그렇게 하냐며 성질을 부리고, 가뜩이나 젖어서 짜증난 남자는 남자대로 성질을 낼 수도 있습니다. 남녀가 반대라면...


#2

남 : 비오니 깨끗하고 좋다, 낭만적이야.

여 : 우산쓰고 비 쫄딱맞아 짜증나


만약 남자가 여자에게 마음이 있어 작업하는 상황이었다면, 움찔하며 당황했을겁니다. 그리고 섬세한 여린 마음의 소유자는 여자의 대답을 보면서 그냥 자기가 싫어서, 또는 대답하기 귀찮아서 이렇게 보냈다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라, 안좋은 반응이 나오는 속사정은 저마다 처해있는 상황이 거의 늘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벚꽃이 너무 예뻐서 좀비엔딩을 부르며 봄기분을 내고 있다가 친구에게 "오늘 날씨 너무 좋다~~ 봄이야 봄" 이라고 보냈는데, 친구는 감기몸살로 오들오들 떨고 있다가 제 문자를 보고 "봄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몸이 너무 안 좋아 죽겠구만." 이라고 반응할 수도 있는겁니다.

많은 순간에 연락을 주고 받는 사람이 느끼는 상황과 감정은 타이밍이 꽝일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내가 싫어서 그런가보다..' 라고 하기보다, 정말로 그 사람이 지금 우산 쓰고도 비 쫄딱 맞아서 짜증이 머리 끝까지 난 상황일수도 있고, 방금 전에 상사에게 깨져서  누구에게라도 쏘아 붙이고 싶은 상황일 수도 있고, 전화 보다가 물건을 떨어트려 빡쳐있는 상황일 수도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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