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철학/일상 심리학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직업과 학교부터 물어볼까?

라라윈 2014. 4. 14. 17:03

라라윈 심리학 이야기 :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직업과 학교부터 물어볼까?

요가를 시작해 볼까 하고, 근처의 요가원에 가보았습니다. 점심시간이어서 인지 아무도 없었어요. 잠시 후 돌아온 선생님은 요가 수련 시간표가 적힌 종이 쪼가리 하나를 내 밀었습니다. "회사가 근처세요?" 라고 묻기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더니, 바로 되묻습니다.

"어디 다니시는데요?"

순간 당황했습니다. 회사가 어디냐니, 제가 어디라고 말을 하면 알아들을 것도 아니면서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요? 당연히 자신이 알만한 주변의 은행, 기업 같은 곳에 근무하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을 하는 걸까요? 아주 짧은 순간에도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대충 사무실이 근처라고 얼버무리며 돌아 나왔습니다. 비단 요가원에서 만난 선생님 뿐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이 만나면 학교나 직업을 묻습니다.

"어디서 일하세요?" "무슨 일 하세요?" "학교가 어디에요?" "어느 학교 다니셨는데요?"

등의 소속이 확인되는 질문을 합니다. 나이를 먹었는데 명함이 없다고 하거나 변변찮은 소속이 없다고 하면 대화가 종료되곤 합니다.



한 때 우리나라 학생과 외국 학생의 자기 소개 동영상이 떠돌았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소개에서 어느 학교 무슨 과를 나왔고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고 가족 관계나 살던 곳 사는 곳 등의 호구조사 위주로 이루어진데 반해, 외국 사람들은 자신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를 보고 외국 학생들은 좀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우나 우리나라 학생들의 자기 소개는 틀에 얽매여 있다고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야기를 할 때 직업이나 학교와 같은 소속을 이야기하고, 외국 사람들은 자신의 취미 같은 이야기를 하는 차이가 나오는 데는 크게 2가지 원인을 들 수 있습니다.


1. 한국 집단주의 문화 vs 외국 개인주의 문화


우리나라는 집단주의 문화입니다. 외국은 개인주의 문화이고요.
간단히 보자면 개인주의는 독립적 문화로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즉 남들이야 뭘 어떻게 하고 살던 말던 내가 중요합니다. 독특하고 자립적인 존재로서 개인이 중요합니다.
반면 집합주의 문화는 타인과 관련된 내가 중요합니다. 집단 속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집단 속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물론 이런 국가별 문화 차이 연구는 한국이나 아시아 쪽 학자들이 주로 연구한 것이 아니라 서구 학자들이 연구를 주도했기 때문에, 읽어보노라면 집합주의 문화는 몹시 나쁘게 느껴지고, 개인주의 문화는 짱짱맨인 것 같아 보이는 가치관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서구 학자들의 의견을 100% 수용하기는 어렵지만 집단주의 문화에 살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 속에서 상대방의 포지션이 어떤지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 사람이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어느 학교를 다녔는지, 혹시 내가 아는 사람과 아는 사이는 아닌지 확인을 해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때 정리가 말끔한거죠.


2. 저신뢰사회 vs 고신뢰사회


후쿠야마 (1995) 박사는 한국과 중국, 이태리 같이 신뢰의 범위가 혈연 등 일차집단에 머무르는 사회를 저신뢰 사회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와 달리 신뢰의 범위가 일차적인 혈연관계 연고자들 외의 일반적인 사람들에게까지 확대되는 일본, 독일, 미국 등은 고신뢰사회로 분류됩니다. 외국 학자의 연구 뿐 아니라 이재혁(2006), 박희봉 외(2003) 선생님들의 연구 결과에서는 한국 사회의 신뢰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고, 그나마 믿는 대상도 가족과 연고집단에 집중되어 있고, 공적, 제도적 신뢰는 눈에 띄게 없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우리는 저신뢰 사회를 넘어 신뢰가 거의 없는 불신 사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즉, 우리는 기존의 네트워크가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매우 믿고, 네트워크가 전혀 없는 그 외 타인에 대해서는 신뢰하지 않는 특징을 보입니다. 따라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나의 네트워크에 연결이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상대를 믿을지 말지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던 겁니다. 그래서 "어디 살아요?" "어느 학교 나왔어요?" "어디 다녀요?" 라는 질문들이 꼬리를 물 수 밖에 없었던 것 입니다. 예를 들어 "OO 대학교 다닌다" 라고 하면 대뜸 "OOO 아느냐? 내 친구가 거기 나왔다." 라고 하거나, 얼마 뒤에 제 레퍼런스 체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내 친구가 OO대학교 OO과 나왔다길래 최미정 아냐고 물어봤더니 모른다던데." 라거나 "나 아는 OOO이 너와 동기였다더라" 라는 식 이지요.

연일 우리의 개인정보가 신나게 털리고 있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신뢰사회인 미국, 유럽 일부 지역의 경우 상대의 이름, 이메일 정도면 되었지, 더 이상 그 사람을 믿는데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신뢰사회의 습성 상 상대의 회사, 집, 기타 등등에 대한 정보들을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문화 탓일 수 있습니다. 달랑 이메일과 비밀번호 밖에 없으면 그 사람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탓 입니다.

은행이나 기타 서비스의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고신뢰사회의 경우 요구되는 서류가 적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액에도 최소한 회사라는 소속단체의 간접 보증, 직접적인 인보증, 담보 등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주영 회장님의 조선소 도면 한 장 들고가서 거액을 대출 받았다는 신화가 우리나라에서는 나올 수가 없는 것이죠. 우리나라 같은 저신뢰사회에서는 조선소 구축 경험, 담보, 인보증 등을 다 요청을 했을 겁니다.


역으로 보자면, 우리는 집단에 속하기만 하면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 사이에..." "같은 학교 나왔는데..." "같은 직장 사람인데 설마.." 등의 급 신뢰를 받을 수 있죠. 그러나 그 집단에 속하지 못했을 때가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래서 기를 쓰고, 학력을 만들고, 좋은 직장 명함을 만들려고 발버둥을 치게 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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