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빠랑 결혼했어? 엄마가 최악의 결혼 조건 감수한 이유

라라윈 연애질에 관한 고찰 : 왜 아빠랑 결혼했어? 엄마가 최악의 결혼 조건 감수한 이유

아빠가 뺑소니 사고를 당하시고 보니 가족들, 특히 엄마에게 몇 가지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 엄마는 아빠가 몇 시간 넘도록 연락을 안 받으시면 혹시나 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십니다.(그 덕분에 저는 아빠 위치 추적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아빠는 병원에서 예상했던 것과 달리 아주 많이 회복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연세와 후유증 때문에 건망증이 심해지셨습니다. 가끔은 어떤 일들이 통으로 기억이 안 나신다고 합니다. 이야기 하다가 가끔씩 "기억이 안나! 몰라" 라고 하시면, 늘 함께 있는 엄마는 당황하시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금슬 좋던 부부였던 만큼 아빠가 편찮으시고 안 좋으실 때면 더 힘들어 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정작 아빠 만나서 시집살이 옴팡 하시고 고생 많이 하시던 시절에는 아빠 탓을 하신 적이 없는데, 오히려 요즘에 아빠가 편찮으시니 엄마가 농담처럼 신세한탄을 하셨습니다.

"아빠 때문에 속 썩은 적이 없는데 요즘 아빠 건망증 때문에 속 썩는다! 큰 외숙모가 일 때문에 너무 힘드신 날이면, 농담처럼 큰 외삼촌 이름을 부르면서 "내가 OOO이를 만나서 이 나이에 무슨 고생이야..."  라고 하시는데.. 요즘은 나도 그렇네. 나는 요한을 만나서 말년에 이 무슨 고생이니."

이라며 스치듯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시누이와 올케가 그런 농담을 할만큼 이제 편해지셨나 봅니다. 엄마를 위로하겠답시고, 멀고 먼 옛날 이야기를 끄집어 냈습니다. 아빠가 결혼 상대로는 최악의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결혼하셨던 이야기 입니다. 저는 사실 엄마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보다, 할아버지가 결혼을 허락하셨던 이유가 더 궁금했습니다.

본격 아빠 디스를 시작하자면, 저희 아빠는 요즘 기준으로 볼 때 결혼하기에 최악인 남자입니다.

1. 장손 - 엄청난 제사
아빠는 독자가 아니지만, 할아버지가 3대 독자라서 집에 제사가 더럽게 많습니다. 
저희 집 제사 만으로도 미치도록 많은데, 아빠는 할머니와 함께 이모할머니도 모시고 살았었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이모할머니 제사까지 지냈습니다. 정말 지긋지긋하도록 제사가 많은 집 입니다. 작은 아빠들도 결혼을 늦게 하셔서 엄마는 수십년을 혼자 제사를 지내셨어요.

2. 시집살이 + 딸림 식구
할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사실상 방치를 하셔서 아빠 혼자 큰 분 입니다. 고아 아닌 고아같은 분 이십니다.
혈혈단신 고아 같은 상황도 아니고, 혹 딸린 고아라고 해야 되나요.. 아빠 밑으로 동생이 여럿 있고, 고등학교 다니는 사촌동생도 있었습니다. 모셔야 될 사람이 많은 조건이었습니다.
친할머니 (엄마 시어머니), 이모 할머니 (엄마 시이모), 시동생 이런 조건인데다가... 이모 할머니는 제가 열살이 넘도록 한 집에 같이 사시며 어지간히 엄마를 시집살이 시키셨습니다.

3. 돈도 없음.
물론 부자집도 아니었습니다. 물려받을 재산도 없으셨고, 아빠가 벌어서 다 해결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저희 아빠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나 '사'자 직업도 아니십니다.

소위 말하는 결혼 조건으로는 최악이고, 오로지 있는 것이라고는 혼자 살아남은 강인한 생활력과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컸음에도 사람 좋은 심성 뿐이었습니다. 저희 아빠지만 냉정히 보자면, 사람은 착하고 좋지만 결혼하면 개고생이 불보듯 훤한 남자였던 겁니다.

그런 사람에게 왜 딸을 줬을까. 저는 그게 궁금했었습니다.
엄마 집은 아빠와 상황이 많이 달랐거든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양반가문 기품을 유지하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외할아버지는 특히 심하셨는데 제가 중학생 때 돌아가실 때까지 단 한번도 주름진 옷을 입지 않으셨습니다. 항상 반듯하게 다려진 한복 두루마기를 갖춰 입으시고 다니셨습니다. 제사 지낼때면 밤 12시에 두건(?)같은 것을 쓰고, 한복 두루마기 다 차려입고 제사 지내시고, 남녀 차별도 좀 있으시고, 나이에 따른 예절에도 민감하셨습니다. 동갑이어도 야자트면 안된다 하셔서 생일 순서에 따라 엄격하게 따져 언니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동갑이나 언니인 사촌언니들이 있습니다.  
제가 컸을 때는 외가댁이 망한 상태였으나, 예전에는 꽤 살림이 괜찮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 할아버지 성격도 굉장히 엄하고 무서우셔서, 외삼촌들 결혼하실 때 어지간한 사람을 데려오면 반대도 많이 하셔서 첫사랑은 거의 이루지 못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분이 왜 애지중지하던 둘째딸을 아빠같이 열악한 조건의 사람에게 결혼을 시켰을까.. 궁금했습니다.

의외로 이유는 싱거웠습니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유언처럼 할머니께 했던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만약에 내가 죽고, 무슨 일이 생기거든, 다른 곳은 돌아보지도 말고 최서방한테 가게.
가면 쌀 한 말은 줄거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서방은 모른 채 하지 않을 걸세.
그러니 내가 없을 때 무슨 일이 있거든 꼭 최서방에게 가게"

라면서 집에 무슨 일이 있으면 저희 아빠를 찾으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결혼 조건으로 다른 것은 별 볼일이 없지만 사람이 진국이라 허락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말씀 때문이었는지, 정말로 외할머니는 외삼촌이 함께 살자고 계속 권하실 때도 마다하고 혼자 계시다가, 더 이상 거동을 못 하시게 되자 저희 집으로 오셨습니다. 외삼촌들이 모신다고 하는데도 싫다 하시고 저희 집으로 오셨고, 아빠도 선뜻 장모님을 모셨습니다. 할머니가 치매로 고생을 하셨는데, 신기하게 딸인 엄마는 가끔 못 알아보시면서도 돌아가실 때까지 아빠는 알아보셨습니다. 아빠 퇴근 시간 기다리셨다가 아빠가 오시면 무척 좋아하셨고, 아빠도 집에서 할머니 모시는 동안 정말 살갑게 잘 하셨습니다.

그 전에도 아빠는 외가댁에 무슨 일이 있다고 할 때 외면한 적이 없습니다. 돈이 없으면 몸으로 가서 해드릴 수 있는 만큼 도와드렸고, 아빠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했습니다. 외가댁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해서 '당신 때문에 내가 고생한다, 처가 때문에 힘들다' 라거나 '처가에 일 있을 때 내가 다 도와줬지 않느냐?' 같은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냥 아빠 일이었지, 엄마의 일이라고 구분하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외가에만 이러시는 성격은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이러시는 편이라 가족 입장에서는 피곤하기도 했습니다.. ㅡㅡ;)
아마도 할아버지는 그런 아빠 심성을 보셨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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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집안, 좋은 직업 등의 결혼 조건을 보고 결혼을 했으나...
정작 부모님이 아플 때 사위가 나몰라라 하고, 처가집이 망하자 업신여기며 이혼했다는 이야기도 꽤 많습니다. 서로 조건을 보고 만난 것이다 보니 그 조건이 사라졌을 때는 결혼을 유지할 이유도 없어지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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