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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꼭 해야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는 장소

· 댓글개 · 라라윈

라라윈 연애질에 관한 고찰 : 결혼을 꼭 해야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는 장소

지난 주는 저에게 다사다난했던 주가 될 것 같습니다.
논문심사 막바지라 며칠 밤을 꼴딱꼴딱 새가며, 다시 폭풍분석을 했었는데... 이건 제가 좋아서 하는 심리분석이니 투덜댈 것도 없고, 참 오랜만에 잠을 안자가며 일하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심리적으로는 무척 뿌듯했어요. 다만 정신줄이 나가서 깨어있되 제 정신은 아니었을 뿐 입니다.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장...

그런 와중에 지난 주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동네에서 이웃집에 살던 친구인데... 저와 동갑인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이 많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나이가 한 살 두 살 들어가서인지...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도 있고, 아버님이 돌아가신 친구도 꽤 있는데, 이번의 친구 아버지의 장례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남의 일이라고만 여겼던 아빠 엄마가 돌아가시는 일이 이제는 더 가깝게 다가온 느낌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빠 엄마는 시신기증을 하셨습니다.
제가 갓 대학에 들어갔을 때, 아빠 엄마는 시신 기증서를 가지고 오셔서 사인을 시키셨어요. ㅠㅠ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시신기증을 할 때 유가족이 될 사람의 동의가 필요하다네요. 그래야 나중에 돌아가셨을 때 그 병원으로 연락을 해주기 때문에 그런가 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 지갑에는 엄마 아빠의 시신 기증증서가 꽂혀있습니다. 나중에... 먼 먼 훗날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아무튼 언제고 그 날이 되면 엄마 아빠가 시신을 기증한 가톨릭 병원으로 전화를 먼저 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장기 기증을 해서 다른 사람 여럿도 살릴 수 있고, 시신은 연구용으로 쓰일 수 있다고요...
그리고 더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미리 엄마 아빠가 안 계실때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긴 했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면 묘를 쓰지말고 화장해 달라는 말씀...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면 제사는 성당에 미사로 바꾸라고 아빠는 살아있는 동안 지낼거지만 너는 딸이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
언제 들어도 그런 말은 금방 눈시울이 젖습니다.
더 어릴 때는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면서 "안돼. 엄마 아빠 죽으면 안돼." "평생 나랑 같이살아." 라면서 때를 썼는데, 이제는 더 이상 때쓰는 것이 아니라, 언제고 저도 겪을 일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버렸던 것 같습니다.
더 빨리 겪은 친구들에 비하면 아직 부모님이 계시니 행복하다고 해야겠지만,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리고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가니 또 하나 겁이 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얼굴이 눈물범벅으로 초췌해진 친구 옆에서 아이들과 (일찍 결혼해서 아이도 있는 친구였거든요) 남편이 있어주니 그래도 마음의 위안이 될 것 같은데.. 만약 (만약조차 생각하기 싫네요) 지금 부모님이 일을 당하시면 저는 혼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두려웠습니다. 저는 누구에게 기대어 울 수 있을까요...
친구 아버님의  장례가 너무 슬프면서도 제 걱정도 겹치는 마음이 복잡심란한 날이었습니다. 잠을 못잤던 한주라 몸도 피곤하고, 맘도 심란한 채 친구를 보니 또 복잡했습니다.
뭐라고 위로를 해야 될지 모르겠어서, 장례식장에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미소를 띄며 딴 소리나 하다 왔습니다.


종합병원 응급실 복도...

그리고 뒤이어 저에게도 사건이 터졌습니다.
집 근처에서 아빠가 사고가 나셨어요.
이번 사고가 처음은 아니지만, 사고는 언제나 불쑥 찾아오기에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그리고 황량하고 무서운 종합병원 응급실 복도는 사람을 더 미치게 만듭니다.
제가 병원장이면 인테리어부터 뜯어고치고 싶은 황폐한 복도에요. 어쩜 그리 창백한지. 문도 잿빛에 창백한 벽은 무섭고 슬픈 마음을 더 우중충하고 겁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런 황량한 벽과 조명은 검게 변해가는 피.. 쏟아져나오는 붉은 피를 더 공포스럽게 보이게 합니다. 그리고 계속 앉아있는 그 복도는 정말 끔찍합니다.



죽음도 많이 지켜본 응급실 선생님들이라 그러신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별거 아니라는 듯 하시지만, 저는 하나밖에 없는 아빠가 다쳐서 피를 쏟고 계시는 모습이 별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쓱쓱 처리하고 계시는. 그리고 아주 담담하게 상황을 브리핑하는 선생님들이 괜히 몹시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분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거 알면서도 애꿎은 선생님들이 너무 얄미워서 메가펀치 어플에 집어넣고 흠씬 때려주고 싶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환자가 다 사연이 있고, 다친 상황이 서글프고 속상하기에 그걸 일일이 공감해주고 있다가는 응급실 선생님들이 먼저 미쳐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일로, 덤덤하게 대해야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저는 이기적이라 남의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은듯 이야기하는 그 입이 정말 때려주고 싶게 미웠습니다.
"니네 아빠가 이 지경이어도 니가 그 따위로 말 할 수 있냐?" 라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그리고 사실은 죄가 없는 의사선생님, 경찰관 아저씨들에게 화가 나면서, 엄한 자격지심이 생깁니다.
여자라서, 어린(?) 여자라서 그런건 아닐텐데도 이 순간만큼은 제가 오빠나 남동생 하나 없는 것이 이토록 서러울 수 없었습니다. 덩치큰 남자가 한 마디 하면 저한테 하듯 이럴까 싶기도 한 마음이 들었던 겁니다.
물론 이건 "왜 나한테, 우리 가족한테 이런 몹쓸 일이 일어나는거지?" "아빠는 착하게만 사신 분인데 왜 저런 일이 일어난거지?" 하는 답을 알 수 없는 문제에 대한 잘못된 원인찾기 입니다. (아... 그 복도에 앉아있으면서 혼자 제 심리분석 추론을 하고 있었네요. ㅡㅡ;)

동생이 얼마 전에 출산을 해서, 아직 몸도 추스리지 못한 동생에게 새벽에 연락을 하면 너무 놀랄 것 같아 엄마와 둘이 복도에 있고 보니 더 무섭습니다. 그래도 엄마와 둘이 있다는 사실은 정말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무섭습니다.
그리고 혼자라는게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느꼈던 결혼을 꼭 해야하는 이유가, 응급실 복도에서는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결혼은 족쇄니 뭐니 하면서도 결혼을 하시는 이유는, 이런 끔찍한 순간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제 아무리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라는 것이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이 있고, 특히나 혼자인 것이 죽도록 무서운 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 함께 할 사람을 확실히 만들 수 있는 그런 제도가 결혼이 아닌가 싶었어요.

가족은 좋은 날보다 궂은 날 더 빛납니다.
건강할 때는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재미있기도 하고, 심지어 가족이 귀찮기까지 한 날도 있지만
아플 때는 엄마가 너무 그리워지는 것처럼...
궂은 날.. 너무 힘든 날... 가족 한 명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나 봅니다.


덧. 이래놓고도 좋은 날이면 싱글이 좋다고 외칠지도 모릅니다. ;;;
덧. 저에게는 너무 슬픈 일들이라 감정에 몰입해 잔뜩 부풀려져있는 글입니다.
     현실은 이보다는 나은데, 위로받고 싶어서 엄살 부리는 것일 수도 있어요... ㅜㅜ
     그리고 이 글의 목적은 지난 주에 힘들었다며 투정과 어리광. 그리고 위로의 댓글을 바라는 속 보이는 글이죠...
덧. 이제 치료받고 많이 괜찮아지셨고, 저는 단순하기에 오늘은 이렇게 지난주에 힘들었다고 궁시렁거리고, 아마도 내일이면 "저 이거 지르고 기분 풀었어요." 라는 철들지 않는 서른으로 돌아갈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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