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속수무책

서울과 대전을 오갈 때 기차를 자주 이용합니다.
그 날도 기차역에 도착해 여유를 부리며 기차여행하는 기분으로 즐겁게 기차에 올라탔습니다. 습관적으로 기차좌석에 머리만 닿으면 자 버릇 했더니, 이 날도 자동적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즐거운 휴식시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깨어보니 옆에 술에 취하신 아저씨가 와서 앉아계셨습니다.
풀풀 풍겨오는 술냄새에 자꾸 다리를 쩍 벌리고 앉으셔서, 저는 점차 창가에 달라붙어 있어야 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술을 먹고 기차를 타면 안되겠지만, 기차 내에서도 술을 파는지라 그것만 가지고 문제를 삼을 수는 없는 일이라 가만히 있었습니다.
제가 잠에서 깬것을 안 아저씨는 말을 거시더군요. 원래 술 취한 분들 이야기를 맨 정신인 사람이 듣기에는 괴롭습니다.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해 대시기에 모른척하며 다시 자는 척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슬그머니 제 좌석 앞쪽으로 손을 뻗으시는 것이었습니다. ㅡㅡ;;;;;


화들짝 놀라 눈을 번쩍 떴더니, 제가 먹고 앞의 주머니에 꽂아둔 쓰레기를 만지고 있었습니다.
별것도 아닌 일에 과민반응같기도 하지만, 사람에게는1차적 공간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신의 구역이라고 생각되는 범위에 타인이 침입했을 때 불쾌감과 경계심을 느끼게 되는 것 입니다. 기차에서의 한 좌석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기차나 영화관 등에서 옆 사람의 공간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 기본적 예의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제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제가 앉은 좌석의 앞쪽으로 손이 왔다갔다 하니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계속해서 "어떤 남자가 좋냐? 남자는 이렇다, 저렇다."하는 소리까지 주절대니 제 입장에서는 변태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아직(?) 아저씨가 직접적인 성추행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확실한 조치를 취하기도 애매하고, 괴롭긴 너무 괴롭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기차 내 불편신고라도 하려고 전화번호를 찾았습니다. 필요해서 쓰려고 보면 없다고, 평소 별 생각없이 기차를 둘러볼 때는 잘도 눈에 띄던 기차내 불편신고 전화번호가 그 날 따라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자주도 지나가시던 역무원 분도 보이지 않았구요. 주말이라 좌석이 꽉 차 다른 자리로 옮기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고 있는데 멀리서 역무원 아저씨가 나타나셨습니다. 흑기사라도 나타난듯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손을 흔들며 도움을 요청하고, 자초지종을 간단히 설명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옆자리 취객을 조용히 데리고 가시더군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한 숨을 내쉬고 있는데, 아니 이게 왠 일입니까.
10분도 안되서 그 이상한 아저씨가 다시 돌아와 옆자리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역무원에게 신고한 것이 화가 났던지, 이젠 소리를 지르며  별 이상한 소리를 다 해댑니다.
"니가 원하는대로 구미에 맞는 남자가 딱 나타날거 같으냐? 흥, 옆에서.. 어쩌고 저쩌고.. 욕 비스름한.. 못 알아듣겠는 말들을 계속 주절주절..."
도대체 뭐라는 것인지 정확히는 못 알아듣겠지만, 한 두마디씩 알아듣겠는 말은 분명 욕에 가까운 말들이었습니다. 마구 뭐라고 해대는데, 주변사람들은 흘끗흘끗 쳐다보며, 엄한 일을 겪고 있는 저를 안쓰러운 시선으로 쳐다볼 뿐 그저 모른 척 합니다. 이걸 어찌해야 되나 정말 곤욕스러웠습니다.
차라리 일어서서 가는 한이 있어도 피해야겠다 싶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는데, 아저씨가 마구 뭐라고 해대더니 내립니다. 마침 내리는 역이었나 봅니다. 
 

예전에는 기차나 지하철에서 취객이나 치한 등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신고하라는 전화번호와 안내를 보며, 그렇게만 하면 문제가 해결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실제 이상한 사람을 만나보니 속수무책입니다.  
취객이 이상한 짓을 하여 역무원에게 신고 한다해도, 주의조치 후에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에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같은 승객의 입장인 개인이 취객을 강제로 내 쫓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결국 해법은 옆자리에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서서 갈지언정 피해야 합니다.
재수없었다 생각하고, 앞으로 이상한 사람을 만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이 최상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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