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 감춰졌던 이야기

내가 여자 라서일까.. 여자들 이야기 라고 하는 영화가 좀더 끌리는 감이 있다.
특히 그림자 인간 같던 궁녀들, 구중궁궐 깊은 곳의 은밀한 이야기가 퍽 궁금했다.

내용이 잔혹한 장면이 있고 조금은 무섭단 말에 벼르다 친구랑 같이 가서 보았다.
(실제로 상당히 고개 돌리고 소리를 듣는데 만족할 부분들이 있었다... ㅜㅜ)

 2007. 10. 27


이야기는 궁에서 죽은 한 궁녀가 자살이 아니라는 의심을 가진 의녀 천령(박진희)의 수사로 시작된다.
천령은 죽은 월령이 아기를 낳고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자신도 6년전에 궁의 한 종친과 정을 통하여 아기를 낳아 죽일 수 밖에 없던 경험을 떠올리며  월령에게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며 더욱 사건에 개입하고 개별적으로 수사를 해나가는 것이다.

순진하게도  궁에서 왕의 성은을 입은 경우 외에는 임신을 하는 경우가 있을거라는 생각을 못했었다.
사춘기도 지나지 않은 나이에 궁에 입궐하여 처녀가 되고 정을 느끼고 외로움과 사랑에 대한 많은 욕망이 있을 시기를  그저 임금의 성은만을 바라보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아리따울 궁녀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동하는 것이 어찌 왕 뿐이었을까.
궁에서 일하는 많은 남성들도 그랬을 것 같다.

여기서는 그 중 궁녀들이 정조를 지키지 못하면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궁녀들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욕구만을 채우는 남성을 이야기 한다.
천령은 그러한 악랄한 남성을 벌주고자 하는 마음에 수사를 시작했던 듯 하다.
그러나 이야기는 점점 더 많은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혀가고 더 큰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엄청나게 큰 반전은 아닐지라도 계속해서 예상을 뒤엎는 상황들이 진행되면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월령의 방에서 편지를 찾아내고 그것이 월령이 통정하는 사내와 주고받은 것이리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것은 월령과 함께 방을 쓰는 수방궁녀의 것이었던 것이나,
처음 예상되던 용의자가 아니라 임금님의 성은을 받았다는 것....등..

드라마 사극에서나 어디에서나 궁녀가 주목받는 경우는 임금의 성은을 입어 새로운 권력구도의 주인공으로 떠오를때 또는 왕실인물 최측근에서 심복역할을 톡톡히 할 때 뿐이었다.
물론 대장금 같이 궁녀들을 조명한 경우도 있지만, 대장금은 궁녀의 고된 생활보다  전문 조리장의 길을 가는 멋진 인물이었다.

이 영화에서는 왕실을 돌아가게 하는 부속품처럼 그리고 그 속에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척척 일을 수행해내야 하는 궁녀들의 삶이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진 것 같았다.

여자들만이 모여있으면서 -- 그것도 나이차고 독수공방하면 아무래도 더 히스테릭해졌을 여자들- 자신의 욕구는 없이 맡은 역할에 매진하며 지내야 하며 서로간의 시기질투, 암중모략에  지내기가 참으로 어려웠을 것 같다.

오늘날까지 왕조가 있었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인간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야 했을까..
참 섬찟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궁녀라는 것이 그저 그림자가 아닌 그들도 하나하나의 인간이었음에 대해 한번쯤 돌이켜 생각해보게 했던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생각을 주고 흥미진진하게 끌어가던 이야기가 마지막에 가서는 귀신의 등장으로  마감이 되어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천령이 모든 것을 밝혀 궁을 뒤집어 놓는다는 것도 비 현실적인 마무리겠지만 귀신이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것도 그다지 깔끔하지 않았고, 극의 후반부까지 이어온 사실적인 공감과 긴장감을 많이 지우는 듯했다.
원래 영화라는 것이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픽션을 리얼하게 느끼게 하는 즐거움도 영화의 멋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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