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윈 바다건너 여행가기 : 세부 스쿠버다이빙 자격증 오픈워터 과정 첫날
첫날 밤, 저의 오랜 친구 불면증이 사라졌어요. 도착한 첫날 마사지 받고 맛있는거 먹고 잘 놀아서 그런지, 빛공해 없이 깜깜하고 조용해서 그런지 아주 잘 잤어요. 호텔 침구처럼 보송보송한 이부자리와 메모리폼 침대도 한 몫 한 것 같습니다. (▶︎필리핀 세부 막탄 여행 첫날)
8시부터 아침식사라 7시 반 정도에 일어났는데, 개운하고 기분 좋았어요.
사교성 없는 자의 뻘쭘한 아침
7시 반에 일어나서 기분은 굉장히 좋았는데, 할 일이 없었습니다. 어차피 물에 들어갈거라 화장할 필요도 없고 옷 갈아입을 필요도 없으니, 느긋했어요.
할 일도 없으니 나가서 밥만 먹으면 되는데, 방 밖에 나가는 것이 어색했습니다. 혼자 뻘쭘할 것 같기도 하고, 화장도 안 하고 머리도 부스스한 채로 잠옷입고 나가는 것이 신경 쓰였습니다. 헤어밴드 하고
선글라스 쓰고 나갈까, 모자 쓸까 하다가 야구모자와 원피스가 너무 안 어울려 그냥 나갔습니다.
이미 리셉션 공간에는 식사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다들 집에서 아침 먹듯 편안한 차림에 부시시한 모습입니다. 오히려 호텔 조식 먹듯 꾸미고 선글라스 쓰고 오는 분이 눈에 띄었어요.
그보다, 저만 다른 사람을 의식할 뿐, 아무도 관심없어요. 잠옷을 입고 나왔든, 머리에 새집을 지었든. 편안한 무심함이었어요.
빈 자리에 앉아 "원 플리즈" 라고 하며 손가락을 들자, 느릿느릿 상을 차려 주셨습니다. 여긴
속도가 매우 다릅니다. 친절하지만 빠르진 않아요. 한국인이면 여러 번 왔다갔다 하기 싫어서라도 쟁반에 촥촥 쌓아서 날라 줄 것 같은데, 도시락 가져다 주고, 반찬 가져다 주고 젓가락 가져다 줍니다. 필리핀 직원들의 특징인지 필리핀 스타일인지, 어딜가나 한 번에 촥 나오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한 번에 하나씩 천천히...
아침 도시락은 일식 도시락통에 하나씩 주었습니다.
도시락은 맛있는데 목이 좀 메였습니다. 자리에 빈 국그릇이 있는데 국을 안 가져다 준 것인지 두리번 대보니, 국과 김치는 셀프로 먹을 수 있게 한 켠에 차려져 있었습니다.
물컵, 김치, 접시, 국이 놓여져 있어요. 김치와 국만 주는 줄 알았는데 어떤 날은 떡볶이가 놓여 있기도 하고, 햄을 구워서 얹어 놓기도 했습니다.
도시락 먹으며 둘러보니, 사람이 참 많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아이들, 할머니까지 온가족이 온 분들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할머니도 다 함께 다이빙을 하는걸까요? 첫 아침이라 두리번대며 밥을 먹었어요.
아침 식사가 끝날 8시 반 무렵 강사님이 하루 일정을 브리핑을 해 주었습니다. 펀 다이빙, 호핑투어, 체험다이빙, 어드밴스드 자격증 과정, 오픈워터 과정 순으로 알려주시는 듯 했습니다.
스쿠버다이빙 자격증 있는 사람들이 재미로 하시는 것을 펀다이빙이라 부르는 것 같았는데, 이 날은 상어보러 간다고 했습니다. 상어라니...!
저는 이제 시작이라 상어는 고사하고 수영장도 겁나는데, 상어 보러 가신다니 무척 부러웠습니다. 상어를 볼 수 있는 곳은 25m 넘는 곳이라 오픈워터로는 중간까지 밖에 못 간다고 오픈워터 자격증이신 분 계시냐고 확인했는데, 전부 어드밴스드 이상이었습니다. 부럽. 전 오픈워터 첫날인데....
오픈워터 + 어드밴스드까지 하기로 한 걸 잘했다 싶었어요. 상어 보고 싶어요.
스쿠버다이빙 자격증 오픈워터 과정 첫 수업 - 이론교육
물에 들어가는 분들은 아침 식사 후 한 시간 넘게 쉬다가 느링느링 수영복 입고 샵동으로 가면 된다고 하는데, 오픈워터 첫날 이론교육 받는 사람들은 30분 후 9시까지 편안한 복장으로 샵동 교육실로 오라고 했습니다.
양치질 하고, 학교 오래다닌 프로풰셔널 학생답게 볼펜 형광펜 등의 필기구 딱 준비해 놓고 기다렸습니다. 침대에 누워 뒹굴대다 방에서 와이파이가 안 터져서 물어보려고 나가는데 방문에 붙어 있는 안내가 눈에 띄었습니다. 천천히 읽어보니 1번에 "방안에서는 신호가 약하니 1층 리셉션 공간에서 사용 바랍니다." 라고 써 있었어요.
이 때부터는 와이파이에 미련을 버리고, 무제한 lte 유심을 꽂은 샤오미 폰의 핫스팟을 열어 편히 썼습니다.
필리핀 세부 막탄섬의 인터넷 속도는 카톡 같은 메신저 하는데는 문제 없었고, 인스타그램에서 한 장짜리 사진은 바로 보이는데 3~4장짜리는 한 번 띠롱 댄 다음에 열리는 정도 였습니다. 한국 인터넷 속도 생각하면 약간 답답한데, 예전에 중국에서 미춰버릴 것 같던 속도를 떠올리면 아주 준수한 수준이었습니다. (심지어 바다 한 가운데서도 인스타그램하고 카톡 보낼 수 있고, 전화도 잘 터짐)
10분 일찍 교육실이 있는 샵동으로 건너갔습니다. 리조트동과 샵동은 다섯 발자국 떨어져 있었어요.
따땃하고 평온하고 참 좋습니다. 더울 줄 알았는데 땀도 안 나고, 에어컨 안 켜도 산들산들 바람이 좋았어요. 땡볕은 뜨거운데, 그늘은 시원하고요.
스쿠버다이빙 자격증 첫 단계인 오픈워터 교육 시작에 앞서, 무서운 서류를 씁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책임져 달라고 땡깡피우지 않겠다는 면책 동의서에 사인하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 비상연락처도 적습니다. 이 때는 조금 무서웠어요.
무서운 서류를 드리고 깜쯱이 교재를 받았습니다. SNSI, SDI, PADI 과정 등이 있는데 자격증을 관리하는 단체 차이래요. SNSI는 시험을 안 보고, 비용도 쪼금 저렴합니다. 이 때 까지도 자신감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오픈워터 실패하고 리조트에서 쉬다 갈 지도 모른다 생각해서 SNSI니 PADI니 하는게 중요친 않았습니다.
스쿠버다이빙 자격증 이론수업이 형식적일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지구과학, 화학, 물리, 생물을 망라한 과목이었습니다. 과탐 종합세트였어요. 압력과 부피의 상관관계, 인체의 호흡, 바다 속 생태계, 달톤의 법칙, 보일의 법칙, 헨리의 법칙 등등.
과탐은 저와 안 친한 분야인데, 바다에서 놀려고 배우니까 쏙쏙 잘 들어왔습니다. 어릴 때 스쿠버 다이빙 배웠으면 지구과학, 화학, 물리, 생물 잘 했을 것 같아요.
급 학부형 모드로 (애도 없으면서) 어린 아이들에게 스쿠버다이빙 시키면 과탐 영역 잘할거 같다고 했더니, 시험 성적으로 연결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주니어들이 더 잘 배운다고 합니다. 주니어들은 선생님을 잘 믿기 때문에 쉽게 성공한대요. 어른들은 전문가인 샘을 믿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어서 힘든 경우가 가끔 있다고 하는데.... 뜨끔했어요.
이론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 샵동 베란다에서 바다를 바라 보았습니다. 날이 너어어어어무 좋습니다. 바다 안 들어가도 괜찮고, 그냥 이대로 바다 근처에서 바라만 봐도 참 좋았습니다. (바다에 들어가는 것은 자신 없음)
이론수업 동안, 자연을 훼손하지 말라고 철저히 배웠습니다.
산호는 100년에 1cm 자랄까 말까 한 것들도 있는데 예쁘다고 만져서 툭 끊어지거나 자칫 발길질 한 번에 몇 백년이 날아가 버릴 수도 있는거라고..
프로그 피쉬라는 아귀처럼 생긴 아이는 몇 달에 걸쳐 간신히 절벽을 기어 올라오는데 재미있다고 툭 치면 그 아이의 몇 달의 수고가 날아가 버리는거라고...
그리고 물뱀도 있고 독 있는 고기도 있고 상어도 있고 많지만, 그 생물들도 사람을 겁내기 때문에 사람이 손을 뻗어 해코지를 하지 않으면 먼저 공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절대 아무 것도 건드리지 말고, 우린 오로지 멀리서 지켜보다 오는거라고.
경외심이 들게하는 바다에 대해 배우다 보니, 거대한 바다 속에서 저는 한낱 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다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자신은 없음)
이론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 방에 갔다 왔는데, 빨래를 말리고 있었습니다. 잠깐 쉬는 시간이지만 모두 바다에 가고 한가로이 조용한 리조트를 걸으니 좋았습니다. 바다에 못 들어가도 이것만으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라도 정당화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정말 자신이 눈꼽만큼도 없었어요.
체육 관련 전적이 굉장히 화려하거든요.
수영 4~5차례 배웠으나 숨 못 쉬어서 자유형 못함.
볼링 2달 개인지도 받았으나 50에 폼도 구림,
스키 2차례 개인강습 받았으나 굴러 내려옴, 스키타면 골병 듦.
롤러 스케이트 몇 달 배웠으나 회전 못함. 일직선으로 가서 충돌함.
피구하라고 공주면 다 신나하는데 저는 공포를 느낌. 맹구처럼 공 피하다가 바로 아웃됨.
체력장은 5급. 던지기 0m, 제자리 멀리뛰기 0m, 매달리기 0초 등등....
이러다 보니 어제 도착해서부터 이론 수업 받는 내내 추임새 마냥 '근데 전 잘 못 할 거 같다'고 징징거렸어요.
씨홀스다이브샵 점심
점심이 완전 제 취향이었습니다.
수제비 엄청 좋아하는데 수제비 나오고, 부침개, 튀김, 호박전, 계란말이 등 기름 닿은 음식 너무너무 좋아하고, 기름 닿은 음식 많이 먹으면 느끼하기 때문에 무채 무침이나 오이무침 같이 먹는거 좋아하는데, 정말 완벽한 제 취향 점심이라 아주 행복했습니다.
식당 알바해보니, 부침개, 두부부침, 호박전, 깻잎전, 계란말이 전부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보통 이런 음식은 메인 반찬으로 하나만 하지 이렇게 한 번에 다 해주진 않는데, 여긴 한 상에 손 가는 음식이 잔뜩 나와 아주 좋았어요. (행복 행복 행복)
다 나온 줄 알고 항공샷 하나 찍고 먹고 있었는데, 제육볶음도 나왔습니다. (여긴 다 나온 줄 알고 사진 한 장 찍고 먹기 시작하면 자꾸 추가로 뭐가 나와요....)
이 때 배 타고 나갔다 오신 분들이 들어 오셨습니다. 아침에 뵌 부스스한 분들이 아니라, 생기가 넘쳐 흘렀습니다. 정말 재미있으셨는지 웃음이 끊이지 않고, 같이 바다에 들어갔다 오면 엄청 친해지는지 몹시 즐거워 보였어요.
펀다이빙이라더니 정말 재미난걸까요?
저도 저렇게 왁자지껄 신나서 웃을 수 있을까요?
괜히 부러웠습니다. 이 때까지도 바다에 못 들어가도 괜찮다, 밥 맛있으니까 괜찮다, 이론이라도 배운게 어디냐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후식은 망고쉐이크. 밥도 맛있고 망고쉐이크도 아주 맛있었어요.
여기 더치커피도 좋은 원두에 에비앙으로 내려서 맛있다고 하는데, 커피 끊은지 좀 되어서 커피는 꾹 참았습니다.
오픈워터 자격증 과정 수영장 수업
밥 먹고 다이빙수트와 신발을 골라주었습니다.
좀 쉬었다가 수영장에서 수트 다 입고 만나기로 했습니다.
수영장이 방 바로 옆이라 다이빙슈즈까지 다 신고 나갔는데, 슬리퍼 신고 신발은 들고 가는게 나았습니다. 수업 끝나고 방에 들어와서 벗는게 아니라, 샵동으로 가서 다이빙 수트와 신발을 옷걸이에 걸어두더라고요.
샵동에 다이빙 신발 벗어놓고 리조트 동으로 맨발로 걸어와야 돼요. 몇 걸음 안 되는데다 해안가 걷는 기분이라 아무렇지 않았는데, 한나샘이 걱정하며 슬리퍼를 벗어주셔서... 다음날부터는 슬리퍼 신고 가서 신발 갈아 신었어요.
수영장으로 나가자, 가족단위 손님이 많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애기는 몇 살부터 스쿠버다이빙 할 수 있냐고 물으니 12세 부터라고 해서, 어린 아이들은 여기 와서 뭐 하나 궁금했는데, 수영장 전세내고 놀더라고요. 할머니는 아이들 노는거 지켜보시며 의자에 누워 쉬시고요. 그 사이 엄빠는 다이빙하고. 이런 가족여행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저도 저 아이들처럼 겁내지 않고 신나게 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여전히 자신음슴)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에 장비 조립하는 법. 장비 입는법, 마스크 코팅하는 법 부터 찬찬히 배웠습니다. 그리고 깊은 수영장에 들어갔습니다.
#수영장 바닥에 앉기
먼저 수영장 바닥에 앉는데, 자꾸 몸이 떠서 바닥에 무릎꿇고 앉는 것이 무척 힘들었어요. 수영 배울 때는 몸이 안 떠서 괴롭더니, 다이빙 배울 때는
몸이 안 가라앉아요. 다이빙 수트가 공기층 부력이 있어 더 뜬대요. 자꾸 몸이 떠서 힘들긴 했지만, 공포는 좀 줄었습니다.
'내가 뭔 짓을 해도 몸이 뜨긴 하겠구나.' 생각하니 바다에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스킬 배우기
간신히 바닥에 앉아 스킬을 배웠습니다. 호흡기에 물 찼을 때 빼는 법을 배우는데 하나 하나 천천히 배우니까 할만 했어요. 따라하면 잘 했다고 박수도 쳐주고 물 속에서 하이파이브도 하고 했더니, 재미있어졌어요.
다음으로 호흡기를 잊어 버렸을 때 찾는 방법 두 가지를 배웠는데, 호흡기를 잃어 버리는 상황은 연습인데도 멘붕오기 직전이었습니다. 빨리 못 찾으면 입에 머금고 있던 숨이 다 빠져서 (빈곤한 폐활량) 겁이 났어요. (제 생명은 소중하니까요)
이 실습을 하기
전에 샘이 수중 노트를 꺼내서 보여줬어요.
"이거 실습 할건데, 만약에 못하면 내가
구해줄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어요. 물 속이라 정확한 말은 기억이 안 나는데 구해준다는 이야기라 든든했어요.
실습을 하기 전에는 샘이 저를 잡고, 보조 호흡기를 손에 들고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에 해 보라고 합니다. 잘 못해서 멘붕오는 것 같으면 재빨리 보조 호흡기 꽂아서 구해주고 천천히 다시 했습니다.
계속 저는 못 할거 같다고 자신없다고 징징댄 덕분에(?) 조언을 많이 들었는데, 물 속에서는 뭐 하나 내 맘대로 빨리 되는 것이 없으니 서둘지 말고 천천히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람마다 밥 먹는 속도가 달라 누구는 빨리 먹고 누구는 천천히 먹듯이, 배우는 속도가 다른 것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그 말을 떠올리며 천천히 따라 했어요. 선생님이 하나 알려주면 하나 천천히 하고, 못하면 다시 하고...
천천히 따라하다 보니 할만했습니다. 이어서 마스크에 물 찼을 때 빼는 방법, 마스크 빠졌을 때 다시 쓰는 방법, 공기탱크가 떨어졌을 때 상대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법, 공기탱크 떨어진 사람을 도와 주는 법도 배웠어요.
배우다 보니까, 오픈워터라는게 스쿠버 다이빙 하다가 멘붕올 수 있는 상황에 대처하는 기술을 하나 하나 가르쳐주는 듯 했습니다. 잘 하진 못했어도 천천히 하나 하나 따라하다 보니 재미있었어요.
#부력조절 & 유영연습
바닥에서 약간 뜨는 걸 부력조절이라고 하더라고요. 조끼에 바람을 넣으면 뜨고, 바람을 쭉 빼며 가라앉는게 신기했는데, 잘 못해서 바닥에 철푸덕 닿았다가 붕 떴다가 오르락 내리락 했어요.
그리고 나서 유영하는 법을 배웠는데, 오리발 (핀)을 꼈어요. 오리발을 끼면 무척 쉬울 줄 알았는데 왠걸, 바보가 되었습니다. 다리가 꼬이고 갑자기 길어진 발 끝이 통제가 안 되었어요. 엉망진창 몸이 제 뜻대로 안 되는데, 저만 조급하고 샘은 느긋했어요.
이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준 샘도 계셨는데, 그 분도 느긋하셨어요.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서, 원래 물 속에서는 뭐가 뜻대로 빨리 빨리 안 된다고, 이 정도면 잘 한다고 우쭈쭈 해주셨습니다. 제 생전 체육 관련해서 잘한다 소리를 들은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다보니, 뜻밖에 저의 재능을 찾은건가 하는 착각도 들었어요.
몇 번 하다보니 수영장 바닥청소하듯 달라붙어 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뭐 자세는 TV에서 보던 우아한 자세가 아니라 배만 바닥에 닿는 브이자였다고 합니다. 자세가 브이자라고 웃고, 그냥 웃고, 하다보니 재미있었어요.
제가 너무 느려서, 영상 촬영해주시는 샘은 떨고 계셨습니다. 수트도 안 입은 채로 장비들고 수영장에서 함께 잠수해 계시니 힘들거 같았어요.
저는 이 분이 다이브샵 샘이셔서, 초보 교육영상 만드시는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이 분도 손님으로 온 다이버 였어요. 아무 이유없이 생초보의 도전을 기념해주기 위해 촬영을 해주셨던 거래요.
처음보는 거대한 장비가 신기해서 한 장 찍어 뒀어요.
빠른 분들은 첫날 오픈워터 이론수업 받고, 수영장 실습하고 앞바다까지 나가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틀이면 오픈워터 과정을 끝내신다는데, 저는 느린 학생이었어요. 다른 때는 제가 남들보다 느리면 스트레스 받았는데, 이번엔 너무 자신이 없던 일이라 아무튼 물 속에서 놀았다는데 혼자 격하게 감동했습니다.
제가 물 속에서 유영해서 수영장을 여러 바퀴를 돌았어요!!!!!!!
물 속에서 웃고 놀았어요!!!!!!!
몇 번 더 연습하다 수영장 바닥의 머리카락까지 볼 수 있게 되자, 볼 거 없는 수영장 바닥 말고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졌어요. 자신감이 쪼오오오오금 생겼어요.
금세 그치는 세부 소나기
샤워하고 나왔는데 소나기가 쏟아 졌습니다. 일기예보에 천둥번개 친다고 하더니 비가 쏟아지네요. 비와서 망했다 싶었는데, 저 빼고 다 느긋했습니다.
여기 비는 확 쏟아지고 금방 그친대요. 일기예보에 4일 연속으로 비온다고 나와서 무척 걱정했는데, 정말로 금방 그쳤습니다.
훈훈한 다이버 선배님들과 저녁
한나샘을 기다리며 멍하니 있었는데, 영상 찍어주신 다이버 선배님이 "저녁 뭐 먹을거에요? 저녁 먹어야죠. 같이 가요." 라면서 챙겨주셨습니다. 다른 혼자 계신 분께도 "저녁 안 드세요? 같이 가요." 라며 챙겨서 다 함께 우르르 밥 먹으러 갔어요.
여기 오기 전에 씨홀스다이브샵 후기를 샅샅이 찾아 읽었는데 같이 다이빙 한 사람들과 밥 먹었다는 후기를 많이 봤습니다. '샵에서 같이 회식을 시키는건가? 낯선 사람들이랑 밥 먹는거 싫은데...' 라고 생각했었어요. 이제 보니 이런 식으로 다이버들끼리 서로 챙겨서 함께 가는 분위기였나 봅니다.
낯선 분들이나, 다이빙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걸어가는 동안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픈 워터 이틀 전에 먼저 하신 분께 꿀팁 많이 들었어요. 하루 차이가 커서, 하루라도 먼저 하신 분들 이야기 듣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씨홀스다이빙샵에서 조금 걸어가서 '아인 AIn' 이라는 맛집에 갔습니다. 감바스가 올리브 오일 바탕이 아니라, 쏘야 스타일로 나왔습니다. 필리핀 스타일이래요. 감바스, 스테이크, 파스타, 피자를 푸짐하게 먹었습니다. 스테이크도 맛있고, 파스타도 맛있어서 나중에 또 가고픈 맛집이었어요.
재미나게 식사 같이 하고, 카지노 가실 분들은 카지노 가시고 돌아가 쉬고 싶은 사람들은 쉬기로 하고 흩어졌어요. 여기 스타일 중 인상적이었던 것 하나가 그냥 누가 뭐 하고 싶다고 하면 그러려니 합니다. "같이 카지노 가자." "같이 들어가자." 라며 조르질 않고 쏘- 쿨하게 각자 하고 싶은 것 하는 것이 좋았어요.
리조트 만남의 광장
리조트에 돌아와서 잠깐 테이블에 앉았는데, 어느덧 판이 벌어졌습니다. 혼자 계시던 또 다른 분도 합류.
맥주 먹고 싶은 사람은 각자 자기 방 번호 대고 맥주 주문해서 먹고, 저는 망고쉐이크 먹고, 다이버 선배 오라버니들은 비상식량을 꺼내 오셨습니다. 통조림, 라면, 소주, 육포 등을 아낌없이 다 들고 내려오셨어요.
밥 먹고 일찍 들어왔는데 이야기가 너무 재미나서 12시가 되도록 담소를 나눴습니다. 내일 다이빙 해야 되니 좀 이야기하다 10시 전에 들어가기로 했는데, 재미있어서 자리를 뜨지 못했어요. 전날은 필리핀 부동산 이야기에 재미났는데 이 날은 한국의 재테크 이야기에 신이 났습니다.
재테크 이야기도 했다가, 사는게 뭐 이리 여유 없냐고 나중에라도 다이빙 즐기며 느긋하게 살수 있을런지 한탄도 했다가, 연애 이야기도 했다가....
나중에 다이빙하러 같이 오자며 카톡아이디도 주고 받고요.
이래서 다이빙 동기들끼리 절친 되는 경우가 많대요. 다이빙샵 와서 처음 만났는데 그 뒤로 맨날 같이 오시는 분들이 있다고...
다이빙 하러 와서 커플도 꽤 나오는 듯 했습니다. (연애 이야기 나와서 귀 쫑긋)
잠시 후 지나던 사장님도 잠깐 합류해 과자를 잔뜩 선물해주고 가셨어요. 호칭이 애매해 저는 사장님이라고 부르나, 사장님은 저에게 언니, 다른 남자 손님들은 형님 이렇게 부르시고 원래 알던 동생처럼 편하게 대해주시는 분이었어요.
놀다 보니 또 다른 분도 합류하시고, 씨홀스 다이빙샵 지킴이 탄이도 합류 했습니다.
낮에는 묶여 있는데, 밤 되면 풀어 두십니다. 영특하게 처음보는 한국인 손님에게는 순둥이인데, 낯선 필리핀 사람은 바로 공격한대요. 강아지가 국적도 구분하나봐요. 테이블의 육포 냄새 때문인지 곁을 떠나지 않고 큰 덩치로 애교를 부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쪼꼬미 도마뱀도 합류했어요.
배낭여행 다니시거나 게스트하우스 다니는 분들은 여행가서 친구 많이 사귀신다고 하던데, 저는 싼 호텔 찾아 다니는 편이라 여행지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밥먹고 밤 새울 기세로 이야기 나눈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수영장도 처음 왕복해보고, 여행지 친구도 사귀고, 생전 처음인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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