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숙모 장례식, 갑작스러운 날
라라윈 생각거리 : 외숙모 장례식, 갑작스러운 날
48시간 전에는 암병원에 병문안 갔는데, 48시간 후에는 장례식장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불과 이틀. 옆 건물. 사는 것과 죽는 것이 가깝고 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SNS 순기능
외숙모 장례식에 가는 길에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외숙모에 대한 추억보다도 병문안 갔을 때 외숙모 손을 꼭 잡고 흐느껴 울던 사촌언니와 사촌동생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습니다.
할머니가 아흔 살 넘어서 돌아가셨을 때, 엄마와 이모들, 삼촌과 숙모들은 환갑 전후의 나이에도 너무나 서글퍼하면서 울었습니다. 그런데 마흔 전후의 사촌들이 겪기에는 너무 빠른 이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숙모가 돌아가신 것에 더 마음이 쓰였던 것은 사촌오빠의 SNS 때문이었습니다. 전 엄마 아빠에게도 연락 잘 안하는 무덤덤한 딸이라 외숙모께 살갑게 굴던 조카가 아니었습니다. 외숙모 소식도 잘 모르고 지내는데, 어느날 사촌오빠 SNS에서 외숙모가 암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보았고, 그 후로 오빠가 드문드문 올려주는 경과를 통해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냥 연락해서 물어보면 "괜찮다, 걱정하지 마라"고 했을텐데, SNS에 덤덤한 척 하며 적은 글에는 오빠의 힘들고 슬픈 마음이 묻어 나왔습니다. 그 과정을 알게 되었기에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슬픔도 그리움도 아는 만큼 더 깊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벗
외숙모가 돌아가시자마자 엄마 아빠 이모들은 장례식장에 가셨고, 엄마 아빠 이모는 2박3일을 꼬박 새며 함께 하셨습니다. 엄마와 이모 입장에서는 올케이고, 외숙모에게는 시누이들인데, 어째서 올케의 장례식에 2박3일을 꼬박 새가며 저러실까 조금은 의아했습니다.
장지를 다녀와서 병원으로 다시 돌아오자, 저희 엄마는 다시금 울음을 터트리시며 사촌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에게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분이겠지만, 우리도.... 너무나 소중한 분 보냈다...."
우리에게도 소중한 사람...
흔히 엄마가 돌아가시면 자녀들 (특히 딸)이 가장 아프고 괴로울거라 생각하고, 다음으로 혼자 된 남편이 힘들거라고 합니다.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그 분이 어떤 의미였는지 별로 중요치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아픈 사람들이었습니다.
올케언니의 죽음에 시누이들이 왜 이리 오열하는지, 동서들은 왜 형님을 목놓아 부르며 우는지...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집살이 고되던 시절을 함께 한 전우같고, 지금은 가족이자 친구같았나 봅니다.
한 가지 깨달음이라면, 장례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전 한국 장례문화가 바뀔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거든요. 2박3일 지키고 있고, 사람이 없으니 눈치보여 못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외숙모 장례식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상주들만 아프고, 상주만 슬픈 것이 아니었습니다. 돌아가신 분은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이자, 누군가의 절친,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상주만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슬퍼할 시간, 함께 있으면서 위로받을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슬픈 상상
미드 <튜더스>에서 왕의 누나 장례식에 왕이 안 오니까, 꼬마가 물었습니다.
"아빠, 왜 누나가 죽었는데 왕은 안 와요?"
아빠 왈, "왕이 장례식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왕의 죽음을 상상하게 된단다. 불경한 일이지. 그렇기 때문에 왕은 장례식에 오지 않아."
외숙모가 돌아가시고, 제 또래 사촌들이 울고 있는 것을 보니, 자꾸 아빠 엄마가 돌아가시는 것이 상상이 되었습니다.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을때보다 무섭도록 생생했어요. 아마도 저희 아빠 엄마가 돌아가셔도 이 멤버 그대로 모여서 울고 있을테니까요...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친구 부모님의 장례식은 '나와 나이가 비슷한데 너무 힘들겠다..' 정도 였다면, 이번은 4D 체험이라도 하는 기분이었어요.
더욱이 자주 뵈었던 외숙모니까 남달랐습니다.
자식 입장에서도 상상이 되고, 또래가 돌아가신 친척 어른들에게도 상상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모는 "나 죽으면 화장해서 그냥 뿌려줘. 바로 화장장 앞 뿌리는데 뿌리거나, 흔적을 남기지 마." 라고 하시고, 사촌오빠는 펄쩍 뛰면서 화장까지는 들어줄 수 있으나, 선산에 묻을거라고 하니 이모는 싫다 하고, 원래는 죽은 뒤에 바다에 뿌려지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사촌오빠는 분위기 띄우며 "엄니도 돌아가심 화장해줘?" 라고 하고, 외숙모는 덤덤히 "당연히 화장해야지." 라고 하고, 선산에 할아버지 할머니 옆에 묻어드린다는 말엔 "아유 싫어." 라고 하시고...
자연스레 각자 죽으면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작은 생각
예전에는 제 또래 부모님의 장례식에 가면, 결혼을 꼭 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혼자 오두커니 서서
조문객을 맞이하는 것보다, 남편 품에서 우는 것이 훨씬 좋아 보였습니다. 여전히 한국 장례문화는 남성 중심이기에 여자가 영정사진을
들거나 운구를 할 수 없기에 (할 수는 있지만 정말 사람이 없을 때만 하기에) 남자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혼자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례식에 혼자 있기 싫어서, 장례식 때 일해줄 남자가 필요해서 결혼하겠다는 자체도 모자란
것 같았습니다. 그보다 혼자 견딜 수 있고, 혼자 헤쳐나갈 수 있다고 마음 먹고 있을 때 누군가 도와주면 굉장히 고맙겠지만,
처음부터 의지할 작정을 하고 있으면 '의무'처럼 요구하고 고마워하지 않게 될 것 같습니다. '내 남친 (혹은 남편)이니까 당연히
해줘야지' 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사람에 따라 장례식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장례 절차가 몸서리치게 싫은 사람도 있습니다. 누구나 당연하게 장례가 생기면 달려가고,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니, 제 생각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슬프건 말건, 생각이 많아지건 말건, 장례식장 앞 조형물은 쓸데없이 푸르고 쨍했습니다. 누군가는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마르지 않더라도, 하늘은 유유히 푸르고, 조형물은 그대로이고, 세상은 흐릅니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슬픈 날은 쨍한 날씨보다 이상한 날씨가 고마웠습니다. 계속 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니, 춘삼월에 눈이 내리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자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습니다.